조리원 커뮤니티
햇빛이 유난히도 반짝이던 어느 봄날, 집안에서만 지내는 나를 만나러 조리원 커뮤니티 친구들이 와주었다. 내가 이사를 오지 않았더라면 자주 만났을 사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며 와준 정성에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시윤이를 유모차에 태워 일찌감치 버스 정류장에 나가 있었다. 고개를 쭈욱 빼고 먼 곳에서 오는 손님들을 기다렸다. 이렇게 누군가를 마중 나와 본 적이 언제였던가. 문득 어린 왕자의 여우라도 되는 양 내 입꼬리는 자꾸 춤을 췄다.
기다리던 버스가 내 앞에 멈춰 서고 한 무리의 엄마들이 와르르 버스에서 내렸다. 저마다 아기띠에 올망졸망한 녀석들을 하나씩 달고 커다란 기저귀 가방을 어깨에 둘러매고 있었다. 먼 길 오느라 힘들 법도 한데 아기띠에 쌓인 녀석들은 신기한지 두리번두리번 하며 주변을 살폈다. 엄마들 걸음에 맞추어 짤달막한 다리가 달랑댔다. 공갈 젖꼭지를 물고 있는 녀석, 고개를 한쪽으로 쭈욱 빼고 있는 녀석... 오랜만에 만난 시윤이 친구들을 하나씩 챙겨보고 나니 그제야 엄마들이 눈에 들어왔다.
"웬일이야~! 이제야 만나네~ 어휴! 멀긴 머네."
"멀리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어. 얼른 집으로 들어가자! 힘들진 않았고?"
"다행히 애들이 버스에서 울지 않아서 수월하게 왔어요."
고만고만한 녀석들 4명을 우리 집 거실에 풀어놓으니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한 녀석은 보행기에 올라타 거실 유람 중, 한 녀석은 만세를 하며 돌고래처럼 소리를 지른다. 그 소리에 놀라 한 녀석은 울음을 터뜨리고, 그 옆에서 또 다른 녀석은 똥 기저귀를 갈고 있다. 하나를 재우고 돌아서면 다른 녀석이 졸리다고 칭얼대고, 이유식을 번갈아 먹는 통에 내내 한 명은 뭔가를 먹고 있는 풍경. 애써 시켜놓은 자장면 한 그릇은 하염없이 불어 가고 있었지만, 어느 하나 마음 편하게 젓가락을 댈 수가 없었다. 결국 돌아가면서 한 젓가락씩 나누어 먹는 것으로 우리의 조촐한 점심은 막을 내렸다.
그 날의 일등공신은 엄마들이 챙겨 온 기저귀 가방이었다. 아무리 봐도 엄마들이 챙겨 온 가방들은 신통방통했다. 아담한 사이즈에 펑퍼짐한 모습은 여느 가방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마치 만화영화에 나오는 도라에몽 가방처럼 무언가가 끊임없이 나왔다. 분유며 이유식, 기저귀는 물론이고 색색깔 빨대컵까지 척척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혀를 내둘렀다. 넷 중 하나는 자고 있었고, 넷 중 하나는 먹고 있었던 혼돈의 시간. 시간이 뒤로 가는지, 앞으로 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엄마들의 이야기는 잘개 나누어져 토막토막 끊겼다. 이야기가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나는지 몰랐다. 그저 아이들을 보다가 잠시의 틈이 나면 이야기를 이어가는 느낌이었다.
다행인 것은 함께 있는 그 시간이 너무 재미있고 힐링이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와 비슷한 시간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우리를 위로했다. 그리고 너무도 신기한 건 엄마들이 계속 웃고 있었다는 사실. 그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아이들을 챙기고, 웃으며 동요를 불러주고, 때에 맞춰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았다. 틈만 나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고 뽀뽀해 주는 것을 잊지 않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아이들도 그 마음을 아는지 방긋하고 웃어 보였다. 혼란스러운 시간이 싫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그 속에서 사랑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엄마들은 그 속에서 행복을 찾고 있었고, 아이들은 엄마들의 사랑 속에서 예쁘게 자라고 있었다.
어느덧 그녀들이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왔다.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을 해주고 돌아서는 길.
문득 이만큼 정성을 들여하는 일이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저 아이 키우며 집에 있는 시간이라고 말하기엔 이 시간을 설명하는 수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들의 뒷모습에서 왠지 모를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물론 그 모습은 비단 그녀들만의 모습이 아니었다. 지금의 내 모습이기도 했다. 내 속에 잠들어 있던 동화구연 유전자를 긁어모아 그림책을 읽어주고, 엄마의 노래를 듣고 자란 녀석이 나중에 커서 음치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정성스레 동요를 불러주는 나날들. 아이와 보내는 시간 틈틈이 집안일을 하고 이유식은 물론 우리 세 가족의 식사를 챙기는 시간들. 비록 그러다 보면 십중팔구 내 점심쯤은 건너뛰게 되었다. 오늘 못 찾아먹은 한 끼는 평생 못 먹는 거라며 살뜰히 밥부터 챙겼던 내가 점심쯤은 가볍게 넘겨주는 사람이 되다니.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살았던 적이 있던가. 되돌아 생각해 보면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출근을 당연하게 여겼던 그 시절에도 일의 시작과 끝은 있었고 쉬는 시간은 챙겨가며 일했던 것 같다. 무언가에 이렇게 열과 성을 다했던 건 오랜만이었다.
여자가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왜 경력이 될 수 없을까.
내가 이제껏 겪었던 일들과 지나온 시간을 '경력'이라고 이야기한다면, 나는 아이를 키우는 지금 이 시간이 내 인생 가장 귀한 경험의 시간이라고 자부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어딘가에 이력서를 내게 된다면 지금의 이 시간은 공란으로 비워지겠지. 나의 멋진 경력이라고 이야기 하기보다 이 시간에는 무얼 했느냐는 질문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어쩌면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 것이 사회적으로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탓은 아닐까.
출산과 군대를 비교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이지만 굳이 남자들만 경험할 수 있는 무엇을 들어 비교를 하자면, 쉽게 군대가 떠오른다. 이해해 주시길. 우리 사회에서 남자가 군대를 다녀오는 것은 당연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시간이다. 하지만 여자가 2년 동안 군 복무를 했다고 하면 그 시간은 남자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특별해진다. 단숨에 다들 궁금해하는 이야기가 된다. 어떻게 그 군대를 가기로 마음먹었는지부터 그녀만의 스토리가 된다.
비슷하게 여자가 아이를 키웠다고 하면 다들 눈썹을 추켜올려 되묻는다. 그래서 뭐. 여자가 아이 키우는 게 특별할 거 있나. 으레 여자는 아이를 키우는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다. 능력 있는 여자가 아이를 키우는 문제로 더 이상 커리어를 쌓지 못하고 집으로 들어앉으면 안타깝다고 탄식하고 이래서 여자는 안된다고 고개를 젓는다. 하지만 반대로 아이를 낳자마자 회사에 복귀하는 여자들을 보고는 독한 여자라고 수군거린다. 모성애도 없느냐며, 그렇게 성공이 좋더냐며 뒷말을 한다.
하지만 똑같은 시간을 남자가 집에서 아이를 키운다고 보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특별한 이야기가 되고, 그 남자의 독특한 경력이 된다. 앞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아이를 키우기로 마음먹었는지부터 그만의 스토리가 된다. 몇몇 남자들은 그 경력을 발판 삼아 다른 일을 찾기도 한다. 남자들의 육아와 여자들의 육아가 다를 리 없다. 하지만 다르게 보이고, 다르게 대접받는 시대인 것이다.
내가, 그리고 그녀들이 인생에서 제일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지금의 시간.
우리의 시간은 왜 경력이 되지 못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