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만 기대는 오직 한 사람

조리원 커뮤니티

by 수련화

아이가 뒤집고, 기어 다니고, 일어서기 시작하면서 제일 곤욕을 치르는 것이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가는 순간이다. 혹여나 넘어져 다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어 아이만 혼자 두고 화장실을 가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아이를 화장실에 데리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 그나마 좀 어렸을 때는 보행기에 태워놓고 볼일을 보러 가곤 했는데, 보행기 바퀴가 화장실 문턱에 빠지는 작은 사고(?)를 겪은 후로는 그조차도 어려워졌다.


요즘은 아이를 거실 한 중간에 앉혀놓고 알아듣거나 말거나 화장실에 잠시 다녀오겠다는 양해를 여러 번 구한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이 후다닥 화장실로 줄행랑을 치려는 계획이다. 물론 아이는 갑자기 크게 움직이는 엄마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재빠르게 기어 온다. 녀석 딴에는 엄마가 잡기 놀이를 하자고 한 것으로 오해했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인지 화장실로 가다서는 녀석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신이 잔뜩 나있다. 속도는 또 어찌나 빠른지, 기어 오는 것인지 달려오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언젠가부터 화장실 가기가 내게 가장 어려운 미션이 되어버렸다.


며칠 전 아침이었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에 재빨리 큰 일을 본다는 것이 그만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결국 나는 시윤이 옆에 붙어 앉아 화장실에 갈 타이밍을 살피는 신세가 되었다. 시윤이는 거실에서 한창 장난감 놀이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물고 빨고 흔들고 만져보며 모든 감각을 동원해 장난감과 교감하고 있었다. 마치 탐구하는 학자와도 같은 눈빛으로 장난감에 몰두하고 있는 녀석, 나는 드디어 타이밍이 왔다고 직감했다.


후다닥. 나는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가볍게 움직이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화장실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숨죽여 화장실 문을 조금 기울였다. 시윤이는 그때까지 열심히 옹알이를 하며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아, 이 얼마나 아름다운 타이밍인가. 저렇게 순하고 예쁜 아이를 내 뱃속에 품어 낳았다니... 순간 만족감에 가득 찬 몇몇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치 뻔히 알면서도 녀석이 혼자 놀아주고 있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시윤이가 칭얼대지 않고 조금만 혼자 놀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화장실에 있는 그 잠시 동안의 시간이 내게는 갑자기 얻은 휴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엄마에게 찾아온 짧은 순간의 평화였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아니 몇 초라도 지났을까.

갑자기 거실에서 들려오던 옹알이 소리가 끊기고, 딸랑이가 바닥에 툭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헉헉거리는 숨소리. 무슨 라디오 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처럼 내 모든 감각이 귀에 쏠리는 느낌이 들었다. 타박타박 타박타박. 시윤이는 숨을 몰아쉬며 기어가고 있었다.


시윤이는 긴 거리를 기어가지는 않았다. 조금 기다가 멈춰 서고, 또 조금 기다가 멈춰 섰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나, 엄마를 찾는 것이겠지. 나는 얼른 볼일을 마무리하고 화장실에서 나와 거실 쪽을 바라보았다.


거기에... 작은 눈망울에 눈물이 그렁그렁하고, 콧잔등이 빠알개진 우리 아들이 우두커니 혼자 앉아 있었다.

짤달막한 다리 위에 밀가루 반죽 같은 두 손을 올리고, 동그랗게 말려있는 솜뭉치처럼 앉아있는 시윤이의 뒷모습을 보는 순간, 뭔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아, 내가 저 아이의 엄마구나.


시윤이는 거실과 안방, 주방 사이 딱 중간에 앉아 있었다. 녀석은 갑자기 없어진 엄마를 찾아 나름 여기저기를 기어 다니며 빼꼼하고 고개를 내밀었었나 보다. 타박타박 기어가 고개를 쭈욱 하고 내밀면 그곳엔 항상 엄마가 있었으니까. 자주 가던 주방에 가서 고개를 내밀었지만 그곳에는 엄마가 없었다. 작은 방 문을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밀고 고개를 내밀었지만 그곳에도 엄마는 없었다. 작은 아이가 볼 수 있는 그 어디에도 엄마는 없었다.


나를 본 시윤이는 쏜살같이 내게 기어와 다리를 감싸 안았다. 방글방글 웃음을 지으며 내 옆에 딱 붙어 앉았다. 금세 빨갛던 콧방울도 제 색깔을 찾고, 눈물이 가득했던 자리에는 웃음이 차올랐다. 언제 그랬냐는 듯 장난도 치고, 애꿎은 벽도 콩콩 손바닥으로 두드려본다. 잠시 동안 떨어져 있던 엄마를 다시 만난 기쁨의 표현일 것이다.


말도 못 하는 이 어린것이 온전히 기댈 수 있는 한 사람, 바로 엄마였다.

그 어떤 말보다 시윤이의 눈빛이 내가 엄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고 내게 이야기해주었던 수많은 사람들, 하지만 그 날 시윤이의 눈빛보다 더 강렬한 것은 없었다. '엄마'라는 이름이 내 마음속에 새겨지는 순간이었다고 할까. 나는 엄마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그 이름을 그렇게 받아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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