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커뮤니티
결혼을 하기 전, 사람들은 내게 결혼을 아주 늦게 하거나 하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농담을 했다. 오래오래 회사에 충성하는 골드미스로 남을 것 같아 보인다며 연애를 부추겼다. 아마도 가장 마지막까지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은 김 과장일 것 같다며, 나중에 좋은 자리에 올라가면 본인을 잊지 말아 달라며 우스게를 했다.
내가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 매일 회사에만 있더니 언제 연애를 하고 결혼까지 하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 버젓이 주말이 이틀이나 통째 비어있는데 왜들 그러실까. 그즈음 내 주변의 싱글들은 상사들의 이상하고도 짖궂은 응원을 들어야 했다.
"일이랑 결혼한 것 같았던 김 과장도 연애하고 결혼하는데, 우리 최대리도 결혼할 수 있어! 열심히 해봐! 파이팅!"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퇴사를 했고, 아이를 가졌고, 아이를 낳았다.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집에만 있는 나를 보며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처음에는 거짓말이라고 믿지 않았다. 이직을 위한 퇴사가 분명하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임신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는 뭔가 다른 일을 시작하려나 보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일벌레 똑순이 김 과장의 빅피처가 있을 거라고들 했단다. 열 달이 지나 아이를 낳고도 집에만 있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더러는 안타까워했다. 여자는 이래서 사회생활하기 어렵다고들 했다. 언제 일하러 나갈 거냐고 부추기는 사람도 있었다.
반복되는 물음에 나는 그저 빙그레 웃음만 지었다.
"네가 안 나오니까 내가 너네 집으로 가야지. 이번 주 주말 시간 비워놔!"
"나야 언제든 집에 있으니까 상관없어. 편할 때 와."
"근데 너 정말 집에만 있는 거 맞아? 나는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집에만 있지, 그럼 내가 어디 가겠어?! 야근 그만하고 얼른 퇴근이나 해."
넌 애 키우는 게 체질인가 보다.
10년 동안 나를 가까이에서 봐온 동료의 한 마디. 신기하게도 그 말에는 웃음이 나질 않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한숨을 내쉬고, 잠든 아이를 내려다보며 이건 아닌 것 같다며 고개를 내젓는 날이 숱한데... 체질이라니. 하지만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또 슬며시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생전 처음 아이를 키우는 일. 그 일이 체질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 일이 몸에 꼭 맞는 맞춤 슈트를 입은 것처럼 편안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이고, 그 어떤 일보다 내게 큰 가치가 있는 일이니까 정성을 쏟으며 해내고 있는 것 아닐까. 맞다. 그저 척척 손쉽게 하는 일이 아니라 힘겹게, 어렵게 해내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왜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그것은 일종의 나의 신념, 아이에 대한 의리라고 답하고 싶다.
비록 서투르고 부족하더라도 무릎에 앉혀 그림책을 읽어주며 아침을 맞이하고, 칭얼대는 녀석을 두 팔로 꼬옥 감싸 안아 재워주고, 녀석이 겪는 수많은 '처음'들을 함께 해주는 것. 오래전부터 나는 아이를 낳으면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생각해왔다. 우리 엄마가 나에게 해주었던 것처럼 그렇게 녀석을 키우겠노라고 마음먹었었다.
누군가는 내게 젊은 날의 시간이 아깝다고 하고, 누군가는 내게 그러다 영영 집안에 갇혀 버린다고도 한다. 그렇게 경력이 단절되고, 사회로 나오는 길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며 혀를 찬다. 나라고 왜 무섭지 않겠는가. 나라고 왜 답답하지 않겠는가. 반짝거리는 햇살 아래 맘 편하게 산책 한번 나가기에도 벅찬 하루가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나라고 왜 지치지 않겠는가.
얼마 전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아무리 성공한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은 우리의 일생 중 어느 작은 한 부분이 편해지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조차도 대통령의 임기가 다하면 끝나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부모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한 사람의 인생에 이토록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이고, 작은 핏덩이에 불과했던 아이를 온전한 한 사람으로 길러내는 부모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비록 육아가 체질에 맞지도 않고, 지금 누구보다 잘 해내고 있다고 자부할 수도 없지만 '부모'라는 이름에 걸려있는 영향력의 가치를 높게 산다. 내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있어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이끌어주고, 따뜻한 눈으로 녀석의 한발 한발을 응원해 주고 싶다.
그렇기에 지금 이 시간이 힘들지언정 하찮지 않고,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하다 믿는다.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다면, 다른 무엇도 해낼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다.
그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버틴다.
그 마음으로 아이에게 함박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 마음으로 느리지만 조금씩 엄마가 되어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