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고, 이제야 어른이 된다.

조리원 커뮤니티

by 수련화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되지.
암만 뭐라 해도 결혼을 안 하면 아직 애지.

어른들이 입버릇처럼 하시던 말씀. 결혼이 무슨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양 사람은 무조건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고들 하셨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30대 중반에 결혼을 하면서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를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결혼 준비에 비하면 연애기간은 아이들 소꿉놀이 정도에 비유할만했다. 토라지면 풀어주고, 오해가 생기면 아니었다고 이야기하면 될 일이었다. 둘만의 연애 때는 그랬다.


하지만 결혼은 달랐다. 둘 중 누구라도 토라지면 감정의 골이 깊게 남았다. 집안 어르신들 사이에 오해가 생기면 큰 싸움으로 번지기 일쑤였다. 그 사이에 끼인 우리는 어찌할 도리없이 진땀을 흘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것이 있었고,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일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 이래서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고들 하셨던 건가. 한숨이 나왔지만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남자였기에 참았고, 이겨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모든 것이 지나가버린 과정이 되자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애를 낳아봐야 부모 귀한 줄 알지.
자식새끼를 길러봐야 엄마 마음을 알아.


결혼이라는 문턱을 힘겹게 넘어 헥헥거리고 있을 때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 숨 좀 돌리자고 말하기도 전에 애는 언제 가질 거니, 언제 낳을 거니 하시며 성화이시다. 우리 뜻에 따르겠다고 하시면서도 동네 친구 누구는 벌써 할아버지가 되었다더라, 할머니가 되었다더라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늘어놓으신다. 결국 손주를 보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시다. 무슨 말만 나오면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알 거라며 눈을 흘기신다. 결혼을 하고 나면 어른이 된다 하시더니 금세 말을 바꾸시며 부모가 되어봐야 사람이 된다고 혀를 끌끌 차신다. 어른이 되고, 사람도 되고 나면 그 뒤엔 뭐가 되냐고 묻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지만 꾸욱 참아본다. 결혼식을 치르며 늘어난 건 눈치뿐이다. 어른이 되는 건 결국 미운털 안 박힐 만큼 눈치껏 행동하는 요령이 생기는 게 아닐는지. 세상살이는 조금 더 편해졌을지 모르지만, 그저 그런 좋은 사람으로 남게 되는 것 같아 왠지 마음 한구석이 쌉싸름 해진다.


그렇게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어 세상의 빛을 보게 하였다.

나는 결혼을 해서 어른이 되었고,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면서 내 부모 귀한 줄도 아는 완전체가 되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어른들 말씀은 어떤 부분 맞았고, 또 어떤 부분은 틀렸다.

결혼을 한다고 해서 곧바로 어른이 되지 않았고,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눈물을 흘리며 부모님께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어른이 될만한 마음의 틀을 마련하였고, 아이를 낳으면서 부모님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느리고 둔해서인지 나는 결혼과 육아, 둘 다를 하고 나서야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결혼 준비를 하면서 더 이상 이 세상이 나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은 함께 살아가는, 아니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두 집안 모두 가슴속 앙금 없이 기분 좋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았다. 아니 가장 좋다기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내게 가장 편한 길이었다. 내가 시달리지 않고 우리 가족이 찡그리지 않는 길이었다. 그런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어른이 되었다기보다 내 마음의 틀이 조금 넓어졌다. 나와 다른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그릇을 가지게 되었다.

예전에는 나와 다르면 무조건 도끼눈을 떴다. 나와 다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고, 잘못된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에는 나와 다른 사람이 너무 많았다. 알고 있었지만 굳이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것을 결혼을 하게 되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랑 너무 달랐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들은 그보다 더 달랐다. 하지만 그들 또한 본인들이 맞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 하긴 잘못된 방향으로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모든 사람은 본인이 옳다고 믿는 대로 생각하고 행동한다. 서로 사랑하지만 달랐던, 아니 다를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이의 접점을 찾아가는 것이 결혼이었다.


결혼 준비가 난이도 '하' 정도의 수준이라면 육아는 난이도 '상' 이상이라고 할까.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그래도 결혼생활이라는 것은 말이 통하는, 말을 할 수 있는 두 어른 간의 문제였다. 마음을 열고 시간을 내어 대화를 하면 상대의 속뜻을 이해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 육아에는 그런 여지 조차 없었다. 녀석의 작은 눈망울에서 눈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말 못 하는 갓난쟁이의 눈물 앞에 엄마는 무능력했다. 초보 엄마는 아직 서툴렀고, 겁이 많았다.


내 품에 안겨있는 녀석을 챙기기에도 버거운데, 내 곁에 있는 사람 또한 잊으면 안 되었다. 초보 엄마라 힘들듯이, 초보 아빠 또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아이가 있기 전 우리가 먼저였다. 부부관계를 해치는 육아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없다고 믿었다. 때론 힘이 되었지만, 때론 서로에게 짐이 되기도 했다. 육아는 아이와의 끈을 만들고, 부부 사이의 끈을 더욱 단단히 하는 일이다. 둘 다 놓치지 않아야 하기에 엄마는 한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 결혼이 참아내는 것이라면 육아는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아내는 것보다는 기다려 주는 것에 가깝다.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서두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속도를 아이가 정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무리 조바심을 낸다고 해서, 아빠가 아무리 부추긴다고 해서 아이는 절대 빨리 자라지 않는다. 아이는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있다. 부모는 아이의 옆에서 그 속도에 맞추어 그저 기다려 주기만 하면 된다. 녀석이 알아서 하나하나 해나갈 수 있도록 응원해 주는 것뿐이다. 그 시간을 절대 참아내는 시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 누구보다 가장 노력하고 있는 사람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굳이 더한다면 내가 사랑하는 여자가 엄마가 될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아빠가 될 때까지 기다려 주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는 아이를 낳고 나서 비로소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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