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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May 29. 2019

오늘, 하늘을 올려다본 적 있으세요?

 2010년 어느 봄날, 파트장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김대리, 정말 이러다 전쟁 나는 거 아냐?"

 "네? 지금 제 마음속에 전쟁이 날 것 같은데요?"

 흐트러진 서류더미를 정리하며, 걸려오는 전화를 받아가며 나는 퉁명스레 답했다. 이리저리 기웃대는 파트장이 꼴 보기 싫은 탓도 있었다. 몇몇 프로젝트가 겹치고, 당장 보고해야 할 건이 생겨서 정신이 없었다. 또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듣고 와서 저러는 걸까. 어디서 뚱딴지같은 소리를 해대는가 싶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서쪽 바다에서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얼굴이 화끈했다.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는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회색 사무실에 갇혀 일만 하다가 세상이 끝나버릴 것만 같았다. 화장실에 난 작은 창문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후~ 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회사를 다닐 적엔 하늘을 올려다볼 기회가 많지 않았다. 고개를 들어 쓰윽하고 한 번 쳐다보면 그만인 것을. 그 몇 초 조차도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오늘 하늘 봤어?'라는 물음이 신선하게 들렸던 그때. 나는 종종 깜깜한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늦은 야근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들이 늘어선 도로 위로 내린 까만 밤하늘이 내겐 익숙했다.

 아주 가끔은 눈부신 오후의 하늘을 올려다볼 때도 있었다. 외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대로 퇴근하고 싶다며 투덜대면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도로를 가득 메운 차들을 보며 다들 일은 안 하고 어디를 가는 걸까 궁금해했다. 어쩌면 너무 예 하늘을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사무실에 갇혀 지내야 할 시간, 파란 하늘을 쳐다보는 것은 내게 사치였다. 괜히 마음만 부풀게 했다. 그럴 바엔 외면하는 편이 나았다. 모르면 속상하지도 않을 테니까.


 그때 나에게 일은 전부였고, 내 모든 것을 걸어도 아깝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과연 내 머리 위의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도 없이 모든 것을 쏟아부을 만큼 중요한 일이었을까. 10년의 회사생활이 내게 이 질문을 남겼다.

 지난 회사생활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나를 성장시켜 주었고, 많은 추억들을 남겼으며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을 남겨주었다. 하지만 조금 쉬엄쉬엄 해도 괜찮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한다. 난 왜 나를 좀 더 돌보지 않았던가. 마음의 여유를 좀 더 부리지 못했던가. 왜 그때를 즐기지 못했던가.




 그때에 비하면 요즘은 과하게 하늘을 자주 쳐다본다.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로 나가 바다에 비친 하늘을 본다. 멀리 떨어진 산등성이를 보며 오늘 날씨를 가늠한다. 아파트 화단을 걸으며 하늘을 쳐다보고, 버스를 기다리면서도 눈부신 하늘빛에 감사한다.


 이제 내게 하늘은 어쩌다 시간을 내어 올려다보는 것이 아니다. 휴가지의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서만 볼 수 있는 귀한 것도 아니다. 매 순간 나와 내 아이가 함께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하늘은 시시각각 변한다. 같은 순간이라도 이쪽 하늘이 다르고, 저쪽 하늘이 다르다. 구름이 그림처럼 예뻤다가 순식간에 흩어져 버리기도 한다. 마법을 부린 것처럼 노을이 아름다웠다가 금세 어둠이 내려앉기도 한다.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모든 것이 순간이구나, 눈 깜짝할 찰나에 지나가는구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내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하늘이 얼마나 많았을까. 내가 그간 놓쳐왔던 그림 같은 풍경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흘러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보다는 앞으로 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하곤 한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쯤은 알만한 나이가 되었기 때문에.

 지나간 후회에 잡혀 있다가는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것 또한 놓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도 나는 시간 날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본다.

 마알간 눈을 하고 내 옆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아들 녀석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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