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아이를 기르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자연스레 학원이나 과외에 시달리지 않고, 아이의 적성 발견에 대해 다양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대안학교에 대한 관심도 커져갔다. 지인 중에 두 남매를 모두 대안학교에 보낸 분이 있어 종종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되는데, 역시나 내가 생각한 이상적인 교육에 가깝다는 생각을 자꾸 하게 되었다. 물론 남의 떡이 커 보이는 법. 부럽다는 말에 지인은 늘 손사래를 치긴 하지만 말이다.
"도시에서 학원 다니면서 시달리는 것보다 더 좋아 보여요. 저도 아이를 낳게 되면 대안학교 같은데 보낼 거예요."
"잘 크고 있는지는 지나 봐야 아는 거지. 아직 나도 결과를 모르니까. 그리고 아이를 대안학교에 보낸다는 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니야. 부모들이 할 일이 얼마나 많다고. 부모 참여수업도 많고, 모임 만들어서 거의 매주 캠핑도 다니지. 발표회 같은 것도 많아서 주말마다 지방에 가야 하니 일정도 빼야 하고. 다행히 마음 맞는 사람들이 있으니 하는 거지, 나 혼자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하지."
자연스레 학원과 과외, 심지어 어학연수로 이어지는 요즘의 사교육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놀이터에 아이들이 없어서 친구를 만들어 주려고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보낸다는 소리도 나왔다. 놀이터에 나가서 놀려면 또래 엄마들끼리 미리 연락을 해서 만날 시간을 정하고 놀이터로 나간다고 했다. 텅 빈 놀이터에서 내 아이 혼자 놀게 할 수는 없으니, 엄마들의 마음도 십분 이해가 되었다.
결국에는 속도야.
내가 원하는 속도에 맞는 곳으로 가야지.
아니면 나도, 아이도 바보가 되기 마련이지.
내가 50km의 속도로 아이를 키우고 싶은데, 모두 다 100km로 달리고 있는 동네에 살고 있으면 50km로 달리고 있는 나와 아이는 바보 취급을 당한다고 했다. 반대로 모두가 50km로 달리고 있는 동네에서 내 아이만 100km로 달리고 있으면 그 또한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테지.
부모가 원하는 속도가 얼마인지, 내 아이에게 맞는 속도가 얼마인지를 미리 파악하는 것. 그리고 그에 맞는 동네에 가서 살면서 아이가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니겠냐고 했다. 나름 교육에 대한 철학이었고, 인생에 대한 속도론이었다.
가볍게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온 그 이야기가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았다.
나는 과연 얼마의 속도로 살고 있는가. 그리고 결국 얼마의 속도로 살고 싶어 하는가.
어쩌면 우리는 내게 맞지 않는 속도로 달리고 있는 곳에 살면서 끊임없는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현실에 대한 잠시의 위로를 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해야 내 마음에 꼭 들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들이 조금은 덮어질지도. 원래 내가 바라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니 현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는 숨구멍이라도 틔워놓아야 할 것이 아닌가.
당시 나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복잡하고 붐비는 곳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10년을 매일같이 콩나물시루 같은 지옥철 2호선을 타고 출근을 했다. 가끔씩 워킹맘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영어유치원에, 조기 어학연수, 사립 초등학교 이야기가 가득했다. 입주 도우미 면접을 위해 주중에 연차를 내는 엄마들도 더러 있었다. 그 엄마들은 100km로 달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100km로 달려야만 하는 것일까.
어쩌면 회사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우리는 불평불만을 늘어놓을 숨구멍이 필요하다. 100km로 달리고 있는 회사를 다니면서 우리는 50km, 아니 그 이하로 달리고 있는 전원생활을 꿈꾼다. 휴가를 내고 훌쩍 떠나고 싶다고, 어디 시골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멍 때리며 쉬고 싶다고 울부짖는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빨리 달리고 있는 내게 위안을 준다. 내가 이뤄야 하는 이상향에 대한 이미지가 내게 힐링을 주는 것이다. 잠시라도 이 곳에서 떠나게 되면 며칠이라도 그렇게 살겠노라고 다짐을 하게 된다. 그 며칠을 위해 오늘에 최선을 다하게 된다.
가끔 도심 한가운데서 억지스럽게 느린 걸음으로 사는 사람들을 만난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느린 걸음으로 걷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지 않고 한창 달리고 있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서 홀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긴다. 내가 다니던 회사에도 한 분이 계셨다. 주위 사람들은 야근에, 출장에... 바빠 죽겠는데 하루 종일 도(道)에 대한 책을 들고 다니시며 혼자만의 세상에 계셨다. 출근하고 싶을 때 출근하시고 집에 가고 싶으실 때 돌아가시는. 진정한 도인이었다. 그저 이상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지금 되돌아보니 우리가 빨리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이 이상해 보였던 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분이 모두가 느리게 살고 있는 곳에 살고 있었다면 이상해 보였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이상하게 바라보는 눈빛에 맞서, 그분은 우리를 얼마나 측은하게 바라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위해 저렇게 빨리 달려가는 걸까 하는 눈빛으로 우리의 하루하루를 관찰했겠지.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를 가지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 속도가 맞는 사람들 틈바구니 속에 살면서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나는 지금 몇 km로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