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을 향한 최대의 공격.

by 수련화
여러분 중에서 한 명만이
임원이 됩니다.
그 자리에 오르고 싶지 않나요?


내가 신입사원이었던 시절. 그때에는 '임원이 되는 것'을 회사생활 최대의 성취라고 여겼다. 신문기사에도 연신 가슴팍에 별을 단 회사원 이미지가 등장했다. 사회 분위기상 임원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던 때였다. 십 년 정도가 지난 지금, 임원의 명성은 예전에 비해 훨씬 못하다. 임원의 절대적인 수가 늘어난 탓도 있겠지만, 생각보다 임원의 수명이 짧은 탓이다. 안정적인 고용 보장이 우선인 사회 내에서 임원의 위치는 좁아질 수밖에. 임원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불안정함을 꼬집어 빛 좋은 개살구, 지체 높은 비고용직일 뿐이라며 비아냥 거리기 시작했다. 먹지 못할 감이라면 흠집이라도 내어야 속이 시원한 게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성질일 테니까.

나는 입사를 하면서 막연히 임원이 되고 싶어 했었다. 회사원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에 이르고 싶었다. 그것이 성공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어린 여대생은 사회라는 굴레 속에서 성공하고 싶었다. 모두 다 인정하는 성공의 자리는 다니는 회사에서 임원을 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말이다.
250명 남짓 되는 신입사원들이 빼곡히 앉아있는 신입사원 교육과정 중에 어느 강사가 이야기했다. 이 중에 임원은 한 명이 나올까 말까 하다고. 임원이 되고 싶은 사람은 손을 들어 보라는 강사의 요청에 어느 누구 하나 손을 들진 않았으나, 눈빛을 보니 그 한 사람이 나였으면 하는 몇몇이 보였다. 그들의 눈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든 내가 그 자리에 오르리라. 다짐의 눈빛이었다.

그 뒤로 십 년의 시간이 흐르고, 난 십 년 동안 많은 임원들을 마주했다. 코 앞에서 임원의 생활을 목격했고, 임원으로 승진하는 순간도 여럿 지켜보았다.
신입사원 때에 가졌던 임원에 대한 환상. 그것은 이미 퇴색되고 없었다. 물론 임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것은 많았다. 선망을 받아 마땅할 자리에 대한 위엄은 분명 있었다. 말 그대로 회사 내에서 높은 사람임은 틀림없었다. 높은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수많은 혜택들이 있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만큼의 희생 또한 강요했다.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 주말 출근은 물론이고 우리가 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임원들은 상상 이상의 강도로 회사에 헌신하고 있었다.

내가 임원에 대한 꿈과 희망이랄 것을 단숨에 지워버린 순간이 있다. 이는 나중에 내 퇴사 결정에도 한몫을 크게 하게 되는데, 다시 곱씹어 봐도 씁쓸한 순간이다.
회사에서 사원들의 이해를 구해야 할만한 일이 있어 자리를 만든 적이 있다. 전무가 나와 회사의 정책에 대해 설명하고, 사원들의 이해를 구했다. 회사에서 지원해 줄 수 있는 것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고, 사원들의 질의도 받는 자리였다.

전무는 사원들에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사원들은 오늘을 살고 있었다. 당연히 이야기를 돌림노래처럼 맴을 돌았고, 합의점은 찾아지지 않았다. 모든 대화가 그렇듯이 서로가 바라보는 곳이 다르니 감정은 격해졌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점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실망과 탄식, 안타까움의 시간이 이어졌다.
"여러분, 제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저를 믿어주세요! 내년에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전무는 사원들의 이해를 구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회사의 일방적인 설명에 화가 난 대리 하나가 마이크를 쥐었다.

전무님이 내년에
그 자리에 계실 거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그때 저희는 누구와 이야기해야 되나요?


일순간 정적이 흘렀다.
자리에 앉아있는 사원들도, 앞에 서 있는 전무도 할 말을 잃었다.
모두 다 알고 있지만, 입 밖에 내지 않았던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느낌이었다. 그 대리는 전무를 내년에 저 자리에 없을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나 보다. 지금 이 자리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들이 모두 사탕발림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그 설명회 자리를 떠나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했던 회사원으로서의 최고의 성공, 임원이 된다는 것이 저런 것인가. 당장 3개월 뒤, 6개월 뒤의 일도 확언하지 못하는 자리가 임원이었던가.

막연히 십 년의 회사생활을 해오는 동안, 나는 나의 하루하루가 임원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임원이 되겠노라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며 다니진 않았으나 열심히 성실하게 근무를 하다 보면 내게도 기회가 오겠지, 기회가 왔을 때 굳이 마다할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임원이 된다는 것은 회사원이라는 내 직업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성취를 이룬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일 테니.

하지만 그 순간을 겪고 나서 나는 고민이 되었다. 임원이 된다는 것이 과연 내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가 이끌고 있는 조직 내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작은 약속 하나 내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자리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다.

모든 일이 그러하겠지만, 좋을 때의 단상은 모두 좋아 보인다. 문제는 좋지 않을 때의 모습인데, 그 날의 기억은 내 기억 속에 꽤 깊이 각인이 되었다. 퇴사를 하고 전혀 다른 곳에서 전혀 다른 꿈을 꾸고 있는 지금에도 그 순간의 먹먹함은 쉽게 지워지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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