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정성.

by 수련화

예전에 모시던 상사를 만났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함께 일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갔다. 모든 것이 서툴렀던 그때, 그래서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무용담들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련한 추억이었다.

그때, 너한테는
진심과 정성이 있었지.
운영하는 사람한테는 그게 필요하거든.


당시에 나는 강사님들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강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교육과정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니 거의 모든 것을 강사가 좌지우지한다고 할 수 있다. 강사님들은 교육생이 입과 해서 수료할 때까지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다. 나는 강사님들의 언행 하나하나가 우리 회사의 얼굴이라고 믿었다.

예산이 넉넉하다면야 못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지만 모든 회사가 그렇듯이 예산은 늘 부족하기 마련이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에 어린 나는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작은 이벤트를 준비했다. 초록색 뚜껑의 목캔디를 한 통씩 사서 정성스레 리본과 스티커를 붙여 강사님들 책상 위에 올렸다. 출근하시는 분들이 보실 수 있도록 아침시간을 공략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티커에 아기자기한 문구도 함께.

우리 회사의 얼굴,
바로 교수님입니다!


목캔디 한 통이 얼마나 할까. 하지만 강사님들은 제법 감동을 받으셨나 보다.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때의 목캔디 이야기를 하시는 걸 보면 말이다. 거창하긴 하지만 당시 나는 강사님들이 우리 회사의 Contents Creator라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가 다루는 콘텐츠들이 분명 그들의 손 끝에서 나온다고 믿었고, 실제 그렇게 그분들을 대했다. 아무 힘이 없는 대리 나부랭이의 믿음이었지만, 그분들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었으리라. 누군가 나를 인정해 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따뜻함을 준다.




서울을 떠나 파주로 이사를 왔다. 파주에 있다고 하면 친구들은 손사래를 친다. 이제 못 만나는 거냐며 볼멘소리를 해댄다. 마치 내가 해외로 이사를 간 사람인양 더는 만나지 못할 사람이 된 것처럼 대한다. 왠지 이름만 들어도 찬 바람이 쌩하고 불어 닥칠 것 같은 파주. 이사를 준비하는 내 손길이 자꾸 무거워져만 갔다.
사실 나는 이사할 집을 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출산을 하고 조리원에 있는 동안, 남편이 집을 계약했다. 그리고 보름도 채 되지 않아 급하게 이사를 오게 된 것이다. 갓난쟁이를 데리고 이사할 집을 보러 다닐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아이를 맡겨놓고 겨울이 다가오는 쌀쌀한 날씨에 부동산을 뒤지는 일도 쉽지 않았다. 나는 그저 남편에게 모든 것을 일임했다. 그대의 안목을 믿어요.

새 집의 첫인상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말도 안 되게 넓은 현관. 자리를 깔면 현관에 드러누워 잠을 청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이없는 웃음이 나왔다. 아니 아파트에 무슨 현관이 이리도 넓은가. 현관만 보면 50평 아파트라 해도 믿겠네. 남편을 보며 나는 그저 헛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그 말도 안 되게 넓은 현관이 요새 들어 내게 감동을 준다.
유모차도 쏙, 분리수거함도 쏙. 아이를 키우는 엄마에게 넓은 현관이 주는 감동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알고 보니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가 신도시에만 아파트를 지어 분양을 한다는데, 어린아이를 키우는 가족들을 고려한 설계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이것도 설계자의 관심과 배려인가. 설계자도 분명 어린아이를 키우고 있는 가족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일할 때 만나게 된 분인데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연락을 하고 있는 대표님이 있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그런데 마주할 때마다 대표님은 내가 처음 연락드렸을 때의 강렬한 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신다.

주차지원을 해드리겠다며 대뜸 차종을 물었다는 것이다. 호구조사도 아니고 차종을 왜 묻는지 의아해하는 대표님께 내가 이런 말을 전했단다.
"대표님, 저희 회사 지하 주차장 입구가 많이 좁아요. 강사님들이 오시다가 많이들 힘들어하시거든요. 조심해서 내려오세요."

그저 스치는 한마디였지만, 진짜 열심히 강의를 준비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드셨단다. 이런 소소한 부분까지 챙기는 정성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도 가지셨단다.


한동안 모 건설사의 '진심이 짓는다'라는 카피가 유행한 적이 있다.
설계자에게는 그저 일일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보금자리가 되는 일. 설계자의 정성은 어느 한 가족에게 편리함을 주고 감동을 준다.
교육 운영자에게는 그저 일일 뿐이겠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교육과정이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일터에 대한 자부심이 될 것이다.

진심을 더한 정성이 가지는 힘은 부드럽지만 생각보다 강하다.
우리는 진심을 다해 일을 하고 있을까. 우리는 정성을 다해 일을 하고 있을까.
본인이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하게 하는 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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