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행복이 주는 즐거움.

by 수련화

모든 인간은, 아니 생명을 가진 모든 것들은 고통을 싫어한다. 그것이 고통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한, 가급적 피하고 싶어 하는 것이 당연하다.

늦은 시간까지의 야근과 추가 근무, 주말 출근이 고통이라고 가정해보자. 아니 그것은 가정이 아니라 사실이니 회사원들에게 손에 꼽히는 고통이라고 하자. 야근과 주말 출근을 좋아하는 회사원들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전쟁과도 같은 육아의 현장을 피해 잠시 회사라는 기둥 뒤에 숨어있는 아빠들을 적지 않게 목격했다. 흔하지는 않았으나 엄마들 사이에서도 가끔 발견할 수가 있었다. 시어머니께 아이들을 맡기고 참석한 늦은 회식이 싫지 않은 어느 날이 분명 있기 마련이니까.

이런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회사원들은 회사에 오래 남아있는 것을 싫어한다. 회사원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만큼 회사와 회사원의 관계는 그리 좋지 못하다.

하지만 우리는 간혹 회사생활을 재밌어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사실 나도 그랬다.
지난 10년 간의 회사생활 모두가 하나같이 재미있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재미있고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에는 주저함이 없다.

몇 달씩 계속되는 프로젝트에도 나는 즐거웠다. 내 일이 좋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았다. 누군가 내게 몰입의 즐거움을 아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무언가에 빠져들었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을 회사에서 경험했다.

물론 즐거움의 대가는 가혹했다. 수많은 청춘의 날들을 꽉 막힌 사무실에서 보내야 했고, 지하철 막차를 타기 위해 헐레벌떡 뛰어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막차 타고 퇴근해서 첫차 타고 출근하는 날도 적지 않았다. 어쩔 수 없는 체력의 한계에 연신 하품을 해대면서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쫓기듯 일을 했다. 그래도 행복했다. 가끔은 나 조차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 그렇게 무엇인가를 내 손으로, 내 힘으로 만들어내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내가 한 일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어가고, 상대방에게 의미가 전달된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했다. 물론 그 행복한 일을 돈을 벌면서 할 수 있다니. 그저 감사한 일이지 않은가.

그렇게 열정적으로 일하던 한 때가 지나고 난 뒤, 나는 이전보다 훨씬 편한 일을 하게 되었다. 우선 몇몇 특별한 날들을 제외하고는 정시출근과 정시퇴근이 가능해졌고, 내 체력을 온전히 바쳐 메워야만 하는 시급한 업무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좀 더 많은 권한도 가지게 되었고, 함께 일하는 후배들도 늘어났다. 하지만 왠지 예전의 그 행복감은 누릴 수가 없었다. 아무리 동료들과 하하호호 웃으면서 일을 해도 내 안에서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프로젝트를 떠올리곤 한다. 회사 동료와 이른 저녁, 가벼운 맥주 한 잔을 할 때에도 그때의 무용담이 술술 입 밖으로 나온다.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그때의 기억을 다시 더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밤낮없이 일하던 컨설턴트가 이직하고 난 뒤에도 그 당시의 치열했던 일터를 떠올리는 것처럼. 힘든 작업을 마치고 난 장인이 본인의 창조물을 평생을 두고 애정 하는 것처럼. 나 또한 그때의 긴박했던 하루하루가 몸에 새겨져 있나 보다.

감히 '고된 행복'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감히 회사원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성취라고 하고 싶다.
정말이지 그때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회사에서 한바탕 재미있게 놀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었다. 놀면서 일하고, 일하면서 놀았던 그때. 몸은 고되었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행복했던 그때. 가끔은 아드레날린이 퐁퐁 솟아오르던 그때를 다시 느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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