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기 전, 친구들이랑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한참 하다 보면 자연스레 결론이 한쪽으로 몰린다.
원래 남자들은 다 그래.
그냥 그러려니 해야지.
내가 여럿 만나봤는데, 다 똑같더라.
자리에 있던 일원은 까르르 웃으며,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아무리 가르치려 해도 안되더라며... 그냥 남자와 여자는 다르다는 걸 받아들이기로 했다는 맥 빠진 푸념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남자 친구들의 자랑인 듯 험담인 듯 애매모호한 수다는 끝이 난다. 적어도 연애에 있어 여자의 생각은 대부분 옳고 남자들의 이상한 행동들은 고치기 힘들다는 만고진리의 메시지를 남긴 채 다들 다음 자리를 기약하며 일어선다.
그런데 참 씁쓸한 것은 그렇게 돌아서는 발걸음에 아주 자그마한 생각의 찌꺼기가 남는다는 것이다. 미처 친구들 앞에 꺼내놓지 못한 나만의 생각. 나만의 신념.
"그래도 내 남자는 좀 다르지. 그럼 그럼. 내 남자는 특별하지."
하기야 그런 생각이 없다면 어떻게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할까. 그래도 내 남자만큼은 남들과 다르며, 특별하고, 내게 만은 최고의 남자라는 확신이 있어야 결혼이라는 어마 무시한 결단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그 신념이 평생을 가는 단단하고 확고한 것이 아니다 할지라도 적어도 결혼 준비를 하고 식장으로 들어설 때 까지는 유지되는 굳건한 믿음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내 남자'에 대한 도토리 키재기 논란은 결혼 후에도 꾸준히 이어진다.
남편들이 이래서 별로다, 저래서 별로다, 이래서 살 수가 없다... 푸념을 한바탕 늘어다 놓지만 결국 마지막엔 심연 속에서 이런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그래도 우리 남편밖에 없지. 나한테 꼭 맞는 내 짝이지."
가끔씩은 이런 모순된 태도에 스스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한다. 이런 팔불출.
처음부터 남편 흉을 보지 말든지, 푸념을 하지 말든지.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푸념은 푸념이고, 만족은 만족이다.
한 번은 결론 없는 수다에 끼고 싶지 않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친구들의 남편 험담에서 살짝 비켜나 있었다. 대신 적극적인 맞장구와 유래 없는 집중력으로 대화에 몰입했다. 하지만 그 또한 소속감의 문제. 같이 남편 험담을 해주어야 수다의 재미가 찰지게 살아나는 것. 내 남편의 험담을 기다리는 그녀들의 간절한 눈빛에 슬그머니 며칠 전 에피소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있나. 그런 대화 속에서 작게나마 남편의 소중함을 다시 찾아본다는 어이없는 자기 합리화로 모임의 정당성을 찾아본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회사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상사에 대한 뒷담화, 후배에 대한 못마땅함, 회사에 대한 신랄한 비판. 회사를 다니는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저녁 안주거리로 얼마나 자주 회사에 대한 불만을 식탁 위에 올렸던가.
험담이 버릇이 되고, 그것에 서서히 중독되어 가는 생활.
너나 할 것 없이 회사에 대한 욕을 해댔다. 상사에 대한 인격모독은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입에도 담지 못할 기준으로 동료들을 재단했다. 이 사람은 이래서 별로고, 저 사람은 저래서 별로였다. 그게 회사생활이었다.
나와 함께 회사 이야기를 술안주로 삼았던 수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열심히 회사를 다닌다. 마치 이혼하지 않고 즐거운 결혼생활을 이어가는 내 친구들처럼.
"회사는 다 그렇지 뭐. 일개 사원들의 의견이 뭐가 중요하겠어."
"사축은 그저 일이나 하고 월급이나 받으면 되지 뭐."
왜 나는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내 남자는 다르다고. 내 남자는 특별하다고.
왜 나는 당당하게 말하지 못했을까. 우리 회사는 그래도 조금 다르다고. 나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즐겁다고.
무리 속에 섞여 들어가고 싶어서 내가 가진 소중한 것을 폄하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렇게 해야 그 들 속에 완전히 숨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존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흑과 백이 아니라 어중간한 회색을 선택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본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면 내가 편의에 의해 회색을 선택했는지, 진정 내 의지로 회색을 택했는지도 헷갈릴 판이었다.
꽤 오래전에 들었던 말 중에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 있었다.
남을 향한 험담은 결국 그 사람이 듣기도 전에 가장 먼저 내 귀로 다시 들어온다. 좋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는 내 입과 제일 가까운 것은 험담의 대상이 되는 그 사람의 귀도, 나와 같이 험담을 하고 있는 친구의 귀도 아닌 내 귀다. 그렇게 험담이 내 귀와 입을 드나드는 악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험담은 상대를 죽이기 이전에 나를 서서히 병들게 한다는 주장이었다.
어떻게 모든 남자가 똑같을까.
어떻게 모든 회사가 똑같을까.
뭔가 확실히 달랐던 그때, 사랑에 빠졌던 첫 순간을 떠올려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