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0년이나 지난 일이다.
하지만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아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또렷해지는 장면 하나가 있다. 마치 그 장면은 동영상이 아닌 커다란 스냅사진처럼 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다. 나는 가끔씩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사진첩에서 소중한 사진을 꺼내어 쳐다보듯 그때의 기억을 들춰낸다. 어쩌면 내게 있어 지금 잘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게 하는 척도라고 할까.
입사동기 중에 호기심이 많은 친구가 하나 있었다. 지금까지도 내가 높이 사는 그 친구의 장점은 모르는 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 궁금한 것은 주저하지 않고 누구에게든 질문을 해본다는 것이다. 물론 그 덕분에 친구는 부끄러운 어록을 꽤 많이 가지게 되었고, 적지 않은 놀림거리를 가지게 되었지만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그 친구가 내게 진지한 눈빛으로 물었다. 여느 때처럼 장난스레 넘길 수가 없었다. 그 친구의 눈빛은 차분했고, 진지했다.
넌... 요즘 행복하니?
"응. 나 요즘 행복해."
다른 때 같았으면 무슨 그런 질문이 있냐며 웃어넘기거나, 또 어떤 장난을 치려고 그러냐며 대답을 회피했을 법 한데 그날은 왠지 내 마음속에 있는 대답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망설이지 않는 내 대답에 그 친구도 적잖이 놀란 기색이었다. 진짜 행복하냐고 몇 번이고 다시 확인을 했다. 마치 의도치 않게 귀한 것을 찾게 된 사람처럼. 그런 사람의 눈빛으로 말이다.
사실 그때의 내게 행복이라는 것은 그리 귀한 것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부족한 것이 없는 상태였다. 어렸을 적부터 꿈에 그리던 기업은 아니었으나 우리나라 국민 누구나, 특히나 부모님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좋은 직장에 큰 어려움 없이 입사를 했다. 티브이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멋들어진 강남 대로변에 있는 사무실을 향해 똑 떨어지는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는 하루하루. 죽고 못 살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름 달달한 남자 친구도 있었고, 딱히 눈에 띄는 근심거리도 없었다. 그 당시 나는 행복했다. 피 터지게 이뤄내고 싶은 단기 목표도 없었다. 이렇게 산다고 해도 크게 내 인생이 뒤틀릴 것 같지는 않았다.
"내가 좀 행복해 보이는 애들이 있으면 꼭 이 질문을 하거든. 그런데 생각만큼 행복하다고 바로 대답하는 애들이 없어. 지금까지 3명을 봤는데, 그중에 하나가 너다."
"아, 그래? 나머지 2명이 누군지 궁금한데?"
"하나는 고등학교 때 내 친구. 지금 의사가 되었지. 공부하는 게 좋데. 의사가 된 것도 좋고. 또 하나도 내 고등학교 동창인데, 걔는 진짜 생각 없이 사는 애. 연애하고 클럽 다니는 하루하루가 행복하대. 지금 몸과 마음이 건강한 자기 상태가 너무 행복하대. 그러고 세 번째가 너야."
10년 전의 나는 행복했다. 행복했었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서슴지 않고 입에 올릴 만큼 행복이라는 기준 앞에 당당했다. 내 생활에 만족했고, 부족한 것이 없었다. 적어도 행복이라는 질문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대답할 정도로는 행복했다. 그것만은 확실하다.
6~7년쯤 지나 회사생활이 익숙해지고 매너리즘이라는 것이 내게도 찾아왔다. 처음 퇴사라는 단어를 입에 올렸을 때, 엄마는 내게 조용한 역정을 냈다. 내가 조용한 역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이유는 우리 엄마가 내게 큰 소리는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빛에는 불만과 안타까움이 가득했지만, 30대의 딸아이의 고민 앞에 엄마는 학창 시절의 어린아이를 다루듯 큰 소리는 내지 않았다. 그저 이런저런 회유의 말들로 스스로 마음을 고쳐먹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눈빛이었다.
"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에 다니면서 돈도 잘 벌잖아. 남자 친구도 있고, 죽기 살기로 다이어트해야 할 만큼 몸매가 엄청 못난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잘릴 만큼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고, 자리가 위태로운 것도 아냐. 내가 당장 결혼하라고 닦달하는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
"매달 월세에 허덕이면서 몇 년을 일했는데 모아놓은 돈도 없잖아. 회사원이 뭐야. 그냥 회사 다니는 사람이잖아.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미래도 불투명하고. 하루하루 나이는 들어가서 이제 노처녀라 해도 할 말도 없어. 그냥 이렇게 회사 다니는 것 말고, 내가 없잖아. 내가. 엄마, 이게 진짜 행복한 거야? 내가 지금 행복해 보여?"
"남들은 들어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는 회사야. 거기 다니는 게 얼마나 좋은 건데. 뭘 더 바래. 회사 다니면서 배우고 싶은 거 배우고, 하고 싶은 거 해. 그럼 되잖아. 남들 다 그렇게 살아. 그렇게 살고 싶어도 못 사는데 아주 복에 겨워서 난리다. 증말."
행복의 기준은 주관적이다.
20대에 나를 채웠던 행복의 기준들이 이제 더 이상 나를 채워주지 못했다. 이제 더 이상 그것들이 나를 채워주지 못한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달았다. 물론 그 기준들이 그때까지 우리 엄마가 가진 행복의 기준은 채워주고 있었다. 대기업에 다니는 딸을 가진 이유로 우리 엄마는 행복해하고 있었으니까.
사실 그 뒤로도 3년 넘게 회사생활을 더 했다.
그동안 승진도 하고, 결혼도 했다. 글로 옮기는 몇 줄로는 설명하기 힘들 만큼 많은 경험을 회사에서 했다. 나를 둘러싼 많은 것들이 바뀌어 갔다.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나의 행복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고 해서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행복에 대한 기준이 흐려질수록 더 잘 버티게 된다는 것을 몸소 경험했다. 하루하루의 회사생활은 내게 일상이었다. 버틴다고 생각하면 힘들었을 것이다. 살아내고 있다고 생각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으면 그럭저럭 지낼 만한 시간이 된다. 아니 그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나가면 그리 힘든 시간도 아니다. 살아지게 된다. 내가 행복이라는 것과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덮어놓으면 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금의 생활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것이라고 믿으면 된다.
결국 퇴사를 해버린 나를 보고, 엄마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나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나의 행복을 위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요즘 행복하니?"
이 질문에 나는 더 이상 행복하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시 되물어봐도 행복하다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에게도 내려놓고 싶지 않은 생활이 있었다. 분명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기는 했으니까. 하지만 출근을 하면서 묻고, 퇴근을 하면서 묻고, 시도 때도 없는 질문에 단 한순간도 행복하다는 대답이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도무지 그 대답이 목구멍 밖으로 내밀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결국 나는 퇴사를 선택했다. 물론 회사를 다닐 적보다는 힘들지만, 나는 지금 행복하다. 신기하게도 힘든 것과 행복한 것은 양 끝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힘들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데, 신기하게도 힘든데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우고 있다.
누군가 지금 나에게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행복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물어봐 주는 이가 없어 나 혼자 가끔씩 행복하다고 낮게 읊조리고 있지만 말이다.
망설여지는 어느 순간. 나를 이끌어주는 질문.
지금, 행복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