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인생이 詩일지도 몰라

시의 문장들, 김이경 지음

by 수련화

어렸을 적부터 글쓰기를 좋아해서 학창시절 문학동아리라는 것을 했었다. 매년 학년이 바뀔 때마다 선생님은 산문을 쓰는 아이와 운문을 쓰는 아이를 나누었는데, 나는 단 한번도 운문을 쓰겠다고 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백일장에 나가 곧잘 상을 타기도 하였으나 매번 내가 쓰는 글은 산문이었다. 주절주절 풀어쓴 긴 글이었다.


백일장에 다녀오는 날엔 나도 다음엔 운문을 써야지 하고 잠시 마음을 고쳐먹기도 했다. 시를 쓰는 아이들은 휘리릭 몇 자 적어 제출하고는 내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엔...) 간식을 사먹고 경치를 구경하고, 오랜만에 만난 다른 학교 친구들과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긴 글을 쓰는 나는 시간에 맞춰 글을 내기도 빠듯했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루종일 글을 썼다. 공책에 글의 뼈대를 잡고 초고를 쓴 뒤, 원고지에 옮겨적는 일. 내가 앉은 돗자리 옆으로 참방참방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다음엔 나도 운문을 쓸까 흔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내 능력 밖의 일임을 알고 주저 앉았다.


그 시절이 한참 지난 뒤에도 내게 짧은 글은 마음에 와닿지 않는 면이 있었다. 상세히 풀어써준 글이 더 마음에 들었다. 아니 조목조목 알려주는 긴 글이 대하기 편했다. 오해가 없었고, 그랬기에 물음도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소상히 설명해 주는데 더하여 궁금할 것이 무엇인가.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면서 긴 글보다 짧은 글에 눈이 갔다. 詩라는 것에 처음 눈이 갔다. 처음에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며 긴 글을 읽을 시간이 부족해서인가 싶었다. 짧은 시간에 몇 자라도 읽어보려면 수가 없어 택한 것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아니고서라도 자꾸만 시집에 손이 가는 나를 발견했다.


어느덧 삼십대 중반. 시인의 마음이 담긴, 시인의 인생이 담긴 한 문장을 읽으며 잠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본다. 어쩌면 우리의 인생이 시와 닮았구나. 맞아. 인생은 이런거야라고 어느 누구도 풀어서 설명해 준적이 없었지. 모호하고 두루뭉술하고 어렴풋한 것. 그러다 어느 순간 번쩍하고 눈이 뜨이게 만들기도 하고, 눈물 한 방울 주루룩 흘러내리게도 하고, 내 가슴 먹먹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하는... 인생은 바로 그런 것이었지.


아직 짧은 생이지만, 우리의 인생이 시와 닮았구나.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짧은 글이 긴 글보다 좋을 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