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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09. 2018

엄마가 되고, 우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조리원 커뮤니티

 우리 아들들의 100일 모임을 하고 돌아오는 길. 나는 즐거운 마음이 가시지 않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떠있었다. 집에서 내내 아기랑 둘이 지내다 오랜만에 같은 처지에 있는 엄마들을 만나니 속이 다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물론 남편이 그간 내게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 혹시 산후 우울증에 시달릴까 봐 남편은 매일 저녁 내게 과한 관심과 사랑을 쏟아주었다. 사소한 집안일 하나라도 더 도와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남편에게서 채워지지 않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달았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출산을 하고, 지금 이 시간에도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을 그녀들을 만나니 남편 하고는 통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찌릿하고 통하는 느낌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눈빛만 봐도 통할 것 같은 느낌. 어쩌면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아들들을 안고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었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일종의 동질감 같은 것이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한 시간 남짓. 남편은 내게 조용히 물었다.

 "오늘 재미있었어? 시윤이 사진 촬영 때문이긴 했지만 잘 나갔다 온 것 같아. 여보 얼굴이 밝아 보여."

 "응. 너무너무 재미있었어. 아기가 조금 피곤해할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렇지도 않고... 애들도 오랜만에 보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좋네."

 "그동안 집에만 있느라 많이 답답했지? 여보가 얼굴이 좋으니 나도 기분이 좋네."

 "아냐. 이렇게 또 기분전환하는 거지 뭐."

 "그 엄마들은 아기 낳기 전에는 어떤 일 했었데?"

 "응?"

 "아~ 굳이 어떤 일을 했었다기보다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서. 오늘 이야기 많이 했을 거 아냐."

 "아... 그게..."


 남편의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순간 뒤통수를 크게 한 방 맞은 것처럼 머리가 멍해졌다.

 유안이 엄마, 론이 엄마, 현이 엄마 그리고 나. 우리는 반나절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이야기를 했고, 누구보다 많이 웃었지만 정작 엄마이기 이전의 우리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어렴풋이 병원에서 일했다는 이야기, 아기를 낳기 전에는 회사를 다녔다는 이야기 정도를 나누었지만 그조차도 다른 이야기에 섞여서 흘려들었던 것뿐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우리는 아들들이 요즘 얼마나 먹는지, 얼마나 자는지, 뒤집기는 할 기미가 보이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그 어느 누구도 우리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안타까워하지는 않았다. 남편이 내게 질문을 하기 전까지 누구보다 내가 그랬다. 그저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에 들떠있었다. 그 이상의 다른 것은 생각하지도 또 바라지도 않았다.


 "아... 잘 몰라. 다들 뭘 했는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응?"

 "아기 키우는 이야기만 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나 봐. 미처 그런 이야기를 나눌 생각은 못했어."

 "아... 그래? 그렇구나."

 

 앞좌석에서 운전을 하던 남편은 말을 아꼈다. 뒷좌석에서 카시트에 앉아서 잠든 시윤이를 보던 나도 말을 아꼈다. 왠지 모를 서늘한 기운이 차 안을 감돌았다.

 "오빠. 난 그런 이야기 참 좋아하는 사람이잖아. 사람들 만나면 이것저것 물어보고 내 이야기도 많이 하고 말이야."

 "어... 그랬지. 여보가 그런 사람인 걸 아니까, 나는 당연히 오늘도 이야기를 많이 했을 거라 생각했었어."

 "근데 왜 오늘은 아기 키우는 이야기만 했을까? 우리 이야기는 왜 한마디도 안 했지?"

 "그러게..."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우리가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데, 문득 당분간 우리를 드러내지 않기로 한 것은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스스로 그렇게 정해버린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었다.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기에도 버거운 시간이기에 다른 것들은 잠시 접어두기로 마음먹은 것은 아닐까. 나도, 그녀들도 그런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괜히 마음이 먹먹해졌다.


 분명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생각도, 고민도 많았을 우리들.

 지금은 그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혹은 잠시 접어두고 아기를 키우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만큼 엄마가 된다는 것이 무거운 것일 수도 있겠다. 그만큼 엄마가 된다는 것이 대단한 일일 수도 있겠다. 어쩌면 우리 한 여자의 입장에서만 보면 안타까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되는 감사한 순간인 동시에 한 여자로서의 시간은 잠시 멈추어져 있는 순간일 수도 있기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멀게만 느껴졌다.

 촘촘히 서있는 가로등 불빛이 내 얼굴 위로 시계 초침처럼 또박또박 내렸다. 들떠 있었던 표정은 간데없이 멍하니 어둠이 내리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차창에 어렴풋이 엄마이기도, 여자이기도 한 내 모습이 어렸다. 다음에 만나서 물어보면 된다고 쉽게 웃어넘겨도 될 일이었는데, 괜히 마음 한 구석에 작은 눈물이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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