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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09. 2018

100일 만에 다시 만난 초보 엄마들

조리원 커뮤니티

 어느덧 100일이 지났다.

 한낮 곰과 호랑이도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다는 그 100일이 지났다. 우리 아들들에게도, 초보 엄마들에게도 힘들고 지쳤던 지난 100일. 조리원 커뮤니티는 아들들의 100일을 맞이해 처음으로 얼굴을 보기로 했다. 사실 내가 이사를 나오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훨씬 일찍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들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었으니 마음만 먹으면 금세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따지고 보니 론이 엄마네와 이사 오기 전의 우리 집과는 불과 200여 미터 거리였다. 우리 집을 지나쳐 론이 네로 가는 골목길. 우리는 그렇게 지척에 살고 있었던 이웃사촌이었다. 물론 아기를 낳기 전까지는 그런 사실을 까맣게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시윤이의 100일 사진 촬영이 있는 날로 모임 날짜가 정해졌다. 내가 서울 나가는 길에 겸사겸사 얼굴들을 볼 생각이었다. 왠지 이런 핑계로 만나지 않으면 영영 못 만날 사람들인 것처럼 느껴졌다. 매일매일 카톡을 하고, 하루하루 어떻게 지내는지 소상히 알고 있었지만 왠지 그랬다. 그래서 내가 나서서 모임 날짜를 정했다. 100일 동안 시윤이의 첫 친구들이 얼마나 컸을지도 궁금했다. 네 아들들이 옹기종이 모여있으면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귀여울 것 같았다.


 "우리 드디어 내일 만나나요?"

 "난 우리 아가들의 첫 만남을 기대하고 있지요. 옹기종기 모여있으면 완전 초대박 귀여울 것 같아요!"

 "첫 사회생활!ㅋㅋ"

 "시윤이 안 피곤하겠죠? 촬영하고 바로 오는 거라... 언니도 괜찮을까요?"

 "피곤하면 자겠지. 이렇게 안 보면 얼굴 보기 힘들어."

 "오케이! 그럼 즐거운 마음으로 가겠어요!"

 마침 비어있는 우리 친정 엄마네서 만나기로 했다. 마음은 벌써 서울 한복판에 나가 있는 듯했다. 시윤이 친구들인데 괜히 내 마음이 먼저 들떴다. 소풍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의 마음처럼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그리운 친구를 만나러 나가는 기분. 벌써부터 그녀들을 만날 생각에 내 마음은 설레고 있었다.




 약속시간에 맞추어 현이 엄마, 론이 엄마, 유안이 엄마가 차례대로 도착했다. 다들 아기띠를 하고 커다란 기저귀 가방을 들고 들어서는 모습이 영락없는 엄마들이었다. 한번 외출을 하려면 짐이 왜 그리 많은지... 서로의 기저귀 가방을 보며 풉 하고 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아기들이랑 이동하는 것은 항상 변수가 따른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들 또한 오늘 구구절절한 스토리를 만들어가며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택시기사 아저씨랑 나눈 이야기, 간식거리를 사 온다며 카페에 들른 이야기, 친정에서 오느라 바빴던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만나자마자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100일 만에 보는 사람들인데 마치 어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 인양 재미있기만 했다. 어색함도 부끄러움도 없었다. 이미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많았고, 공유하고 있는 것이 많았다. 거기에 아들들 이야기까지 더해지니 수다는 끝이 날 줄 몰랐다. 웃음도 끊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신난 것은 엄마들만은 아니었다. 아들들도 신이 났는지 친구들 곁을 떠날 줄을 몰랐다. (물론 아직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만큼 움직일 수 있는 아기들은 아니었지만.)

 100일 전, 신생아실에서 두 눈 감고 누워있던 아기들이 이제 똘망똘망 눈을 뜨고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를 알아보는 건지 시윤이는 뒤집기 기술을 발휘해서 론이 옆으로 몸을 움직이기도 했다. 론이 한 테 가장 아끼는 손가락을 내어주었다. 맛있게 빨고 있던 손가락을 내어줄 정도로 친구를 향한 마음이 컸나 보다. 유안이는 팔을 괴고 친구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지으며 친구들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현이는 까르르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론이는 시윤이의 내복을 잡아당기고 있었다. 그런 아들들을 바라보는 엄마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엄마들에게도, 아들들에게도 너무나 행복한 한 때였다.


 아기들이 넷이다 보니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다. 하나가 보채서 우유를 먹고 나면 곧바로 다른 녀석이 배고프다고 칭얼대기 시작했다. 하나가 엄마 품에서 잠이 들면, 또 다른 녀석은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다. 넷 중 꼭 하나는 먹고 있었고, 넷 중 꼭 하나는 자고 있었다. 네 아들이 모두 깨어있는 틈을 타서 얼른 사진도 찍어주고, 다른 집 아들들도 한 번씩 안아보다 보니 창 밖에는 벌써 저녁 어스름이 내리고 있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아쉽게 헤어져야 할 시간.

 우리는 서로에게 100일의 기적이 오기를 기도했다. 초보 엄마가 되어 지난 100일 동안 정말 고생했다고, 앞으로의 시간들은 좀 더 편해질 거라고 토닥였다. 수고했다는 인사를 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으나 왠지 나와 같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마음 한편이 든든해졌다. 그리고 동지가 생긴 것 같아 어깨에 슬쩍 힘이 들어갔다.

 '그래. 우리 모두 잘 하고 있는 거야. 앞으로도 지금처럼 잘 해낼 수 있을 거야.'

 괜히 눈시울이 촉촉해졌다. 그녀들과의 짧은 만남이 내게 이렇게 큰 힘이 될 줄이야.


 비록 100일이라는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9월에 태어난 우리 아들들은 벌써 2살이 되어있었다.

 정신없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사이 어느새 두 살배기 아들의 엄마가 되어버린 우리들.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을 외롭다 느끼지 말고, 누군가 나와 함께 가고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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