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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08. 2018

대체 왜 뒤집으려 하는 걸까?

조리원 커뮤니티

 "현이는 어제저녁에 뒤집기 성공했어요! 100 일하고 딱 일주일 만에 성공!"

 "현이 축하해! 현이가 성장 속도가 빠른 듯!"

 "시윤이도 어제 성공했어!"

 "우리 유안이는 아직... 어깨만 들썩 하다마는 ㅋㅋㅋ"

 "현이가 정석인듯해. 시윤이는 야매로 훌렁 넘어갔어. 사악한 엄마는 뒤집은 아기에게 손도 빼보라 했지."

 "현이는 제가 한 두세 번 어떻게 하는 건지 도와줬었어요."

 "시윤이는 백일날 할아버지가 하도 엎어놔서 이틀 만에 야매로 뒤집은 거야. 할아버지의 과욕이 빚어냈다. ㅋㅋ"

 "앗! 스파르타식 교육?!"

 "그 할아버지가 우리 아빠라서 말도 못 함. ㅠㅠ"


 아기가 태어난 지 100일 남짓. 시윤이가 드디어 혼자 힘으로 뒤집기에 성공했다. 어떤 엄마들은 뒤집는데 도움이 되라고 일찌감치 아기를 엎어두기도 하고, 이런저런 준비운동도 시킨다던데 나는 내심 늦게 뒤집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 많은 엄마들이 아기가 뒤집기 시작하면 육아는 3배쯤 더 힘들어진다고 이야기했다. 김치전 뒤집듯이, 맨날 뒤집혀서 끙끙대고 있는 아이를 다시 뒤집어주러 다녀야 한다고 했다. 혹여나 이불에 얼굴을 파묻게 되면 큰일이니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한다고 했다. 잠잘 때에도 아기가 자기도 모르게 뒤집힐 수 있으니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다고들 했다.

 하아. 그렇게 어려울 거라면 뒤집는 듯하다가 기면서 앉으면 안 되겠니. 기는 듯하다가 여세를 몰아 걸음마를 하면 안 되겠니. 다행히 시윤이는 일찍 뒤집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깨도 들썩거리지 않고 얌전히 누워있으니 당분간은 안심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지방에 계신 우리 아빠, 시윤이의 외할아버지는 100일 날 시윤이를 두 번째로 만나게 되었다. 내가 아기를 낳았을 때 산부인과로 오셔서 신생아실 유리창 너머로 아기를 보신 게 첫 번째였다. 그 뒤로는 줄곧 핸드폰 화면으로만 시윤이를 보셨다. 한 번 집으로 올라오시라 해도 괜찮다며 손사래를 치셨던 분이다. 하긴 첫 손주 녀석인데 속으로 얼마나 그립고 보고 싶으셨을까. 무뚝뚝한 경상도분이셔서 표현이 서툴러 그러시지, 손주를 향한 마음만은 바다와 같이 넓고 깊으셨으리라.

 현관문을 들어선 아빠는 단번에 시윤이에게로 가서 녀석을 번쩍 들어 올렸다.

 "아이고~ 뭐 이런 게 다 있노. 어쩜 이리 이쁘노. 시윤이~ 외할아버지야. 봐봐. 외할아버지야 외할부지!"


 내로남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장인인 우리 아빠는 아기가 위험하다며 우리한테는 조그만 움직임에도 주의를 주면서도 시윤이를 하루 종일 조물조물 떡 주무르듯 하셨다. 신기한 건 녀석이 싫지 않은지 연신 방긋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이 난 아빠는 아기를 한시도 내려놓지 않고 계속 안고 계셨다. 고이 안고 계시기만 하면 다행인데, 녀석을 눕혔다 들었다 뒤집었다 내려놨다... 아주 정신없이 특별훈련을 시키고 계셨다.


 "자~ 아직도 못 뒤집어서 어째여. 이래이래 하면 금방 뒤집어여. 옳지! 힘을 주고 다리를 이래이래 해가~"

 엄마 아빠의 의도와 다르게 시윤이는 하루 종일 뒤집기 훈련을 받게 되었다. 100일 기념 세리머니라고 해두어야겠다. 아가야, 인생은 이렇게 녹록지 않은 것이란다. 우리 부부는 얼굴이 벌게져서 헉헉거리는 아기가 안쓰러웠지만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너무 행복해하시는 아빠에게 그만하시라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오빠. 아기가 너무 힘든 거 아닐까?"

 "녀석도 외할아버지 봐서 좋은 가봐. 우선 울지 않으니까 그냥 둬보자."


 기분이 아주 좋을 때가 아니면 120ml도 겨우 먹는 녀석이 180ml 분유를 원샷하고 잠이 들었다. 녀석도 힘이 들었겠지. 100일 인생에 이런 날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곯아떨어진 녀석이 안쓰러운 동시에, 너무 귀여워서 우리 부부는 잠든 녀석의 얼굴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아쉽게도 외할아버지의 1박 2일 특별훈련은 당장의 효과를 보진 못했다. 아빠는 다시 집으로 내려가시지 전에 시윤이가 뒤집는 쾌거를 원하셨지만, 그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가 내려가고 난 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윤아, 고생했어. 외할아버지 때문에 힘들었지? 이제 좀 쉬어도 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사람들이 모두 돌아간 뒤, 시윤이는 안방 구석에서 혼자 조용히 뒤집기 연습을 하고 있었다. 짧은 다리를 힘껏 차올리며 어떻게든 한번 뒤집어 보겠다는 필승의 의지를 내보였다. 어린 아기에게서도 저런 불타는 눈빛이 나올 수 있구나를 느낀 순간. 나는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렇다. 시윤이는 눈을 뜨면 뒤집기를 연습했고, 심지어 잠을 자다가도 한 번씩 발을 휘저었다. 힘이 빠져 헉헉 거리면서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너무 힘이 들면 우유를 한 통 먹고 에너지를 보충한 뒤, 다시 도전했다.

 "시윤아. 그렇게 안 해도 돼. 꼭 빨리 안 뒤집어도 돼. 괜찮아. 엄마는 정말 괜찮다니까."

 회유와 위로는 시윤이에게 필요 없는 것이었다. 결국 시윤이는 100일 잔치가 지난 이틀 뒤, 혼자 힘으로 뒤집기에 성공했다.


 뒤집기에 성공한 뒤, 나는 시윤이와 내게 다시 고요한 평화가 찾아오길 기대했다. 물론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시윤이는 하루 종일 뒤집기를 시도하고, 나는 그 옆에서 자리를 지켰다. 성공을 하면 폭풍 칭찬과 함께 힘이 빠지는 타이밍을 기다려 다시 아기를 뒤집어 주어야 했다. 물론 실패를 하는 경우에도 따뜻한 격려와 함께 잘 뒤집을 수 있는 자세를 다시 잡아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마치 국가대표를 훈련시키는 코치의 마음가짐으로 먹는 것, 입는 것, 훈련강도 하나하나를 체크해 주어야 했다. 많이 먹으면 토하고, 적게 먹으면 힘이 부족하니... 여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저 힘든 것을 왜 하루 종일 하는 것일까.

 문득 아이들을 뒤집게 하는 무한동력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게 집중관리를 받고 싶은 마음에 계속해서 뒤집는 걸까. 아니면 뒤집으면 보이는 세상이 누워서 보는 세상보다 재미있어 보이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저렇게 간절히 뒤집을 이유가 없는데,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오빠. 시윤이는 왜 저렇게 뒤집는 거지?"

 "여보가 요즘 좀 편해 보이나 봐."

 "응?!"

 "엄마~ 예전에 비해 요새 좀 편해 보이던데요. 나 이제 뒤집을 거니까 좀 열심히 해보세요! 이런 거 아닐까?!"

 "아~ 뭐야. ㅠㅠ"


 저 어린 녀석이 이제 혼자 몸을 가누고 엄지발가락에 힘을 바짝 주며 제 몸을 뒤집는다. 어깨를 밀어 넣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온 몸을 들썩인다. 그렇게 간신히 뒤집기에 성공하면, 팔을 빼고서 고개를 바짝 들어 올린다. 환하게 웃으며 엄마를 바라본다. 이제 우리 아들에게도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생겼다. 대견하고 기특한 녀석. 오늘 또 이렇게 우리 아들이 한 뼘만큼 자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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