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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07. 2018

엄마는 패션 테러리스트

조리원 커뮤니티

 처음으로 시윤이에게 내복 바지를 입히던 날.

 배냇저고리를 겨우 졸업하고, 내복 윗도리로 버텨오던 날들을 정리하니 이제 드디어 우리 아들에게도 한 벌 짜리 옷을 입는 시대가 열렸다. 마음으로는 그간 선물 받은 옷들 중에서 제일 예쁜 디자인의 옷을 입히고 싶었지만, 제일 작아 보이는 한 벌을 챙겨 아기침대로 왔다.


 분명 제일 작은 사이즈의 내복이라고 들었는데 얇은 두 다리가 들어가고도 옷이 한 줌이나 남는다. 이게 정말 제일 작은 사이즈가 맞는 건가. 몇 번을 확인하며 바지를 올리는데 손바닥만큼 작은 아기라서 어디가 허리인지, 어디가 가슴인지 구분이 쉽지 않다. 내복 사이즈에 맞춰 계속 옷을 추켜 올리다 보니, 바지가 엉덩이 위로 한참을 더 올라간다. 가만히 누워있는 아이를 들어 옷을 입히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된다. 이걸 앞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해야 한다는 생각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혹여 아기 허리가 다치지나 않을지, 옷감이 배겨서 불편하지는 않을지 긴장하며 옷을 입히다 보니 내복하나 입히는 일에도 진땀이 난다.


 초보 엄마의 고민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윗 옷을 바지 속으로 넣어주어야 할까, 바지를 먼저 입히고 윗 옷으로 배를 가려주어야 할까.


 셔츠를 바지 안으로 넣어 입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철이 들고 나서는 셔츠를 바지 안으로 넣은 기억이 거의 없다. 왠지 촌스러워 보이는 것 같아서 길이가 짧은 윗 옷을 입거나 굳이 안으로 넣어 입지 않아도 되는 옷들을 샀었다. 그 생각에 아기 내복도 바지를 먼저 입히고, 윗 옷으로 배를 고이 덮어 주었는데... 아니구나. 펄럭거리는 윗옷을 보니 괜히 배에 찬 바람이 들어 감기라도 걸릴까 싶어 얼른 윗 옷을 바지 속으로 쏙 넣어주었다.


 내복 바지는 시윤이의 허리춤이 아니라 가슴팍까지 올라갔다. 배바지도 이런 배바지가 없다. 마치 시윤이 몸이 3등분 된 것처럼 보였다. 머리, 배, 다리. 학창 시절 곤충의 몸이 머리, 가슴, 배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더니 우리 아들의 몸은 머리와 배와 다리로 이루어져 있구나. 웃음이 나는 걸 간신히 참고 있는데 속싸개를 해주지 않아서 그런지 아기가 두 팔을 허우적 대는 것이 보였다.

 '속싸개를 해주면 답답해하던데... 그럼 손만 바지 속으로 좀 넣어줄까.'


 두 팔을 당겨 바지 속으로 집어넣고 나니, 귀엽던 우리 아들은 어디 가고 동네 노는 형 한 분이 아기 침대에 올라와 계셨다. 태열 때문에 울긋불긋한 얼굴은 동네 노는 형 코스프레에 정점을 찍어주었다. 큭큭 거리는 엄마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기는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찰칵.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보냈다.

 "오빠. 시윤이 오늘 처음으로 바지 입혔는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입히는 게 맞겠지? 좀 이상해 보이지?"

 "그렇게 입히는 건 맞는 거 같은데... 뭔가 이상한데 ㅋㅋㅋㅋㅋㅋ"


 인터넷 블로그에는 사랑스러움이 뚝뚝 떨어지는 아기들 사진이 가득한데 왜 우리 아들은 매번 개그미가 뚝뚝 떨어지는 사진들만 찍게 되는지. 속상한 엄마는 자는 아들을 두고 요리조리 사진을 더 찍어 보았으나 귀여운 갓난쟁이는 온데간데없고 동네 노는 형이 계속 아기 침대에 누워계셨다. 아쉽지만 오늘은 첫날이니 이쯤에서 촬영을 철수하고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며칠 뒤, 나는 개그미 넘치는 우리 아들의 사진이 사이즈 큰 내복 때문도, 3등분으로 이루어진 우리 아들의 신체 구조 때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같은 옷을 입어도 스타일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고, 간단한 색상 매치 만으로도 빛을 발하는 게 패션의 세계이지 않은가.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는 패션센스가 그리 뛰어난 엄마가 아니었다.


 "이게 머꼬. 우리 아들 벌써 농민봉기 나가시나."

 "ㅋㅋㅋㅋㅋㅋ 누나. 저건 좀 아니지 않아?"

 "나름 하늘색과 노란색으로 신생아의 귀여움을 강조해 본 건데... ;;;"


 아들아.

 엄마는 있지. 우리 아들에게 예쁜 옷 입혀주고, 예쁜 모자 챙겨주고... 그러지는 못할 거 같아. 이제 우리 아들 옷은 아빠가 사주신다고 하니까, 아빠의 패션센스를 믿어보도록 하자꾸나.

 비록 100일도 안된 너에게 '농민봉기 패션'이라는 흑역사를 안겨주었지만, 엄마는 우리 시윤이를 너무너무 사랑한단다. 엄마 눈에는 네가 어떤 옷을 입던지 상관없이, 네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단다. 사랑해,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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