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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05. 2018

오늘도 물만 먹고 가지요~♪

조리원 커뮤니티

 출산 전부터 모유수유의 어려움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틈틈이 가슴 마사지를 해주어야 하는 것은 물론 수유자세며, 모유양에 이르기까지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괜히 겪어보지 않고서 겁을 먹고 싶진 않았지만 만나는 사람마다 모유수유 이야기를 하면 고개를 내 젓는 터라 나도 은근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나의 실전 모유수유는 조리원에서 시작되었다. 산부인과에서 시험 삼아 아기에게 젖을 몇 번 물려 보았는데 제법 잘 빠는 것 같아 큰 걱정은 없었다. 문제는 내 모유량이었다. 그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 많이 먹고 많이 자면 모유량이 늘어난다는 소리도 있었으나 어찌 되었든 내 노력으로 좌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하늘의 뜻에 맡기기로 했다. 괜히 조바심이 난 우리 엄마는 경동시장에 가서 한약재와 커다란 잉어까지 넣은 약을 지어 보내셨다. 연배가 좀 있으신 분들은 으레 첫인사가 그랬다.

 "젖은 좀 돌아요? 아기가 먹을 만큼 충분히 나오는가?"

 하기야 지금 우리 아들에게 젖 먹는 것 말고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초보 엄마들의 신경도 온통 모유수유뿐인데 어르신들은 오죽하실까 싶었다.


 조리원에 있을 때, 엄마들과 나누는 이야기의 반 이상은 모유수유 이야기였다. 유축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아기가 젖을 잘 물고 빠는지, 수유자세는 불편하지 않은지... 신기하게도 똑같은 이야기의 반복일 것 같은데 매일매일 새로운 화젯거리가 샘솟았다. 누구 아기는 모유 먹기를 거부한다더라, 누구 아기는 젖이 모자라 맨날 운다더라, 누구 엄마는 수유자세를 바꾸니 훨씬 편하다더라... 하루 종일 우유 먹이는 이야기를 하고 나면 엄마가 된 것이 아니라 젖소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는데 막상 그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눈을 뜨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유축을 시작했다. 눈을 감기 전에도 꼭 유축을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작디작은 아기를 요리조리 눕혀가며 모유수유를 하다가 내 등이 새우처럼 곱아 버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먹어준다면 내 등을 달팽이처럼 돌돌 말아서라도 더 먹이고 싶은 게 엄마 마음이었다. 조리원을 나와서도 나는 하루 종일 아기에게 먹일 우유 걱정뿐이었다.


 조리원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에는 대부분 모유수유를 하거나 유축한 모유를 먹이는 것으로 수유를 할 수 있었다. 그 정도 양으로도 충분히 아기가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기의 먹성이 좋아지기 시작하면서 내 모유만으로는 아기가 힘들어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유를 양껏 먹지 못해 허덕거렸고, 급하게 먹다가 사레들리는 일이 잦았다. 유축 양이 작아 유축해 둔 것들을 섞여 먹여야 원하는 양을 맞출 수 있었다. 아무리 냉장보관을 해둔 것이라 해도 괜히 상하지 않았을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결국 직수를 하는 것이 아니면 분유를 먹이자는 쪽으로 남편과 의견을 정했다. 

 우리의 분유 시대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분유 타기'도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생각 같아서는 젖병에 적당량의 물을 넣고, 분유를 넣어 잘 흔들면 될 것 같지만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물 70ml에 분유 두 숟가락. 따지고 보면 종이컵 하나도 안 되는 분량의 물인데 우리 부부는 조그마한 젖병을 들고 애간장을 녹이고 있었다.


 "여보. 오늘도 실패 구만."

 "아니야. 오늘은 분명히 잘 탔거든. 아마 덩어리 남지 않을 거야."

 "뭔 소리야. 돌덩어리 같은 게 저기 보이는구먼. 오늘도 우리 아들은 물만 먹고 가지요~♪"

 "아침에 오빠도 엄청 남았더니만. 내가 다 봤거든!"

 분명 손바닥 사이에 넣고 열심히 흔들었는데 막상 아기가 우유를 다 먹어갈 때쯤이면 어김없이 젖병에 동그란 분유 덩어리가 남았다. 우리 아들은 정말 물만 먹고 크는 것일까. 괜히 또래보다 작은 키가, 평균에 겨우 걸린 몸무게가 저 남아버린 분유 덩어리 때문인 것 같아 미안함이 밀려왔다. 저 분유 덩어리를 먹지 못해서 덜 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머리는 아니라고 하고 있었지만, 내 가슴은 부족한 엄마라 미안하다는 사과만 내내 하고 있었다.


 "난 왜 맨날 아기가 먹고 나면 분유 덩어리가 남지. 남편이 맨날 놀려."

 "분유 그거 덩어리 없이 타는 게 보통 일이 아니야."

 "물만 먹고 가지요~ ㅠㅠ"

 "ㅋㅋㅋㅋ 시윤이 아버님이 참~ 재미있으셔!"


 초보 엄마는 어느 것 하나 수월한 것이 없다. 먹이는 것, 재우는 것, 입히는 것 어느 하나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아침 일찍부터 동동거리고, 밤늦게까지 신경을 쓴다. 내가 부족한 것 같아 고개 떨구고, 혹여 그것으로 인해 아기에게 무슨 문제라도 생길까 봐 전전긍긍이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면 몰라보게 커있는 아기가 엄마 옆에 새근새근 누워있다. 엄마랑 아빠가 고민하고 속을 끓이는 만큼 아기가 자라 있다.

 아기는 분유가 아닌, 엄마 아빠의 마음으로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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