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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Jul 05. 2018

괜찮아요. 괜찮아요. 괜찮아요.

조리원 커뮤니티

 "여보. 나 오늘 시윤이 데리고 소아과 갈 거예요. 예방접종 있어서요."

 "이 근처에 소아과가 있어? 여보 혼자 다녀올 수 있겠어?"

 "다행히 아파트 상가에 소아과가 있더라고. 인터넷에 찾아봤는데 엄마들 후기도 괜찮아서 한번 가보려고요."


 이사를 한 뒤, 처음으로 동네 소아과를 가는 날.

 감기 기운이 스치기만 해도 병원을 드나들었던 나였는데, 막상 아기를 안고 병원을 찾으려니 긴장이 되었다. 더구나 이사 온 새 동네에서의 첫 소아과 방문이라 더 신경이 쓰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나는 책상 서랍에서 파란 포스트잇을 한 장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는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씩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소아과 선생님을 만나면 꼭 물어봐야지 했던 것들이 하나씩 종이 위에 옮겨졌다. 혹시 하나라도 놓칠세라 순서까지 정해서 또박또박 적어내려 갔다.

 아직 아기띠를 하기에는 어린 녀석이라 아기를 겉싸개에 고이 싸서 안아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주머니에 포스트잇을 챙겨 넣는 것도 잊지 않았다.


 동네 소아과에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 선생님이 계셨다.

 조용한 동네 병원, 겉싸개를 안아 들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간호사 선생님들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셨다. 방금 전, 겉싸개를 싸면서 이젠 아기가 살이 쪄서 무거워졌다며 도리질을 쳤었다. 조리원에 있을 때랑 비교해서 엄청나서 뚠뚠이가 되었다며 통통한 볼살을 쓰다듬어 주고 나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막상 아기를 소아과 침대에 눕히니 아직 인형같이 작은 갓난쟁이가 틀림없었다. 너무 세게 안아 올리면 부서질 것만 같아서 아기를 안고 있는 동안은 숨소리도 고르게 되었다.


 간단한 예진을 하고 예방접종을 하기 전에 궁금한 게 없냐고 할아버지 선생님이 물으셨다. 나는 조용히 주머니에서 파란 포스트잇을 꺼내어 들고 하나씩 질문하기 시작했다. 빼곡하게 적힌 질문내용을 보고 간호사 선생님이 옅은 미소를 지으셨다.

 "아. 아기 머리에 각질처럼 벗겨지는 게 있는데요. 그냥 둬도 괜찮을까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져요."

 "귀 안에도 껍질이 자꾸 벗겨져서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괜찮아집니다."

 "배꼽이 동그랗게 자꾸 튀어나오는데 혹시 탈장 같은 건 아니겠죠?"

 "이 정도면 정상이에요. 좀 더 지켜보시죠."

 "태열이 아직 좀 있어서 로션은 챙겨 발라주는데요. 다른 약 같은 거는 안 발라도 될까요?"

 "어디 보자~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촉촉하게 해주면 금방 사그라들 거예요."


 할아버지 선생님은 연신 괜찮다는 소리만 해주셨다. 물론 아기가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은 편해졌지만,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니 조금은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좀 더 들여다 봐주시고, 자세히 살펴봐 주셨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었다. 초보 엄마의 조바심이었다. 


 "선생님. 그리고 아기가 자다가 팔을 휘저으면서 깰 때가 있는데요. 혹시 놀라거나 그런 건 아닐까요?"

 "애기가 잘 먹지요?"

 "네?! 아... 네. 잘 먹어요."

 "잘 놀고요?"

 "네. 잘 놀고 잘 웃고요."

 "잠도 잘 자고요."

 "밤에 수유를 하긴 하는데, 그래도 잘 때는 푹 자는 거 같아요. 잘 자요."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지켜봐 주시면 잘 클 거예요."

 "아... 네. 그렇지요."


 할아버지 선생님의 말씀이 맞았다.

 열이 펄펄 끓어오르는 것도, 기침을 콜록거리는 것도, 무언가 엄청 불편해 보이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조바심을 내고 있었나 싶었다. 괜히 신생아 평균 체중이니, 평균 키를 찾아 비교하고 안달 냈다. 잘 먹고 잘 노는 아기를 두고 더 먹여야 하는 건지 고민했다. 어쩌면 욕심을 부렸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이렇게 사소한 것도 꼼꼼하게 챙겨서 잘 키우고 있는 엄마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아과에서 돌아오는 길.

 하나도 놓치지 말고 물어봐야겠다며 의지를 다졌던 질문 리스트를 고이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두 팔로 겉싸개에 파묻혀 있는 녀석을 좀 더 꼭 안아 올렸다. 

 "우리 아들, 지금처럼만 잘 자고, 잘 먹고, 잘 놀고 그러자. 엄마가 항상 옆에 있을게!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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