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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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련화

아무리 연습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 이를 테면 뜨거운 국물을 빨리 먹는 것이나 일찍 일어나 새벽을 살아내는 아침형 인간이 되자는 다짐 같은 것들. 애써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이 속상하고 안타깝지만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 되게 하려고 용쓰기보다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자는 것이 내 일상 철학이었다.


난생처음 육아라는 것을 하면서 내가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이렇게도 많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은 사실 곱씹어 보면 내가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것들이 태반이었다.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니 당연히 노력이 덜하고, 그러니 결국 잘할 수 없게 되는 것. 선순환이라고 하기에도, 악순환이라고 하기에도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지만 어쨌든 나름의 순환고리를 가진 느낌이었다. 결론은 결국 그 일은 내가 잘하는 것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육아를 하며 세상에는 잘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것도 삶에 대한, 인생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해야 할까. 누구보다 잘하고 싶고, 어느 엄마보다 잘하고 싶은 의지가 있었지만 결국 못하는 것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억지로 잘 해내려고 하면 할수록 내 마음은 상처를 받았고, 아기 또한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못하는 것들을 조금 드러내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야 했다. 그것이 엄마가 편하고, 아기도 편한 육아인 것만 같았다.


내게 '어부바'가 그랬다.

어느 날, 우리 집에 온 친정엄마는 포대기를 애타게 찾았다. 포대기로 등에 업기만 하면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할 수 있는데, 그 포대기 하나가 없어서 이 고생을 한다며 한탄을 하셨다. 온전히 두 팔로 아기를 감싸 안아주던 나에게는 그저 핑계처럼 들렸다. 포대기, 그게 뭐라고.


나는 부리나케 인터넷을 뒤져 포대기를 주문했고, 그 뒤로 친정엄마는 우리 집에 오실 때마다 시윤이를 포대기로 싸서 업어주셨다. 엄마는 아기를 등에 업고 못하는 것이 없으셨다. 설거지도 하시고, 밥도 짓고, 청소도 하시고, 나물도 다듬으셨다. 시윤이는 외할머니 등에서 방긋방긋 웃음을 짓다가 이내 곤히 잠에 들었다. 잠시였지만 집안의 평화는 한낯 포대기와 함께 찾아왔다.


"너는 왜 애를 업어주지 않아?! 업는 게 얼마나 편한데... 엄마가 두 손 다 편하게 쓸 수 있는게 얼마나 좋은지 아직 몰라서 그러지. 내가 너희 키울 때는..."

"두 팔로 꼭 안아주는 게 아기한테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리고 난 업는 거 못하겠더라고."

엄마의 포대기 예찬은 끝이 없었다. 포대기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애 하나쯤 더 낳아 키우실 기세로 내게 아이를 업어 키우길 강권하셨다.

"엄마 가고 내가 해봤는데, 난 잘 안되던데. 시윤이를 바닥에 떨어뜨릴 것 같아서 무서워서..."

엄마의 권유에 못 이겨 시도한 내 첫 어부바는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우선은 엄마처럼 아이를 들어 등으로 올려보려 노력해 보았다. 버둥대는 녀석을 옆구리로 돌려 등에 올리려고 하니 곧 아이가 바닥으로 떨어져 버릴 것만 같았다. 결국 1차 시도 실패.

두 번째는 침대에 포대기를 깔고 그 위에 아이를 눕혔다. 그리고는 그대로 내 등에 올려보려는 작전. 물론 보기 좋게 2차 시도도 실패. 시윤이는 넘어갈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다. 마치 다음 3차 시도는 무엇이냐는 표정과 함께 말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침대 위에 시윤이를 앉혀놓고 나도 그 앞에 앉아서 아이를 그대로 등 위로 올려보려 했다. 아직 혼자 잘 앉지 못하는 녀석인데 곰인형 다루듯 침대 위에 잘 앉혀놓고 잽싸게 등을 돌렸다. 또 시윤이는 넘어갈 듯이 까르르하며 웃어댔다. 결국 3차 시도도 실패.

시윤이와 침대 위를 데구루루 구르기를 여러 번. 시윤이는 그것이 엄마와의 재미있는 놀이 인양 즐기고 있었지만, 내 속은 타들어 가고 있었다. 왜 나는 안되지, 왜 나는 우리 엄마처럼 착! 하고 아이를 업을 수 없는 거지.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겨우 시윤이를 업어 올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몇 시간이 지나도 끄떡없는 우리 엄마의 포대기 매듭과는 천지차이로 내 포대기 매듭은 10분만 지나도 스르륵 풀려버리고 말았다. 시윤이는 내 등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엉덩이쯤으로 하염없이 내려오고 있었다. 시윤이는 어김없이 깔깔거리며 내 등에서 웃고 있었다. 아이를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아이는 포대기에서 쏙 빠져나오고 말았다. 항상 남편이 시윤이를 포대기에서 건져 올렸다. 마치 무언가 허물을 벗어내듯, 그렇게 시윤이는 내 몸을 휘감고 있는 포대기에서 쏙 빠져나왔다.


아직도 엄마는 우리 집에 오시자마자 포대기를 찾으신다. 그리고 시윤이는 외할머니와 포대기만 보면 세상을 다 가진듯한 함박웃음을 짓는다. 사실 내 등에 기대기만 해도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나는 아이를 업어주는 것 대신에 더 많이 안아주는 것으로, 가끔씩 두 손을 뒤로 해서 업는 시늉을 해주는 것으로 내 마음을 표현하기로 했다. 못다 한 집안일은 남편이 거들어 주고, 시윤이가 기분 좋은 틈을 타 보행기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어부바가 있었다면 나의 육아가 더 편했을까. 나의 살림살이가 더 매끈해졌을까


물론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내 팔에 안겨 곤히 잠든 녀석의 얼굴을 내려다 보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콩닥콩닥 뛰는 녀석의 심장을 내 심장에 대는 감동의 순간을 경험할 수 있었을까. 문득 선 잠에서 깨어 내 가슴팍에 사정없이 볼을 비벼대는 아기의 고소한 우유냄새를 맡을 수 있었을까.


세상 모든 것에는 장점과 단점이 있는 법. 길고 짧음이 있는 것.

어부바를 못한다고 해서 부족한 엄마는 결코 아닐 거라고 스스로 다독여본다. 어부바를 해주기 위해 침대 위를 굴렀던 우리 모자의 오후가 아이에게 재미난 추억이 된다면 그 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나중에 시윤이가 큰 뒤에 왜 엄마가 어부바를 해준 사진은 없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해야지.

"엄마는 우리 시윤이 얼굴을 한 순간이라도 더 보기 위해서 항상 안아주었거든. 엄마가 이만큼 우리 시윤이를 사랑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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