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식, 우리 잘할 수 있겠지?

조리원 커뮤니티

by 수련화

100일의 기적이 드라마틱하게 나타나진 않았지만, 100일이 지나면서 나와 시윤이와의 일상이 제법 안정되기 시작했다. 수유를 하는 간격도, 낮잠과 밤잠을 자는 시간도, 큰일을 보는 날도 조금씩 자리가 잡혔다. 누가 이렇게 하자고 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서로에게 익숙해져 가면서 그게 우리의 일상이 되었다. 조용히 서로에게 스며들고 있다고 해야 할까. 세상에 태어나 모든 것이 낯설었던 아이도, 엄마가 되어 전혀 새로운 세상을 살게 된 나도 그렇게 우리 둘이 함께 하는 지금의 생활에 녹아들고 있었다.


그 무렵이었다. 내가 슬슬 육아용품을 혼자 사들이기 시작한 때.

그전까지 나는 무엇이든 필요한 것들을 조리원 커뮤니티 카톡창에 물어보곤 했다. 이 것이 꼭 필요한 것인지, 사야 한다면 어느 브랜드의 어느 제품이 가장 좋은지 말이다. 나의 무지한 질문에 현이 엄마는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인터넷 쇼핑이 가능한 사이트를 실시간으로 알려주었다. 마치 나만의 전용 녹색창을 가지게 된 기분이었다. 론이 엄마와 유안이 엄마의 실사용 후기까지 보태면 더할 나위 없었다. 슈퍼 울트라 팔랑귀인 나에게 그들의 존재는 든든했고,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주기까지 했다. 하지만 100일이 지나면서 왠지 나도 이젠 초보 엄마 딱지를 떼었다는 자신감이 슬슬 생기기 시작했다. 우리 아들을 위한 육아 템 하나 정도는 내 손으로 찾아서 사야 하지 않은가 하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생각해보니 자만심이었는지도 모르겠다.)이 물밀듯 밀려왔다.


마침 이유식을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아이의 건강을 생각해 유리로 되어있고, 분리 세척이 가능하다고 홍보하는 믹서/다지기 세트를 과감히 사들였다.

"여보. 우리 시윤이도 이제 이유식 준비하려고 해. 그래서 내가 오늘 믹서기랑 다지기 세트 샀어."

"이번에도 조리원 커뮤니티 추천받아서 산거야?"

"에이~ 믹서기까지 무슨. 내가 알아보고 샀어. 색깔도 여보가 좋아하는 곱디 고운 민트라고!"

이제 나도 초보 엄마 딱지를 떼고, 프로 엄마로 거듭나는 건가 하는 생각에 괜히 어깨가 으쓱했다. 다들 이유식 준비에 정신이 없다고 하는데, 믹서기 하나만 사면 되는 것을 왜들 그리 호들갑인지. 무지렁이 엄마는 이유식이라는 새로운 단계의 시작을 살짝 즐기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정말 나만의 착각이었을까. 교차 감염이 걱정된다며 이유식용 도마에, 이유식용 칼, 아기용 수세미까지 준비하는 그녀들의 정성에 비하면 나는 아직 초보 엄마의 걸음마도 떼지 못한 상태였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살짝 들떠있었는데, 막상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아직 나는 이유식을 시작할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엄마가 따라가는 것에 비해 아이는 너무나 빨리 자라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준 사실이 또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유식 마스터기의 존재였다. 스팀, 믹서, 해동, 데우기까지 한 번에 해주는 기계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에 나는 망연자실했다. 야식 라면 끓여먹는 작은 냄비에 소꿉장난하듯 이유식을 해먹일 생각을 했던 나는 아직도 부족한 엄마인 것일까. 마지막 포장재까지 남김없이 뜯어버린 곱디 고운 민트 믹서기는 이제 어떡하지. 육아는 장비빨이라고 하더니 정보 부족 엄마 덕에 자꾸만 살림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이유식은 하루하루 파란만장한 기록들을 갈아치우며 새로운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물 조절에 실패하는 일은 다반사, 한 숟가락을 떠먹이면 시윤이 인상은 독약을 먹인 것처럼 일그러진다. 고개를 가로젓고 의자에서 내려오려고 발버둥 치는 아이를 잡아주다 보면 온 집안이 난장판이 된다. 분명 세 숟가락밖에 먹이지 않았는데 온 거실은 이유식을 뒤집어쓴 듯 얼룩덜룩. 시윤이는 어김없이 두 볼에 쌀미음을 잔뜩 묻힌 거지꼴이 되고, 세탁기에 빨랫감은 넘쳐난다.


그래도 이유식은 피할 수 없는 것. 이 아이가 무언가를 처음으로 씹고 맛보는 일이라 생각하면 일종의 사명 같은 것이 느껴진다. 내가 떠먹이는 이 한 숟가락의 미음이 매일매일 이 아이에게는 첫 경험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면 힘들다는 생각이 조금 잊히기도 한다. 사실 힘들다기보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해야 맞으려나. 아이가 방긋방긋 웃으며 가만히 의자에 앉아 이유식을 남김없이 받아먹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엄마들의 바람일 텐데, 그 건 그저 엄마의 헛된 욕망일 뿐이다. 어린아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으니 현실감이 떨어지는 상상 속의 바람일 뿐이다.


"6일 치를 했는데 이만큼이나 남았어. 이유식계의 큰손..."

"ㅋㅋㅋㅋㅋ 밥을 했네."

"나도 3일 치 도전했는데 일주일치되었어."

"아니... 계획은... 3일 치였는데... 남은 거 어쩌지?"

"남은 거는 남편이랑 야식. 맥주 안주해. 쌀미음 안주...;;;"

"ㅋㅋㅋㅋㅋ"


엄마들은 오늘도 밤늦게까지 쌀을 불리고, 물 양을 조절하며 미음을 만든다. 시간이 지나 미음은 죽이 되고, 또 무른 밥이 되겠지. 그리고 어느 감동적인 날, 아이가 엄마 아빠와 함께 식탁에 앉아 갓 지은 밥을 같이 나누어 먹는 때가 올 것이다. 내게 그 날이 온다면 아마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게 될까. 눈물까지는 아니어도 분명 마음이 울컥해서 말을 잇지 못할 것 같다.

오늘도 하루에 세 번, 밥을 먹었다. 그렇게 습관처럼,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진 그 일이 이렇게 감격스러운 것이었나 싶다. 으레 때가 되면 찾아먹고, 숟가락 가득 하얀 밥을 떠 넣으면 자동으로 우물우물 씹어 꿀떡 삼켜 버렸던 많은 날들. 그런데 그 사소한 것조차 엄마가 되니 다르게 보이는구나 싶다.


나 어릴 적, 부모님은 내가 오물오물 씹어 옹골차게 먹는 모습만 봐도 배부르다 하셨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 왠지 못살던 시절의 껍데기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먹을 것 부족했던 어려운 시절, 적은 식량을 자식에게 양보했던 부모의 마음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 괜히 불편했다. 우리 부모님은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은 먹을 것 걱정을 해야 할 만큼 힘들지는 않으니까 그런 막연한 희생 같은 것은 없어도 되지 않냐고 했었다.


그런데 막상 아이를 낳아보니 그 말은 못살던 시절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부모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미음 한 숟가락도 겨우 넘기던 녀석이 엄마 아빠가 챙겨주는 것들을 넙죽넙죽 받아먹다가 저 혼자 밥을 떠서 오물오물 먹는 모습을 보면 엄마는, 그리고 아빠는 절로 배가 불러오지 않을까. 우리 아들이 언제 저렇게 컸나 싶어 배고픈지도 모르고 그 녀석 먹는 모습만 쳐다보고 있을 것 같다. 당장 나라도 그렇게 할 것 같았다.


엄마가 된다는 것, 아빠가 된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 가족만이 나눌 수 있는 귀한 추억거리가 생겨난다는 의미가 아닐까. 아이와 함께한 수많은 순간들은 알알이 머리 속에 박혀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처럼 저마다의 빛으로 반짝일 것이다. 아이가 한 번 웃을 때마다 우리 머리 속에는 오래 전의 추억들이 소환되고, 그 것들은 흐뭇한 미소를 불러올 것이다.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은 엄마 미소, 아빠 미소는 바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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