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에겐 그러지 말자

조리원 커뮤니티

by 수련화

늦은 밤, 모두가 잠든 시간. 남편과 시윤이가 잠든 틈을 타 작은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있다가 지난 열 달 동안 참 열심히도 가지고 다녔던 산모수첩을 펴 들었다. 책장에 꽂아두고 매달 정기검진을 갈 때마다 제일 먼저 가방에 챙겨 넣었던 녀석인데, 생각해보니 다시 꺼내지 않은지도 벌써 여러 달이 지나있었다.

몇 번이고 고쳐 적었던 출산예정일, 매달 병원에 가서 받았던 수많은 검사들에 대한 기록, 그리고 까만 초음파 사진들. 그때는 저 초음파 사진 한 장에 얼굴을 들이밀고서 남편이랑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지 모른다. 문득 그때 기억들이 떠올라 싱긋하고 웃어버렸다.


"네. 잘 크고 있습니다. 검사 결과도 별다른 이상 없고요. 머리는 평균보다 조금 작은데, 허벅지 길이는 조금 긴 편이에요. 다 정상입니다."

그때는 아기가 주수에 맞춰서 잘 커주고 있다는 소리만 들어도 얼마나 기뻐했던지. 뱃속에 있는 녀석이 좀 더 통통했으면, 녀석의 다리가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때에 맞추어 생길 것이 생기고, 평균 몸무게를 채워가며 건강하게만 태어나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 달라고 매일매일 기도했었다.


시윤이의 태명은 꼼질이었는데, 꼼질이는 열 달 동안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었다. 초음파 사진 중 어느 것 하나 얼굴이 제대로 찍힌 사진이 없다. 항상 뒤돌아 있거나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엄마 배에 얼굴을 너무 깊게 파묻고 있어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처음 몇 번 동안은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예민한 아이들을 초음파 검사 때 느껴지는 양수의 진동이 싫어 그렇게 행동하기도 한다고 누군가 나를 위로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아기가 얼굴을 가리는 일이 매달 반복되자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여 얼굴에 무언가 있어서 가리고 있는 건가. 엄마 아빠가 걱정할까 봐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아무리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라 하더라도 본인의 결점을 숨기고 싶어 하는 건 본능이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가야. 엄마 아빠는 우리 아가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만 태어나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단다. 이제 곧 우리 아가 얼굴 보게 될 텐데, 그 동안 초음파 사진으로 얼굴 보여주지 않았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 엄마 아빠는 우리 꼼질이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게!"

예정일이 다가오면서 내 불안감은 점점 더 커져갔다. 매일 밤, 기억나지도 않는 복잡한 꿈을 꾸었다. 결국 내용은 우리 아이가 어디 아프지 않을까에 대한 걱정이었다. 그럴 때마다 뱃속의 아기에게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너무너무 우리 꼼질이를 사랑한다고, 엄마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내 마음을 향한 주문을 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행히 꼼질이는 아주 건강하게 태어났고, 시윤이라는 예쁜 이름도 가지게 되었다. 나랑 오빠는 엄마와 아빠가 되었고, 조용했던 우리의 일상은 온통 아이 이야기로 가득 찼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강하게만 태어나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던 나는 그때의 간절한 기도는 잊어버리고 시윤이에게 바라는 것을 하나 둘 꺼내 들기 시작했다.


"시윤아, 너 론이 알지? 저번에 한 번 만난 적 있잖아. 그 친구는 글쎄 8시 반에 잔다지 뭐야. 아기가 그렇게 일찍 자야 키도 쑥쑥 크고 건강할 텐데, 우리 시윤이는 자꾸 늦게 자서 엄마가 걱정이네."

"뭐야. 알아듣지도 못하는 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알아들을 수도 있잖아. 시윤아, 오늘은 우리도 9시에 한 번 잠들어 볼까?!"

"아기가 태어나면 절대 비교 같은 건 안 하는 엄마가 될 거라더니 벌써 잊어버렸나 보네. 고만해~"


그날 밤, 시윤이는 정말 거짓말같이 9시에 잠들었다. 칭얼대지도 않고 9시가 되자 스르르 잠든 녀석을 내려다보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말 이 녀석이 내 말을 알아들은 것일까. 론이가 더 멋지다고 이야기하는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평소에 맘껏 놀던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잠에 든 건 아닐까. 물론 어쩌다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일지도 모르지만, 괜히 말을 꺼낸 내가 원망스러웠다.


나는 시윤이의 조리원 동기 아이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현이는 빨리 뒤집고, 빨리 크구나. 남자아이니까 저렇게 운동신경 있는 것도 좋은데... 부럽다.'

'론이는 이유식을 벌써 손으로 집어먹는구나. 우리 시윤이는 아직 미음도 잘 못 넘기는데...'

'유안이는 엎드려 있기도 잘 하더니, 이젠 제법 잘 앉아있네. 우리 시윤이는 왜 아직 못 앉는 거지?'


하루하루가 다른 아이들이라 일주일 차이가 엄청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주일 늦게 태어난 시윤이를 항상 친구들과 비교했었다. 왜 우리 시윤이는 못하냐고 조바심 내다보면 1~2주일 후에 어김없이 비슷한 발달상황을 보여주는 경우를 여러 번 겪었으면서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시윤이는 제 속도대로 건강히 자라고 있는 것일 텐데 벌써부터 자꾸 주변과 비교를 하게 되었다. 우리 아이가 느린 것은 아닐지, 뒤쳐지지는 않을지... 엄마의 과한 걱정과 우려는 결국 비교를 낳을 뿐이었다.


"여보. 우리 비교하지 않기로 했잖아. 내가 봤을 때는 우리 시윤이, 지금 충분히 잘 크고 있어. 건강하고 밥도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고. 우리 시윤이를 다른 애들이랑 비교하지 말자."

비교하는 삶이 싫다 했었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줄 세우는 분위기에 넌덜머리가 난다고 했었다. 그렇게까지 도토리 키재기를 해서 얻는 것이 무어냐며 물었었다. 저마다의 개성으로, 저마다의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이 진정 행복하지 않겠냐고 했던 우리 부부였다. 아니 나였다. 그런데 심지어 잠자는 시간까지도 비교하려 드는 엄마가 되어버리다니. 시윤이에게 미안한 것을 둘째 치고서라도, 이런 내 모습에 너무 놀라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물론 장난 삼아 이야기한 것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렇게 넘기고 싶지 않았다. 장난이었다며 이번 일을 넘겨버리면, 앞으로 장난 삼아 계속해서 녀석을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게 될 것만 같아서였다. 몸무게는 얼마나 나가는지, 키는 얼마인지, 혼자서도 앉을 수 있는지, 걸음마는 하는지... 끊임없이 비교하고 저울질하는 동안 나는 물론 시윤이 또한 지쳐갈 것 같았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그저 건강하게만 태어나게 해달라고 했던 나의 기도는 이제 내 마음을 향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아기가 더 행복하고 즐겁게 자랄 수 있도록 해주자. 있는 그대로의 시윤이로 봐주자.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지 말자, 그러지 말자. 시윤이가 자라는 속도를 믿고 응원해주는 엄마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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