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원 커뮤니티
오빠 혼자서 이유식 시키기는 무리겠지?
"그렇지. 이유식은 여보 있을 때 할래. 한 끼 정도 건너뛴다고 큰일이 나진 않아."
"그래. 그럼 이유식은 하지 말고, 때 맞춰서 우유만 먹여줘요."
나는 볼일이 있어 외출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유는 이렇게 타서 언제 먹여주고, 졸리다며 눈을 비비면 어떻게 해줘야 빨리 잠드는지 자잘한 것들까지 설명해 주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엄마가 시윤이 놔두고 혼자 나가서 미안하다며 아이를 안아 올려 연신 두 볼에 뽀뽀를 해주고, 남편에게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달콤한 키스도 잊지 않았다. 신발을 신으며 나는 또 한 번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일찍 돌아오겠노라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종종걸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퀭했다. 정신없이 나온다고 옷도 대충 걸쳐 입고 머리도 부스스했다. 그래도 늦지 않게 나온 것이 어디냐고 생각했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엄마도 몇 안된다며 스스로 토닥였다. 핏기 없는 입술에 급히 립글로스를 발랐다. 그나마 이제 좀 얼굴에 생기가 도는 것 같았다.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종종걸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시간들이 흘렀다. 남편은 육아에 지친 와이프에게 달콤한 휴식시간을 준 멋진 사람으로 남았고, 나는 힘든 육아 중에서도 사회생활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복 받은 애기엄마였다. 사람들은 그런 나에게 남편 잘 만나 좋겠다며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요즘 젊은 남편들은 다들 저렇게 잘 도와주냐며 세대차이를 이야기하는 분들도 많았다. 나는 그저 빙긋이 웃기만 했다. 사람들은 그런 나를 보며 가진 자의 여유로움이냐며 우스게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유식을 하다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왜 우리 남편은 혼자 이유식을 먹이지 못하는 것일까. 왜 항상 시윤이는 나랑 잠들어야 하는 거지.'
퇴근한 남편을 붙잡고 조심히 말을 꺼냈다.
"오빠.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응. 뭔데?"
"왜 오빠는 혼자 이유식을 못 먹여?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혼자 먹이는데..."
"아. 한 번에 얼마나 줘야 하는지도 모르고, 얼마나 데워야 하는지도 모르니까. 시윤이도 맨날 먹던 만큼 먹는 게 편할 것 같기도 하고..."
"먹이다 보면 맞춰서 먹이게 되는 거지. 한 번에 얼마나 먹일지 차차 알게 되는 거지. 나도 처음에는 잘 못 먹이고 그랬잖아."
"그건 그렇지."
"하긴, 나도 문제가 있긴 하지. 왜 나는 오빠가 이유식도 못 먹이고, 아기를 혼자 재우지도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진짜 그랬다. 오빠가 하려 들지 않는 이유도 있었지만, 내가 맡기지 않으려 하는 것도 있었다. 육아를 도와줄 때에 남편은 하나부터 열까지 내게 물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느냐고, 이 정도면 적당하냐고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물어봤다. 마치 완벽한 매뉴얼을 원하는 것과 같은 눈빛이었다. 물론 나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야 알고 있다. 아이와 관련된 것이라 조심스러워하는 것 또한 알고 있다. 하지만 남편은 철저히 보조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웠다. 누구보다 성실한 태도는 칭찬할 만 하나 육아에 있어 메인은 나라는 생각이 뼈속 깊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은 시윤이와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는 매사 조심스러웠고, 적당히 겁을 냈다.
"내가 메인, 오빠가 서브라고 생각해서 그런 거 아닐까? 어쨌든 우리 집에서 육아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 아닐까 싶은데?!"
"그럴 수도 있겠다. 음... 그런 거 같아."
"뭐... 내가 육아를 전담하고 있는 건 맞긴 하는데, 좀 서운한 마음도 들기도 하네. 엄마랑 아빠, 같이 키우는 건데 말이야."
생각해보면 육아에 있어 남편은 믿을 만한 대체제가 있었다. 바로 나, 엄마였다. 아빠가 못 해주고, 아빠가 서툰 일들은 엄마한테 물어보면 그만이었다. 모든 면에서 엄마는 아빠보다 익숙했고, 또한 능숙했다. 아빠가 도와주려고 몇 번 시도해서 해줄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잘 안되어도 상관없었다. 엄마를 불러해달라고 하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엄마는 아빠와 상황이 달랐다. 못한다고 해서 아빠에게 부탁할만한 일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리고 부탁한다고 하더라도 엄마보다 능숙하게 해낼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대부분의 일은 엄마가 아빠보다 더 잘했다. 당연히 엄마가 아빠보다 더 많이 해보았기 때문이었다.
대체제가 없는 엄마는 어쨌든 육아를 해내야 했다. 젖을 물리는 일, 이유식을 먹이는 일, 칭얼대는 아이를 달래서 재우는 일, 알몸으로 신나게 기어 다니는 녀석을 붙들고 로션을 바르고 기저귀를 채우는 일까지. 아빠가 없는 하루 종일 엄마는 아이와 씨름을 했다. 이유식을 잘 못 먹이겠다고 해서, 칭얼대는 아이가 잘 달래지지 않는다고 해서 외면하는 것은 능사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엄마의 일이었다. 그렇게 엄마의 스킬은 늘었고, 아빠와의 차이는 점점 벌어졌다. 아빠가 점점 주눅 들고 엄마한테 기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생각해 본 건데, 육아가 운전이랑 비슷하지 않아?"
"운전?"
"여보가 운전은 할 수 있잖아. 근데 잘 안 하려고 들잖아. 나한테 자꾸 맡기고..."
"그렇지. 아직은 좀 조심스럽지. 비 오는 날이나 밤에 차 끌고 나가기는 좀 무섭기도 하고."
"여보보다 내가 더 운전을 잘 하니까, 나한테 맡기고 싶은 거잖아. 아기 키우는 건 내가 그런 마음이야. 여보가 나보다 훨씬 더 잘하니까 자꾸 기대게 되는 것 같아."
아이 키우는 엄마가 운전은 필수로 할 줄 알아야 한다며 얼마 전, 남편에게 연수를 받았다. 십여 년간 처박아둔 장롱면허를 꺼내는 순간이었다. 남편은 생각보다 잘한다고 칭찬을 연발했지만, 나는 막상 혼자서 운전대를 잡는 것이 서투르고 어색했다. 특히 비 오는 날이나 밤 시간대에는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약속시간에 늦어 빨리 이동해야 할 때에도 나는 어김없이 남편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주차가 힘든 곳에 갈 때에도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남편에게 운전을 맡겼다. 베테랑 드라이버가 있는데 괜히 내가 운전을 할 이유가 없었다. 결국에는 내가 직접 운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분간은 어떻게든 조수석에 타서 편안하게 가보려고 몸부림을 쳤다.
남편은 육아와 운전이 닮았다고 했다.
엄마라는 든든한 대체제를 가지고 있는 아빠의 마음, 베테랑 드라이버라는 든든한 대체제를 가지고 있는 초보 장롱면허 운전자의 마음. 이 두 마음이 비슷하지 않겠냐고 내게 말했다. 소위 말하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의 걱정을 가벼이 보는 마음 또한 닮아있다. 가볍게 본다기보다 상대도 나만큼 쉬울거라고 넘겨짚어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아이 앞에서 어쩔줄 몰라하는 남편이 내심 답답했다. 기저귀 하나 채우는 것도 착착! 하면 될것 같은데 남편은 아이를 눕혀놓고 진땀을 빼곤 했다. 분유물 온도도 따뜻할 정도로 맞추면 된다 했는데 디지털 온도계가 달린 분유포트가 없으면 당황하기 일쑤였다. 나는 한숨을 쉬며 그냥 내가 하겠노라고 남편에게 말했었다.
그러고보니 남편도 그랬다. 쏘나타 몰던 사람은 모닝도 몰 수 있고, 에쿠스도 몰 수 있다고 했다. 운전에 감이 오기만 하면 별 것 아니라고 했다. 주차를 가르쳐 줄 때에도 이렇게 이렇게 요렇게 요렇게 하면 세상 쉽다고 했다. 물론 내겐 전혀 쉽지 않은 것들이었다. 우리 집 차에 몸을 맞추고 온 감각을 맞추어 놓았는데 어떻게 다른 차를 몰 수 있단 말인가. 앞범퍼까지의 거리감은 누가 알려줄 것이며, 내사랑 후방 카메라의 빈자리는 누가 채워줄 것인가. 운전석에 앉을 때마다 나는 프로 김여사로 빙의해 창문에 거의 붙어가다시피 엉덩이를 당겨 앉았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고 한숨을 쉬었다. 내가 분유포트 앞에서 서성이는 남편을 보는 눈빛으로.
생각해보면 이런저런 면에서 육아와 운전은 꽤 많이 닮았다.
혼자이면 외롭고, 둘이 함께라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는 것 또한 비슷하다. 옆자리에 누군가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난다는 것도 닮았다.
하지만 운전은 결국 운전자 혼자만의 몫이다. 운전대가 하나이기 때문이다. 조수석에 앉은 사람이 아무리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준다고 하더라도 운전대를 잡은 운전자 혼자서 차를 몰아가는 것이다. 그에 비해 육아의 운전대는 하나가 아니다. 엄마의 운전대가 있으면, 아빠의 운전대 또한 따로 있다. 두 사람이 같이 맞추어 방향을 정하고, 사랑을 나누어 줄 때 아이는 가장 행복하게 자란다. 둘 중 하나가 조금 서투를 수는 있겠지만, 하나의 운전대만을 가지고 육아를 완성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장난 섞인 투정이 새로운 발견을 이끌어 냈다. 우리 부부는 이런 게 육아의 재미라며 맞장구를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