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와 2000년대를 조망한다.
리메이크, 그 단어에 감춰진 문화적 긴장
리메이크는 단순한 반복이 아니다. 기존의 음악을 새로운 언어, 정서,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이 행위는 창작과 차용, 재생산과 전유 사이를 오가는 복합적 문화현상이다. 특히 한국 대중음악에서 일본 음악을 리메이크한 사례는 단순한 음악적 모방이 아니라, 식민지의 기억, 문화적 금지, 시장논리, 창작 인프라, 그리고 동아시아 권력구도라는 역사적 맥락이 깊숙이 얽힌 상징적 사건들이다.
왜 우리는 일본 음악을 그렇게 많이 가져왔을까? 왜 창작보다 그것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길이었을까? 이 질문은 1990년대 이후 한국 대중문화가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대 한국 음악 산업, 리메이크에 기댈 수밖에 없었던 현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의 대중음악은 산업적으로는 팽창하고 있었지만, 창작 기반은 여전히 취약했다. 작곡가 풀은 협소했고, 기획사 중심의 생산 시스템은 대중성 있는 곡을 빠르게 확보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일본은 음악적으로 선진국이었다.
일본 음악은 멜로디 감성, 프로덕션 완성도, 장르 다양성 측면에서 이미 몇 수 앞서 있었고, 일본 시장에서 검증된 곡을 한국어 가사로 리메이크하면 흥행 가능성도 높았다.
당시 대부분의 한국 가수들은 자작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니었다. 곡을 선택하거나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기획사로부터 곡을 받아 소화하는 구조 안에 있었다. 자연스럽게 ‘빠르고 확실한’ 선택지로서 일본곡 리메이크는 산업 전체의 방어적 전략이 되었다.
문화 개방 이전: 불법적 차용과 은폐된 리메이크
문제는 일본 대중문화가 공식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해방 이후, 한국 정부는 정치·외교적 이유로 일본 음악의 유입을 금지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이 되면, 대중은 이미 일본 음악을 다양한 경로로 접하고 있었고, 음악 산업은 이를 ‘몰래’ 차용했다.
이 시기 리메이크는 대부분 불법적이었다. 저작권 계약 없이 일본 곡을 거의 그대로 가져오거나, 약간의 편곡만 거쳐 새로운 곡처럼 발표하는 방식이 흔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룰라의 ‘천상유애’ 는 닌자(忍者)의 '오마츠리 닌자(お祭り忍者)'를 표절했다는 의혹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킴 표절이라는 개념이 대중들에게 수면위로 드러났으며, 실제로 날개잃은 천사의 큰 성공이 이후 새로운 앨범 발매라는 기대속에서 활동 중단이라는 결과로 나타남
김민종의 ‘귀천도애’ 는 TUBE의 'Summer Dream' 을 표절하여, 당시 작곡가가 표절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김민종은 활동중단을 선언함
E.O.S의 ‘넌 남이 아냐’ 는 큐(Q)의 '모노가타리(物語)'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끊임없이 받았으며, 그 이후 실제로 E.O.S 의 김형중은 해당곡의 표절을 차후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함
이러한 곡들은 원곡과 구조, 멜로디, 리듬이 현저히 유사함에도 원작자의 이름은 크레딧에조차 오르지 않았다. 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었고, 문화적 열등감과 금기의식 속에서 음악적 타자를 몰래 복제한 것이다.
1998년 이후: 합법 리메이크의 등장과 공식화
김대중 정부의 일본문화 단계적 개방 조치 이후, 한국 음악계는 새로운 선택지를 얻었다. 일본 원작자와의 정식 저작권 계약을 맺고, 당당하게 ‘리메이크’라는 이름으로 일본 음악을 수입하고 재해석하게 된 것이다.
대표적 사례는 다음과 같다.
박효신의 ‘눈의 꽃’(나카시마 미카 – ‘雪の華’)
포지션의 ‘I Love You’(오자키 유타카 – ‘I Love You’)
넛츠의 ‘사랑의 바보’(나카야마 미호 & WANDS - '世界中の誰よりきっと(세상 누구보다 분명)’)
이 곡들은 단순 복제에서 벗어나, 정서와 언어, 발성 방식, 편곡 감각 등을 통해 한국 청중에게 맞는 감성으로 재창조되었다. 원곡보다 더 유명해진 사례도 있었다. ‘눈의 꽃’은 그 대표적 예다.
이 시기의 리메이크는 단순히 곡 수급의 문제를 넘어서, 일본 음악을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제대로 들여와서 자신화하는’ 문화 주체로서의 전환을 의미했다.
리메이크 붐의 퇴조: 창작의 회복, 주도권의 이동
200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음악계는 자생적 창작 능력을 빠르게 키워나갔다. 힙합, R&B, 인디씬의 확대,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 작곡가 네트워크의 확대 등이 동시에 일어나면서 굳이 외국 곡을 리메이크하지 않아도 될 만큼 창작 인프라가 성장했다.
이와 동시에 한국 음악의 영향력이 동아시아 전역으로 확산되며, 문화 주도권 자체가 이동했다. 이제 일본이 한국 곡을 리메이크하거나, 동남아시아 여러 국가에서 K-POP을 따라 하는 현상이 등장했다. 과거에 일본 음악을 베꼈던 한국은, 이제 자신만의 언어를 만들어 발신하는 위치로 이동한 것이다.
리메이크 붐이 사라진 이유는 단지 ‘일본의 곡이 더 이상 매력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이 더 이상 수입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리메이크는 창작의 그늘이자 성장의 자국이다
일본 음악 리메이크는 한국 대중음악이 약자일 때의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표절이나 복제가 아니라, 당대의 정치·문화·경제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불완전한 창작’의 형태였고, 나아가 타자의 감성을 흡수해 자신화하는 학습의 과정이었다.
한국은 리메이크를 통해 일본 음악을 따라잡았고, 극복했으며, 결국 스스로 발신할 수 있는 위치에 도달했다. 이제 리메이크는 더 이상 필요조건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질문할 수 있다.
리메이크는 창작의 한계인가, 성장의 방식인가?
과거를 모방하는 일인가, 타자를 통해 자기를 형성하는 일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지 과거의 곡을 어떻게 다뤘는지가 아니라, 우리가 음악을 통해 어떤 정체성과 권력을 구성해왔는지를 되묻는 일이다. 리메이크는 결국, 복제와 자기화 사이에 놓인 문화적 갈등의 이름이었다.
(이글은 일본음악의 표절 리메이크를 중점적으로 다뤘으며, 전체적인 맥락의 리메이크에 대한 글은 다른 브런치 북 Life and Music 13화 리메이크 편을 참고하세요. https://brunch.co.kr/@space-deer/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