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본다.
일본 정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자민당의 압도적인 장기 집권이다. 1955년 창당 이후 자민당은 거의 예외 없이 정권을 유지하며 일본 정치의 ‘안정’을 상징해왔다. 이를 단순히 선거 전략이나 조직력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그 배경에는 일본의 민주주의 도입 과정, 국민의 정치 문화, 천황제도, 그리고 선거제도의 특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일본의 근대적 정치제도는 메이지 유신(1868년) 이후 시작되었다. 입헌군주제를 표방하며 근대 국가를 건설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천황 중심의 권위주의적 정치 체제가 유지되었다. 20세기 초 잠시 다이쇼 민주주의가 꽃피우며 정당 정치와 보통선거가 발전했으나, 군부의 대두로 민주주의는 억압되었다. (이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진다.)
본격적인 민주주의의 도입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연합군 점령기(1945~1952년)에 이루어졌다. 미국 주도로 만들어진 1947년 헌법은 국민 주권과 기본권 보장을 명시하고, 천황을 정치 권력에서 배제된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한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제도 변화는 외부 강요의 성격을 띠었고, 일본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점령이 끝나자 전통적 엘리트와 관료들은 상당 부분 권력에 복귀했다. 정치 운영은 민주주의적 형태를 띠면서도 여전히 관료주의적, 안정 지향적이었다. 국민들도 전쟁의 참화와 혼란을 겪은 뒤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중시하는 태도를 강화했다.
이러한 문화적·역사적 맥락에서 자민당은 안정과 조화를 내세우며 국민의 지지를 장기간 유지했다. 자민당은 계파 정치와 지역 기반 후원회, 세습 정치라는 강력한 내부 결속 메커니즘을 발전시켰다. 특히 농촌을 중심으로 한 소선거구제도는 자민당에 유리하게 작동했고, 지방자치단체의 장과 의회도 자민당 색채가 강했다.
자민당은 천황제를 존중하고 전통을 계승하는 보수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했다. 천황은 헌법상 정치 권력을 갖지 않지만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일본인의 정체성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자민당은 이 상징성을 자신들의 정당성과 연계해,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보수 유권자층을 안정적으로 결집시켰다.
물론 일본 국민이 변화를 원치 않았던 것은 아니다. 2009년 민주당이 집권했을 때, 자민당의 장기 집권이 낳은 관료주의적 폐쇄성, 부패, 기득권 구조에 대한 피로감이 분명했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은 정책 실행력 부족, 내부 분열, 위기 대응 실패로 신뢰를 잃었고, 결국 3년 만에 몰락했다. 이 경험은 “야당이 정권을 잡아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냉소와 체념을 퍼뜨렸다. 오늘날에도 ‘싫어도 자민당밖에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다.
그 결과 일본 정치에는 다양성과 경쟁이 부족하다. 야당은 재편과 통합에 실패했고, 신진 정치 세력은 자민당의 조직적, 재정적 장벽을 넘어서기 어렵다. 세습 정치가 보편화되어 정치적 재생산이 폐쇄적이고, 유권자의 기대와 정치의 변화 능력 사이의 간극은 점점 커지고 있다.
앞으로 일본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분명하다. 정치권 내 세습과 계파 중심 구조를 개혁하고, 정책 경쟁을 활성화하며, 젊은 세대의 정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야당은 진정한 대안 세력으로서 재편되고, 지역 기반의 불균형을 완화하며,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는 비전과 정책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런 변화가 단기간에 실현되기는 쉽지 않다. 일본 사회의 강한 안정 지향적 문화, 고령화로 인한 변화 저항, 선거제도의 불균형, 자민당의 조직력과 자금력, 지방 권력망 등 여러 요인이 변화를 가로막는다. 정치 개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있어도, 구체적 대안을 마련하고 이를 실행할 정치적 역량과 사회적 합의가 부족하다.
결국 일본 정치의 과제는 안정과 변화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안정이라는 가치는 소중하지만 그것이 혁신을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일본 사회가 민주주의의 이상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불편하고 느리더라도 시민사회와 정치권이 함께 고민하고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이야말로 자민당의 장기 집권을 넘어서는 진정한 민주주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