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3 - 일본에서 성은 또 하나의 이름이다.
일본에서는 부부가 결혼하면 반드시 같은 성씨를 사용해야 한다. 실제로는 여성의 성씨가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는 단순한 이름 문제가 아니라 역사적, 법적, 사회적, 문화적 맥락이 얽힌 복합적 현상이다.
역사와 법적 배경
역사적 배경에서,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근대 국가를 세우며 ‘가(家)’ 제도를 확립했다. 가족을 하나의 행정 단위로 묶어 관리하기 위해 동일 성씨 사용을 규정했으며, 성은 개인 정체성보다 국가와 가부장이 가족을 통제하는 도구로 작동했다. 1947년 개헌으로 가제도는 폐지되었지만, 부부동성 규정은 남았다.
법적 측면에서, 일본 민법 제750조는 부부가 혼인 시 반드시 동일 성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한다. 법적으로는 양쪽 성 선택이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약 95~96%가 여성이 남편 성으로 바꾸는 구조다. 2015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부부동성 규정에 대해 합헌 판결을 내렸지만, 당시 판결은 사회적 논란을 크게 불러일으켰다. 판결 이유는 “부부가 동일 성을 사용함으로써 가족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였지만, 평등권과 개인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성이 바뀌는건 이름이 바뀌는것과 같은 것
사회적·실무적 측면에서는, 성씨 변경으로 직장 경력, 학문적 업적, 사회적 신뢰 관계에서 단절이 발생할 수 있다. 많은 직업 여성들이 법적 성은 바꾸더라도 통칭(구칭)을 사용해 사회적 실무에서 이전 성씨를 유지하는 관행이 널리 퍼져 있다. 이처럼 법적 제약과 실제 운용 사이에는 괴리가 존재한다.
현대적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활발하며, 특히 젊은 세대에서 지지율이 높다. 이는 기존 제도의 강제성을 완화하고, 개인 선택권과 성평등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읽힌다.
젠더 관점에서, 부부동성은 여성이 남편 성씨로 흡수되는 경향을 고착화한다. 일본 특유의 호칭 문화와 결합하면, 여성의 결혼·이혼 여부가 이름을 통해 주변에 드러나는 상황이 흔하다. 예를 들어, 회사 명찰이나 병원 접수, 주민등록 등에서 성이 바뀌면 동료나 행정 담당자가 결혼 여부를 쉽게 알 수 있으며, 이혼 후에도 이름이 바뀌면 이전 결혼 경력이 노출되기도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일본에서 성 자체가 개인 정체성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는 사실이다. 성이 바뀐다는 것은 단순히 행정상의 이름 변경을 넘어, 사회적 정체성과 개인적 정체성이 동시에 흔들리는 경험을 의미한다. 학교, 직장, 사회적 네트워크에서 구축한 평판과 신뢰가 성을 통해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결혼으로 성이 바뀌면 이전 성로 구축한 관계가 즉각적으로 단절되거나 혼동을 초래할 수 있다. 이는 개인 정체성과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제도의 부담이 단순 행정적 불편을 넘어서는 이유다.
다른 나라는?
국제적 비교에서, 서구권은 개인주의와 젠더 평등 원칙을 바탕으로 성 선택권이 넓다. 미국에서는 성 변경을 자유롭게 하고, 스페인·포르투갈은 부모 양쪽 성을 모두 이어받는 더블 서네임 제도를 운영하며, 북유럽은 부모 합의에 따라 자녀 성을 정한다. 성은 가족 소속보다 개인 정체성의 일부로 인식된다. 한국은 일본과 유사하게 근대적 가족 관리 제도를 거쳤지만, 부부동성을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는다.
외국인과의 결혼에서도 일본의 부부동성 규정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외국인 배우자가 성 변경을 거부하더라도 일본 내 행정상 절차를 통해 부부 성 일치를 요구받을 수 있으며, 이는 국제적 관례와 충돌할 수 있다.
정리하면, 일본의 부부동성 제도는 역사적 행정 목적과 전통적 가족 질서, 가부장적 문화가 결합한 결과다. 단점으로는 여성과 개인의 정체성, 사회적 실무적 연속성을 제한하고, 결혼·이혼 정보가 이름으로 노출되는 불합리도 포함된다. 동시에 현대적 논의와 젊은 세대 지지, 실무적 우회 방법 등으로 변화 가능성이 열려 있다.
국제 비교와 한국 사례를 통해 보면, 일본 제도는 개인 자유와 성평등 관점에서 제약적이지만, 문화적·법제적 특수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