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두근거림이 줄어든다.

왜일까?

by 우주사슴

두근거림이 사라졌다고 말하면 대개는 무기력이나 권태를 떠올린다. 그러나 내가 느끼는 감각은 그와는 다르다. 우울하지도, 특별히 불행하지도 않다. 다만 예전처럼 미래가 심장을 빠르게 치지 않는다. 놀라운 일은 줄었고, 대신 예측 가능한 흐름이 삶의 기본값이 되었다.

큰 이유는 삶이 예상대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매일의 일과, 사람들과의 관계, 선택의 결과가 대체로 머릿속 시뮬레이션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돌발 변수는 물론 존재하지만, 그것들은 구조를 흔들 만큼 크지 않다.

이 예측 가능성은 경험의 축적에서 비롯된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었고, 비슷한 감정의 궤적을 반복해서 관찰했다. 그래서 미래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때의 감정을 이미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착각에 가까운 느낌이 생긴다. 성공했을 때의 만족, 실패했을 때의 실망, 관계가 깊어질 때의 온도 변화가 대략 어디쯤 일지 가늠된다.

기대가 줄어든다는 것은 희망이 사라졌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기대가 감정의 진폭을 키우지 않는다. 결과가 나쁘지 않을 것을 알기에 크게 긴장하지 않고, 아주 좋을 수 없다는 것도 알기에 들뜨지 않는다. 삶은 안정적인 곡선을 그리며 진행되고, 그 곡선은 놀라울 만큼 매끄럽다.

여기에는 분명한 전제가 숨어 있다. 나는 통제 가능한 삶을 좋은 삶으로 간주해 왔다는 점이다. 리스크를 관리하고, 실패 확률을 낮추며, 감정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선택을 반복해 왔다. 그 결과 삶은 효율적이 되었지만, 동시에 두근거림이 잘 느껴지지 않는 구조가 되었다.

또 하나의 전제는 성숙에 대한 나의 정의다. 나는 성숙을 감정의 과잉을 제거하는 과정으로 이해해 왔다. 흥분을 경계하고, 과도한 기대를 미숙함으로 취급했다. 이 태도는 나를 안정적으로 만들었지만, 놀람과 설렘까지 함께 정리해 버렸다.

그래서 이 글은 질문으로 돌아온다. 두근거림의 감소는 결핍인가, 아니면 내가 선택한 삶의 필연적 결과인가. 만약 후자라면, 나는 이미 비용을 지불한 상태다.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얻는 대신, 감정의 날카로운 파동을 내려놓았다.

중요한 것은 이 상태를 미화하지도, 비극화하지도 않는 것이다. 나는 지금의 삶이 나와 부합되는지 점검하고 있을 뿐이다. 두근거림이 줄어든 이유를 외부 환경이나 나이 탓으로 돌리면 분석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선택의 누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만 이 상태는 설명 가능해진다.

온전히 드러내자면, 나는 더 이상 삶이 나를 놀라게 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스스로 균열을 만들어 두근거림을 만들고자 하는지, 이 매끄러운 곡선에 의도적인 거친 기울기로 틀어버릴 용기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 아마 두근거림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의도적으로 감수해야 하는 비용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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