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건은 잊히고 말겠지.
립밤을 잃어버렸다.
사소한 물건이다. 값도 크지 않고, 다시 스페어 립밤을 꺼내어 쓰면 된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하루를 꽤 오래 붙잡았다. 이유를 생각하지 않으면 지나가지 않을 종류의 사건이었다.
항상 가지고 다니던 립밤이었다. 여름에도 입술이 건조해서 가지고 다닌다.
이 습관은 15년이상 지속된 것이어서, 다른 물건과는 성격이 다르다.
많이 남아 있었고, 매일같이 사용했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고, 필요할 때 손이 가는 위치에 있다는 감각.
그 안정성이 예고 없이 끊어졌다는 사실이 먼저 불안을 만들었다.
처음엔 단순 분실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능성을 그냥 두지 못했다.
회사에 두고 왔을지도 모른다는 가설 하나를 제거하기 위해
추운 저녁, 자전거를 타고 20분을 되돌아갔다.
결과는 없었다.
이후에도 생각은 이어졌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가는 길을 다시 걸으며 찾아볼까 하는 생각.
하지만 다음 일정이 있었고, 나는 그러지 않았다.
여기서 또 하나의 잔여 감정이 남았다.
찾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찾을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는 가능성을 스스로 닫았다는 느낌이다.
원인을 따져보기 시작했다.
식당에서 잃어버린 것 같지는 않았다.
입고 있던 아웃도어 재킷은 물건이 쉽게 빠져나오기 힘든 구조였다.
설명되지 않는 예외만 남았다.
그래서 질문이 바뀌었다.
나는 왜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가.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첫째는 애착이다.
이 립밤은 감정적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써온, 검증된 도구였다.
문제없이 기능했고, 루틴에 통합돼 있었다.
그 신뢰 관계가 예고 없이 끊어졌다는 감각이 남았다.
둘째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다.
이 정도의 사소한 것조차 관리에서 빠져나온다면
언젠가 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립밤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신호처럼 읽혔다.
셋째는 자기 기준이다.
나는 나 자신을 비교적 잘 관리하는 사람으로 인식해 왔다.
그래서 분실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내가 세워둔 기준에서의 이탈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완벽주의자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러나 답은 그렇지 않다.
나는 완벽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설명 가능하고, 일관된 상태를 선호할 뿐이다.
설명되지 않는 예외가 나타날 때
사건보다 먼저 나 자신을 점검하는 쪽에 가깝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 일은 시간이 지나면 평온해질 것이다.
나는 그걸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 생각을 끝까지 밀어붙인 이유는
감정을 없애기 위해서가 아니다.
다음번에 비슷한 사건이 왔을 때
이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립밤은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충분히 관리된 시스템에서도 예외는 발생한다.
그 예외는 관리 실패나 인격 결함의 증거가 아니다.
립밤은 여전히 없지만
이 사건은 어느새 잊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