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스토리의 역할

스토리는 그저 존재의 신호

by 우주사슴

인스타 스토리는 기록처럼 보이지만 기록이 아니다.
대화처럼 보이지만 대화도 아니다.
스토리는 내용의 전달이 아니라 존재의 표식이다.
무엇을 올렸는지는 부차적이고, 올라왔다는 사실이 핵심이다.

스토리는 “나는 오늘 이것을 봤다”가 아니라
“나는 아직 여기 있다”라는 신호에 가깝다.
그래서 스토리는 기억을 남기기보다 타임라인에 자신을 남긴다.

스토리는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관계를 대체한다.
정확히 말하면, 관계 유지에 들어가던 비용을
‘연결된 상태처럼 보이게 만드는 최소 행위’로 치환한다.

예전의 관계유지비용은 명확했다.
시간을 내야 했고, 이동해야 했고, 말을 걸어야 했다.
이 비용은 부담이었지만 동시에 신호였다.
이 사람에게 이만큼의 자원을 쓰고 있다는 증거였고,
그 자체가 관계의 밀도와 우선순위를 드러냈다.

스토리는 이 비용을 거의 제거한다.
사진 한 장, 음악 한 곡, 문장 몇 줄이면 충분하다.
연락하지 않아도 단절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관계가 쉬워진 것이 아니라,
관계라고 부르는 최소 기준이 낮아진 것이다.

스토리는 가성비가 좋다.
단절을 막는 데에는 매우 효율적이다.
하루에 몇 초만 써도 수십 명과 연결된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그 효율은 깊이를 대가로 한다.

스토리는 “나는 살아 있다”는 신호는 보내지만
“너에게 시간을 쓰고 있다”는 신호는 거의 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관계는 남아 있지만, 자라지 않는다.
유지되는 것은 관계가 아니라 관계의 흔적이다.

스토리는 안전한 감정 배출구이기도 하다.
직접 말하기에는 과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기에는 답답할 때
모호한 이미지와 텍스트로 감정을 흘려보낸다.
누군가는 알아보고, 누군가는 지나친다.
이 불확정성이 스토리를 편하게 만든다.

스토리는 정체성을 구성하는 도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체성을 편집하는 장치다.
있는 그대로의 내가 아니라
보여주고 싶은 나를
임시로, 책임 없이 배치한다.
24시간 후 사라진다는 사실이
이 연출을 더욱더 쉽게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스토리는 습관이 된다.
의미를 고민하지 않고 올리고,
의미를 해석하지 않고 본다.
스토리는 선택이 아니라 환경 반응이 된다.

결국 스토리는 인간관계를 풍요롭게 만들지 않았다.
관계유지비용을 낮췄고,
관계를 정의하는 기준을 낮췄다.
그래서 편해졌고,
그래서 공허해졌다.

스토리는 관계 그 자체가 아니다.
관계의 대기 상태다.
언제든 다시 깊어질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제공하는 저렴한 비용의 수단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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