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로고는 중요치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폴로 랄프로렌을 아메리칸 스타일, 프레피 룩의 상징 정도로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이해의 중심에는 대개 포니 로고가 놓인다.
가슴 한쪽에 수 놓인 작은 말 한 마리가 곧 브랜드의 정체성이라고 여기곤 한다.
누군가에게 폴로는 로고의 크기와 위치로 판별되는 기호다.
그 기호가 곧 스타일이라고 인지된다.
그러나 폴로를 그 정도로만 읽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폴로의 영역에는 프레피만 있는 것이 아니다.
밀리터리, 워크웨어, 웨스턴, 클래식 슈트, 비치웨어 등
서로 다른 맥락과 계층의 이미지가 겹겹이 쌓여 있으며,
기원을 계승하고자 하는 태도는 계속해서 읽힌다.
옥스포드 셔츠와 럭비셔츠는 스포츠 문화에서 출발했으며,
M65와 퍼티그 자켓은 US 군복의 복각과 비틀림이며,
데님의 버튼 플라이와 시계 포켓은 옛것에 대한 존중과 계승이다.
나는 이 다양함과 헤리티지의 존중을 재료로 사용한다.
브랜드가 제시하는 정형화된 프레피 룩을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
오히려 프레피적 요소를 밀리터리와 연결하고,
워크웨어적 아이템을 클래식과 병치한다.
폴로 니트 위에 군용 파카를 입고,
폴로 데님을 기능성 아웃도어 재킷과 결합한다.
폴로의 헤리티지는 하나의 방향이 아니라 교차점이다.
나는 그 교차점을 확장한다.
폴로가 과거의 구조를 복각하는 방식은 비교적 정교하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브랜드가 제시한 세계관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는다.
나의 생활 반경과 환경 속에서 다시 재배열한다.
출퇴근의 동선, 도시의 밀도, 계절의 체감, 실제 착용 경험.
폴로를 입을 때, 나는 그 옷이 어디서 왔고,
어떤 기능을 갖고, 지금의 환경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먼저 본다.
여기에는 나의 패턴이 개입한다.
나는 고채도의 색보다 저채도의 질감을 우선한다.
블랙, 차콜, 네이비, 올리브, 카키, 그레이 등
그중에서 네이비와 올리브의 다양한 변주를 즐긴다.
그리고 그 안에서 텍스쳐의 대비를 높인다.
울의 밀도, 데님의 워싱,
헤링본, 버드아이, 아가일, 노르딕 등 다양한 패턴, 면의 수많은 방법으로 가공된 질감
저채도 안에서 레이어드가 충돌하고 쌓이도록 둔다.
과시는 없고, 축적을 택한다.
반복 속에서 태도가 구축된다.
이러한 구조를 가장 자연스럽게 지탱하는 축이 폴로다.
클래식, 유틸리티, 밀리터리, 워크웨어 사이에서
가장 부드럽게 이동하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폴로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구조를 연결하는 도구로 사용한다.
폴로는 내 스타일의 중심이 아니라, 연결부다.
클래식에서 밀리터리로,
기능성에서 전통으로 넘어갈 때
중간의 톤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장치다.
이 지점에서 포니 로고는 중요하지 않다.
로고는 식별의 표식일 뿐,
내가 헤리티지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대신하지 못한다.
로고가 중심이 되면 사람은 브랜드에 종속된다.
구조가 중심이 되면 브랜드는 도구가 된다.
왜 이런 포켓이 달렸는지,
왜 이 실루엣이 만들어졌는지,
왜 이 조직이 지금의 환경에서 유효한지.
기능과 기원을 읽고, 현재의 맥락에서 재배열한다.
나는 산길을 걷고, 도시에서 생활하며, 추위 더위를 관통한다.
경험을 통과한 기능이 축적된다.
나는 폴로를 통해 단정한 프레피룩 신사가 되려 하지 않는다.
폴로를 사용해 나의 구조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폴로를 상징으로 소비하지만,
나는 폴로를 도구로 사용한다.
그리고 밀리터리, 워크웨어, 클래식, 기능성과 교차시킨다.
결국 나의 패션은 특정 장르의 충실한 재현이 아니다.
헤리티지를 이해하고, 기능을 체험하며, 텍스쳐를 축적하는 과정의 기록이다.
폴로는 그 과정에서 자주 등장하는 재료이다.
하지만 중심은 언제나 나 자신임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