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저녁, 영하 10도에도 달리는 이유

특별한 이유는 없다. 정했기 때문이다.

by 우주사슴

월요일이면 남산을 달린다. 특별한 결심이나 의식은 없다. 달리는 게 좋고, 체력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단순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요일과 장소를 고정한 것은 반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장치다. 판단을 줄이고, 실행을 남기기 위한 결정이다.


어제는 영하 10도의 날씨였다. 그렇다고 계획이 바뀌지는 않았다. 날씨는 조건일 뿐, 이유는 아니었다. 달리기로 이미 결정된 상태에서 기온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춥다는 사실과 달린다는 행위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나는 추위와 더위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겨울 산행과 백패킹을 반복해 왔고, 여름에도 남산을 달려왔다. 이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노출의 축적에 가깝다. 반복 속에서 몸이 먼저 환경에 적응하고, 그 결과 환경은 점점 의식의 전면에서 밀려난다. 그렇게 배경이 된 뒤에야, 생각이 그 상태를 따라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묻는다. 이런 날씨에 왜 뛰느냐고. 의아함은 자연스럽다. 대부분의 삶에서 영하 10도는 피해야 할 조건이기 때문이다.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 질문에 반드시 답해야 할 이유는 더 이상 느끼지 못한다.


과거에는 나의 생각을 설명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설득의 뉘앙스가 섞이기도 했다. 달리기의 가치, 추위 속에서 얻는 감각, 삶의 밀도 같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큰 의미를 갖지 않는다고 본다. 받아들일 맥락이 다르다면, 어떤 말도 공명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그 사람의 시간이 이미 다른 목적들로 꽉 차 있다면 상황은 오히려 나빠진다. 설명은 정보 전달이 아니라 평가처럼 들리기 쉽고, 그 순간 이해로 이어지기보다 반감을 만들 가능성이 커진다. 나의 행위가 상대의 삶을 암묵적으로 재단하는 것처럼 읽히는 순간, 대화는 이미 어긋난다.


이 선택을 우월하다고 느낄 이유도 없다. 비교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나보다 더 가혹한 환경에서 뛰고 훈련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다. 위를 보면 끝이 없고, 아래를 보면 비교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그 게임에 들어가는 순간, 달리기는 훈련이 아니라 평가가 된다. 나는 그 방향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태도를 정리했다. 설명하지 않기로, 권하지 않기로, 비교하지 않기로. 대신 계속 달리기로 했다. 나에게 집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영하 10도의 남산을 달린 이유는 여전히 단순하다. 달리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결정을 외부의 이해나 공감으로 증명할 필요는 없다. 기록은 남기되, 그 의미를 타인에게까지 설명하려 하지는 않는다. 이 선택은 여기서, 나에게서 끝난다.


그날의 기록. 사실 10킬로 정도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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