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가?

미안하지만, 그 답을 안다고 하여 성공을 담보하지 않는다.

by 우주사슴

대부분의 사람은 왜 사는가를 평소 깊게 생각하지 않는다.


혹시라도 누군가 물으면 평이한 답이 나온다.


가족의 행복, 사랑하는 사람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틀린것도 아니며, 사회적으로도 무난하며, 거의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답이다.

그런데 미션과 비전을 가진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이 답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굳이 미션과 비전을 세운다.


여러가지 정의와 그에 관련한 다양한 설명이 있지만,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비전은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미래의 모습이며, 미션은 비전을 이루기 위한 행동과 목적이다.


단순히 행복을 위해서일까, 성공을 위해서일까.


행복하다고 느끼거나 성공가도에 있으면, 미션과 비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그 상태 그대로 좋기때문에,


오히려 미션과 비전은 삶의 방향을 스스로 점검하고, 흔들릴 때 기준을 확보하기 위한 도구다.


쉽지 않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선택을 검토하고, 때로는 불필요해 보이는 고민까지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그들은 삶의 주도권을 확인한다.


왜 사는가를 묻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삶의 주도성을 찾기 위한 질문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방향이 없거나, 이미 누군가에게 맡긴 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가족, 책임, 사회적 기대, 역할 같은 것들이 사회에서 제시한 구조로 작동되게된다.

문제는 그 구조에서 벗어나거나, 그 구조안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다.


그때 처음으로 “왜 난 이렇게 가고 있었지?”라는 질문이 튀어나온다.

미션과 비전은 거창한 선언문이 아니다. 주도권을 사회구조나 타인에게 주지 않겠다는 표시다. 맞는지 틀린지 이전에, 이 선택이 내 선택이라는 최소한의 확인이다.


주도성을 찾는다고 해서 삶이 완전히 통제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은 여전히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고, 운은 제멋대로이며,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다만 흔들릴 때 “내가 이 길을 선택했다”는 자각이 남는다. 그게 책임이자 버팀목이 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선택을 검토하고, 때로는 불필요해 보이는 고민까지 해야한다.

답은 한 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다. 삶이 변할 때마다 다시 물어야 한다.

왜 사는가는 정답을 기록하는 시험 문제가 아니라, 본인의 삶의 좌표와 방향을 점검하는 과정이다.

왜 사는가에 대한 답은 삶을 성공시키는 비밀 문장이 아니다.

삶을 내 이름으로 서명하고, 흔들릴 때, 힘들 때 중심을 잡게 해주는 최소한의 기준이다.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내 삶의 주도성을 확인하게 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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