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PI를 삶에 가져온다면?

회사원의 나로부터 나 자신의 나로 삶의 중심을 옮기자.

by 우주사슴

KPI는 핵심성과지표다. 조직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명확히 정의하고, 그 진행 상황을 점검하며, 결과를 평가하기 위해 설정되는 기준이다. 회사에서 KPI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목표 설정, 실행, 점검, 평가라는 관리 구조 전체를 의미한다. 회사는 이 구조를 통해 구성원의 행동을 정렬시키고, 경영 성과를 관리한다.


KPI = Key Performance Indicator


회사에서 KPI는 잘 작동한다. 목표는 경영진과 전략 조직에서 설정되고, 상위 목표는 하위 조직으로 단계적으로 분해되어 전달된다. 개인은 이미 정의된 방향 안에서 역할을 수행하면 된다. 목표의 정당성이나 의미를 처음부터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이미 누군가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논리를 개인의 삶으로 가져오는 순간 머릿속에서 브레이크가 걸린다. 삶은 KPI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막연한 거부감, 혹은 회사 일로 충분히 지쳤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회사에 지친 나에게 주어진 휴식 시간은 쉬기에도 부족하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반응은 자연스럽다. 회사는 이미 개인의 판단력과 집중력을 과도하게 소모한다. 퇴근 후의 휴식은 사유의 시간이 아니라 회복의 시간으로 쓰인다.


하지만 이 상태가 반복되면 결과는 분명해진다. 개인은 회사원으로만 머무르게 된다. 회사에서의 사고 구조는 회사에만 사용되고, 개인의 삶은 방향 없이 흘러간다. 생각하지 않기로 선택한 시간이 누적될수록, 삶은 점점 회사의 부속물처럼 남는다.


여기에 하나 더 작용하는 요인이 있다. 조직은 구성원을 전체 인간으로 다루지 않는다. 역할과 기능 단위로 쪼개어 사용한다. 문제는 개인이 이 방식을 너무 충실하게 내면화했다는 점이다. 회사에서 발휘한 계획 능력, 점검 능력, 판단 능력은 회사의 것이고, 개인의 삶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선을 긋는다. 그렇게 사고는 점점 파츠 단위로 침식된다.


이 상태는 회사에 충실한 삶이라기보다, 회사원이라는 역할에 사고가 고정된 상태에 가깝다. 회사에서 목표 설정과 점검을 성실히 수행할수록, 역설적으로 개인에게 적용해볼 수 있는 사고는 차단된다. 회사의 논리는 회사에서만 유효하다는 믿음이 강해질수록, 개인은 그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전환하지 못한다.


하지만 개인에게 KPI를 적용하려 할 때 가장 큰 장벽은 따로 있다. 삶의 목표나 미션이 없는 상태에서 KPI를 세우는 일이다. 회사 KPI는 목표가 먼저 있고 지표가 따라온다. 개인의 삶에서는 목표 자체를 만드는 일이 출발점이다. 이 단계에서 많은 사람들이 멈춘다.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 할지 모르겠다는 감각은 무능이 아니라 공백의 감각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고민을 회피하는 것과, 붙잡고 씨름하는 것의 차이는 크다. 삶의 목표나 미션이 있는 상태와 없는 상태는 천지차이다. 목표는 삶을 통제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선택을 정렬하는 기준이 된다. 무엇을 할지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지를 결정하게 만든다.


이 고민에 쓰는 시간은 결코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남은 여생의 방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투자에 가깝다. 빠르게 정답을 찾을 필요도 없다. 임시적인 목표여도 괜찮고, 바뀌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 내려준 목표를 수행하는 삶에서,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는 삶으로 이동하는 경험 자체다.


그 이후에야 비로소 KPI가 의미를 갖는다. 목표가 있는 상태에서의 점검은 압박이 아니라 조정이 된다. 실패는 좌절이 아니라 정보가 된다. 회사에서 사용하던 구조가, 개인을 소모하는 장치가 아니라 삶을 다듬는 도구로 전환된다.


KPI를 나의 삶에 가져온다는 것은, 회사처럼 살겠다는 말이 아니다. 회사에서 배운 구조를 삶의 언어로 번역하겠다는 뜻이다. 목표를 누군가에게서 받는 인간이 아니라, 스스로 설정하는 인간이 되겠다는 선언이다.


작심삼일로 끝나더라도 괜찮다. 그 과정에서 왜 멈췄는지, 무엇이 어려웠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이미 이전과는 다른 삶에 들어선 것이다.


KPI를 나의 삶에 가져온다는 생각은, 회사원으로만 머무르지 않기 위한 사유이기도 하며 삶의 중심을 회사원의 나로부터 나자신의 나로 가져오는 출발점이다.


PS. 프리랜서나 자영업자는 이 논의의 예외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른 방식으로 같은 문제에 놓여 있다. 이들은 KPI가 없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매출과 성과라는 KPI에 과도하게 노출된 상태다. 문제는 그것이 삶의 KPI가 아니라 일의 KPI라는 점이다. 일의 지표가 삶 전체를 대체하면서, 바쁘지만 방향은 흐려지거나 매몰되고, 자유는 관리 부재로 변한다. 목표를 세우는 주체이자 제한을 거는 주체가 모두 자신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오히려 더 의식적으로 삶의 구조를 설계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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