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찾아올까?
다주택자가 집을 내놓으면 공급이 늘어나 집값이 안정된다는 믿음은 단순하고 직관적이다. 매물이 많아지면 가격이 눌린다는 기대는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직관은 단기 현상만 설명한다. 시장은 순간적인 물량이 아니라 거래를 유지하고 가격을 지지하는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
문제는 상당수 무주택자가 이 구조에 참여할 수 있는 유효수요층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주택자 수가 많다는 사실은 이들이 실제로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 아니다. 다주택자가 빠진다고 해서 무주택자가 그 자리를 자동으로 채우지 않는다. 매수 여력이 있는 일부도 대출 제한과 금리 부담에 묶여 있고, 자산가치에 대한 판단이 보수적이라 쉽게 매수로 전환하지 않는다. 애초에 1주택자가 될 의사가 없는 사람들도 많다. 결국 다주택자가 규제로 집을 내놓더라도 그 물량을 흡수할 유효수요는 제한적이다.
단기적으로는 공급이 늘어난 듯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을 지탱하던 매입 기반이 약해진다. 공급은 한 번의 매물 증가가 아니라 지속되는 흐름이다. 다시 사줄 사람, 다시 임대를 공급할 사람, 시장의 완충 역할을 하던 계층이 사라지면 시장은 얇아진다. 얇아진 시장은 거래량이 줄고 가격을 지지하는 힘이 약해졌다는 뜻이다. 가격을 완충하던 구조가 사라지면 시세는 작은 자극에도 크게 반응한다. 소수의 매수만으로 가격이 위쪽으로 튀고, 반대로 충분한 매물이 쏟아지지 않아 하락 압력은 약해진다. 시장은 위로는 빠르게 열리고 아래로는 잘 열리지 않는 비대칭 구조가 되고, 이 비대칭성은 시간이 지날수록 상승 압력을 강화한다. 그래서 얇아진 시장에서는 가격이 떨어지는 힘보다 올라가는 힘이 훨씬 강해진다.
반대로 다주택자가 집을 많이 보유하게 되면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매입 여력이 있는 계층이 시장에 지속적으로 머물고, 이들이 사들인 주택은 다시 임대나 전세의 형태로 공급된다. 유효수요뿐 아니라 유효공급의 흐름도 함께 유지되는 셈이다. 이 흐름은 시장의 완충 장치가 된다. 수요가 과도하게 몰리거나 공급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어도 가격은 급격히 튀지 않는다. 꾸준한 매입과 꾸준한 공급이 존재할 때 시장은 균형을 유지한다.
금리, 경기 사이클, 정책 조합 등은 당연히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이들은 방향을 정하는 변수가 아니라 속도를 바꾸는 요인에 가깝다. 본질적인 구조는 별개다. 게다가 지금 정부의 정책은 전문가들조차 헷갈릴 만큼 복잡하고, 개별 정책이 실제로 시장에 어떤 직접적 인과를 만들어내는지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이럴수록 단기 효과에 집중한 판단은 흔들리고, 구조 자체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해진다. 구조는 단순하고, 가격은 결국 그 구조의 방향을 따라 움직인다.
결국 다주택자가 집을 내놓으면 공급이 늘어 집값이 안정된다는 믿음은 단기적으로만 성립한다. 장기적으로는 시장 참여자가 줄고 유효공급이 감소하며 구조는 약해진다. 구조가 약해지면 시장은 얇아지고, 얇아진 시장에서는 가격이 상승 방향으로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선의로 강화된 규제가 의도와 달리 가격 상승을 초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장은 감정이 아니라 구조를 따라 움직이며, 구조가 흔들리면 가격은 결국 상승한다.
전반적인 집값에 대한 구조는 본 브런치북 1권에서 11편 시리즈물로 다루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politics-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