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합의 - 엔화 절상의 이면

플라자 합의 2부 - 플라자 합의의 본질은 무엇인가?

by 우주사슴

1985년 9월 뉴욕 플라자호텔에서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역사적 합의를 발표했다. 플라자합의는 종종 “미국이 일본 엔화를 강제로 절상시킨 사건”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그것은 전체 맥락의 일부일 뿐이다. 이를 단일한 피해담으로만 기억하는 것은 오히려 중요한 교훈을 가린다.



1. 플라자합의의 배경


1980년대 초 미국은 레이거노믹스로 대규모 감세, 군비 지출 확대, 그리고 통화긴축을 동시에 추진했다. 그 결과 달러 금리가 상승하면서 자본이 몰렸고 달러는 역사적 강세를 기록했다.


(레이거 노믹스: 국방비 증가, 정부 지출 증가 속도 둔화, 연방 소득세 및 양도소득세 감소, 정부 규제 완화, 그리고 인플레이션을 줄이기 위한 통화 공급 긴축이 포함되었다. 레이건 대통령과 이코노믹스의 합성어)


이 초강세 달러는 미국의 수출경쟁력을 약화시켜 무역적자를 심화시켰다. 반면 일본과 서독은 막대한 무역흑자를 쌓았다. 미국 내에서는 제조업이 쇠락하고 Rust Belt가 상징적인 산업 공동화의 풍경이 되었다. 이러한 불균형은 세계 무역질서 전반의 긴장을 키웠고, 미국은 이를 조정하기 위해 다자간 협의를 시도했다.


(Rust Belt: 미국의 중서부 지역과 북동부 지역의 일부 영역을 표현하는 호칭이다.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인 디트로이트를 비롯해 미국 철강 산업의 메카인 피츠버그, 그 외 필라델피아, 볼티모어, 멤피스 등이 이에 속한다.)


2. 기축통화국이 달러 절하를 추진한 이유


달러는 기축통화로서 강세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달러 초강세가 국내 산업 경쟁력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역설을 마주했다.


첫째, 제조업 일자리 감소와 무역적자 폭증은 정치적 위기를 초래했다.

둘째, 무역적자는 재정적자와 결합해 ‘쌍둥이 적자’의 악순환을 강화했다.

셋째, 무역상대국의 흑자는 그들 내부의 투자왜곡과 거품을 낳았다. 미국은 이 부담을 나누도록 요구했다.

넷째, 패권국으로서의 협상력 유지가 필요했다. 미국은 동맹국의 협조를 받아 달러 강세를 조정하고 무역마찰을 완화하려 했다.


즉, 달러 약세 유도는 기축통화 특권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 특권이 야기한 비용을 관리하려는 전략적 조치였다.


3. 플라자합의는 일본만의 일이 아니었다


플라자합의는 미국과 일본 간의 양자압박이 아니라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가 달러 강세를 조정하기 위해 외환시장 개입을 합의한 다자간 조율이었다.


엔화뿐 아니라 독일 마르크, 프랑스 프랑, 영국 파운드 모두 달러 대비 절상되었다. 그러나 효과는 비대칭적이었다. 일본 엔화는 240엔에서 120엔으로 단기간에 급격히 절상되었다. 독일 마르크도 절상되었으나, 독일은 긴축적 통화정책과 재정건전성으로 충격을 흡수하고 자산버블을 방지했다.



4. 왜 일본 사례만 부각되는가


가장 큰 이유는 플라자합의 이후 일본의 극적인 궤적 때문이다. 엔화 급등 충격을 흡수하려고 일본 정부와 기업은 초저금리, 대규모 유동성 공급으로 대응했고, 이것이 부동산·주식시장 거품으로 이어졌다. 거품이 붕괴한 뒤 일본은 30년 가까운 장기불황을 겪었다.


또한 일본 사회 내부에서 이 합의를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경제를 망친 사건’으로 해석하며 외부 책임을 강조하는 서사가 형성되었다. 한국 등 주변국에서도 일본의 실패가 교훈담처럼 소비되면서, 플라자합의=엔화절상=몰락이라는 단순화된 도식이 굳어졌다.



5. 그것만 기억해서는 안 되는 이유


플라자합의는 달러 강세로 인한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시정하려 한 다자간 통화정책 실험이었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단순한 엔화 절상이 아니라, 그것을 관리하는 국내 정책 실패와 맞물려 있었다.


반면 독일은 같은 절상 압력 속에서도 긴축적 통화정책, 규제 유지, 재정건전성 등을 통해 충격을 흡수했다. 플라자합의를 ‘외부 강제’로만 기억하면 구조적 문제를 개인화하거나 외부로 전가하는 사고방식을 강화한다. 이는 위기 대응의 학습을 방해한다.


6. 기억을 다시 구성해야 할 때


플라자합의는 일본 엔화 절상을 강제한 사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만 기억하면, 국제협상의 복잡성, 국내정책의 역할, 산업 경쟁력 유지의 중요성을 놓친다.


기억은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토대다. 플라자합의는 단선적인 피해담이 아니라, 오늘의 경제정책과 국제질서가 직면한 균형과 긴장을 성찰하게 하는 거울로 읽어야 한다.


맨하탄에 가면 이 호텔에서 묵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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