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자 합의 3부 - 플라자 합의 40주년, 지금의 의미
1985년의 플라자합의는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질서와 냉전체제, 압도적인 달러패권, 그리고 동맹국 간의 정치·군사적 연대가 맞물린 산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그와 같은 통화조정 합의는 실현되기 어렵다. 그 이유를 구조적, 지정학적, 제도적, 정치적 차원으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플라자합의 당시 미국은 군사력, 금융질서, 기술력, 외교역량에서 모두 압도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다.
냉전 중이었기에 서독, 일본, 영국, 프랑스는 안보를 미국에 의존했고, 경제적 협조 또한 안보동맹을 통해 뒷받침됐다. 미국은 압박이 아니라 조율자이자 보증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미국은, 다극화된 세계에서 ‘하나의 중심’이 아니라 ‘하나의 축’일 뿐이며,
중국의 부상,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 추구, 신흥국들의 대안질서 구상 등으로 조율의 지렛대가 약해졌다.
오늘날의 불균형 조정에서 가장 큰 대상은 일본이나 독일이 아니라 중국이다.
중국은 G7 국가가 아니며, 미국과 안보 동맹관계에 있지도 않다.
플라자합의처럼 신뢰 기반의 ‘비공식 합의’는 중국과 어렵다.
미국은 이에 따라 중국을 상대로 다자조정이 아닌 양자압력(bilateral pressure),
예컨대,
환율조작국 지정
무역협상에서 환율을 협상카드화
제재 위협과 투자 규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플라자합의와 구조적으로 다른 접근이다.
1980년대에는 무역불균형의 주요 원인은 제조업 경쟁력 차이였다.
환율 조정만으로도 무역의 흐름을 바꾸는 효과가 컸다.
지금은
글로벌 공급망이 다층적으로 얽혀 있고,
한 나라의 통화가치가 수출입에 미치는 영향이 과거보다 복잡하다.
제조보다 데이터, 서비스, 기술이 무역의 중심이 되었으며,
환율보다 산업구조와 규제환경이 경쟁력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만큼 환율조정을 통한 간단한 해결책은 이제 효용이 낮아졌다.
1985년의 외환시장 규모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았다.
당시에는 중앙은행이 시장 개입을 통해 달러 가치를 조정하는 것이 가능했고, 일정한 지속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오늘날은, 하루 외환거래량이 7조 달러에 육박하며,
알고리즘 거래와 고빈도매매 등으로 개입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다.
금융시장 자체가 탈국가화되고, 기대효과가 일시적이다.
중앙은행의 공동개입으로 시장을 ‘관리’하던 방식은 사실상 유효하지 않다.
1980년대 미국은 재무부와 연준, 백악관이 비교적 조율된 목소리를 낼 수 있었고,
대외경제정책에 있어 집행력이 강했다.
지금은
미국 내 정치 양극화로 인해 통화·무역정책에 대한 일관된 합의가 어렵고,
정권에 따라 국제협상 전략도 크게 달라진다.
트럼프의 일방주의, 바이든의 동맹주의 등 대외경제정책이 정파화되었다.
결과적으로 신뢰받는 리더십과 정책의 연속성이 사라졌고, 다자적 외환합의를 설계할 동력도 약화되었다.
플라자합의는 사실상 주요국끼리 비공개로 외환시장에 개입을 약속한 일종의 ‘담합적 조율’이었다.
IMF의 투명성 원칙이나 WTO의 통상규범에 비추면, 오늘날 그런 조율은 제도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환율조작 논란, 무역보복 우려 등도 상존한다.
즉, 국제제도의 정당성 압박이 외환시장 개입의 자유도를 제한한다.
오늘날 플라자합의는 왜 불가능한가
오늘날은
미국이 조정자이기보다는 경쟁자와 갈등자의 위치에 있으며,세계는 미국 중심이 아니라 다자 중심 구조로 이행 중이고, 복잡해진 경제구조와 빠른 금융시장, 제도적 투명성은 과거와 같은 외환개입합의를 어렵게 만든다.
플라자합의는 단일패권 질서와 동맹국 간 신뢰, 그리고 상대적으로 단순했던 경제불균형 구조가 만들어낸 역사적 사건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복잡성의 시대에 있으며, 문제 해결은 다자적 합의가 아니라 국내정책 조정과 장기적 협력구조의 설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