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쌀 부족 사태

먹거리는 참 중요하지라.

by 우주사슴
왜 쌀은 국가가 관리해야 하는가


쌀은 단순한 곡물이 아니다. 한 사회가 서로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로 하는 가장 작은 단위이며, 국가가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생존의 안전망이다.


쌀값은 곧 민심이다. 매일같이 소비하는 주식이자, 서민 가계의 기초가 되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이 가격이 흔들리는 순간, 불안은 부엌을 넘어 사회 전체로 확산된다.


쌀농업은 농촌을 떠받치는 기둥이다. 수익성은 낮고 노동은 고되다. 이 산업을 시장의 논리에만 맡긴다면, 사라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농촌의 공동화는 그 즉시 사회 불균형의 가속페달을 밟는다.


국가는 자문해야 한다. 농촌이 무너져도 외면할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생산 기반을 지켜낼 것인가. 쌀의 국가 관리는 단순한 가격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권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 사회적 균형에 대한 정치적 약속이다.


그리고 우리는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약속을 우리는 어디까지, 또 언제까지 지킬 의지가 있는가.


양곡법의 등장 —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근거


이 질문에 대해 일본은 ‘양곡법’이라는 방식으로 응답했다.


전후, 일본은 식량난에 직면했다. 국가는 직접 쌀을 전량 매입하고, 배급하는 식량관리제도를 시행했다. 그러나 1995년,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이 제도는 폐기되었고, 양곡법이라는 새 틀이 도입되었다.


양곡법은 시장주의와 국가개입 사이의 절충안이었다. 평시에는 시장가격을 인정하지만, 공급에 문제가 생기거나 가격이 급등할 경우, 정부가 비축미를 방출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시장은 자유롭게 움직이되, 위기 시 개입할 수 있는 손잡이는 남겨두었다. 그것이 바로 식량안보의 ‘최소한’이었다. 완전한 시장이 항상 안전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통찰이었다.


일본 쌀 부족 사태의 현상과 본질


그러나 이번 쌀 부족 사태는 이 마지막 손잡이마저 놓쳐버린 결과였다.


첫째, 감반(減反) 정책의 부메랑이 날아들었다. 1970년대 이후, 일본 정부는 쌀 생산을 줄이라는 권고와 함께 보조금을 지급했다. 표면적으로는 가격 안정, 실제로는 자민당의 농촌 기반 강화 전략이었다. 농협(Japan Agricultural Cooperatives,JA)을 통해 농민을 조직하고, 감산 보조금으로 정치적 충성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생산 기반은 점차 약화되었다. 쌀 재배 면적은 절반으로 줄었고, 농민 평균 연령은 70세를 넘었다.


둘째, 예고된 위기 "기후변화"가 현실이 되었다. 2023년과 2024년의 기록적 폭염은 수확량을 줄이고 품질을 떨어뜨렸다. 대표 품종인 고시히카리는 고온에 약하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품종 개량과 기술 개발은 뒷걸음쳤다.


셋째, 수요 예측 실패가 상황을 악화시켰다. 외식 수요는 관광객 급증으로 폭발했지만, 정부의 수급 계획은 이를 예측하지 못했다. 연간 수요 추정치는 25만 톤이나 빗나갔고, 시장은 부족 사태에 직면했다.


넷째, 유통 구조의 변화는 통계를 무력화시켰다. 농협 중심의 유통이 줄고 직거래가 늘면서, 정부 통계는 실제 흐름을 반영하지 못했다. 일부는 투기세력을 지목했지만, 정황은 있었을 뿐 증거는 없었다.


다섯째, 정부의 대응은 너무 느렸다. 비축미를 제때 방출하지 못해, 가격은 두 배 가까이 치솟았다. 슈퍼마켓은 구매를 제한했고, 소비자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농민은 가격 하락을 우려해 출하를 미뤘고, 정부는 사태를 뒤쫓기에 바빴다. 시장은 신뢰를 잃었고, 정부는 지도력을 상실했다.


문제는 단지 쌀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위기 대응 체계 전반이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에 주는 시사점 — 반복할 것인가, 반성할 것인가


이 사태는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지난 10년간 논 면적이 16.7%나 줄었다. (통계청, 2024년 경지면적조사) 일본보다 더 급격한 축소다. 그리고 그 논리는 닮아 있다. “쌀이 남는다”는 구호 아래, 조용히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기후위기가 일상화된 시대다. 이런 감산 기조가 과연 지속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는가. 쌀 가격은 시장에 맡긴다면서, 농촌이 붕괴하면 보조금으로 간신히 버티게 하는 구조는 얼마나 지속 가능한가.


정부는 시장의 자율을 말하지만, 위기 때마다 비축미로 개입한다. 그러나 개입은 늘 늦고, 무딘 도구처럼 작동하며, 국민의 신뢰를 만들지 못한다.


쌀 문제는 결국 시장의 실패를 넘어 국가의 책임으로 귀결된다. 식량안보란 장기적인 생산 기반 위에서만 성립한다.


기후변화에 맞서는 품종 개발, 수요를 꿰뚫는 예측력, 왜곡되지 않는 유통 통계, 효율적인 비축 운영. 이 모든 것은 가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준비다.


쌀은 아직 우리 밥상 위에 있다. 그러나 그 안보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반성할 것인가.

지금의 선택이, 미래의 식탁을 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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