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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문학자였던 사람 Nov 19. 2024

상해천문박물관에서 만난 과학혁명

상하이천문박물관에서 만난 과학혁명 주인공들

1. 대학원생 시절이었다. 문화와 예술에는 문외한이던 내가 예술의전당에 스스로 찾아간 적이 두 차례 있었다. 한 번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미술품 진품이 오는 때였고, 다른 한 번은 세계의 값진 보석을 전시한 경우였다. 당시에는 내가 왜 그 전시에 이끌려 갔을까에 대해 깊이 고민해 보지 않았다. 이후 과학관에 근무하면서, 내가 그 전시의 가치에 이끌려 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과학분야에서는 우리가 사람들에게 보여줄 만한 가치 있는 과학 유물 진품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도 알았다.


현대에서 과학은 동서를 막론하고 신뢰를 의미하는 단어로 쓰인다. "과학적으로"는 흔히 그냥 믿어도 된다는 의미의 수식어로 쓰인다. 현대 인류의 과학에 대한 이런 깊은 신뢰에 비해, 우리는 한반도 역사가 현대과학에 기여한 바를 찾기 어렵다메이지유신 이전 일본, 청나라 이전 중국도 마찬가지다. 과학은 16세기 후반과 17세기 유럽에서 시민혁명, 종교혁명과 유사한 시기에 있었던 과학혁명을 통해 인류에게 알려졌고, 이것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의 출발점이었다. 천문학은 그 중심에 있었다. 지금 교과서에 있는 천문학은 유럽에서 온 것들이고, 현대의 우리는 옛 우리 천문학이 발전한 결과가 아니라 해방 이후 서양으로부터 배워온 천문학을 알고 있다.


2. 유물 진품이 어떻게 가치가 있을까. 예를 들어 돌이 하나 있다고 하자. 이 돌은 1억 년 전에 생겼을 수도 있고, 10억 년 전 만들어져 지구 깊숙한 곳에 묻혀 있다가 겨우 1천 년 전에 세상 밖으로 나왔을 수도 있다. 수많은 돌들이 각자의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관심 없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런데 돌이 달에서 온 월석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돌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온다. 별거 아닌 돌 하나를 사람들이 에워쌀 것이다. 그 중 일부는 이런 돌이 흔하게 펼쳐져 있는 달 표면을 상상한다. 달 표면에서 이 돌을 수집해 지구로 가져오는 우주비행사가 된 자신을 상상할 수도 있다. 누가, 언제 가져온 돌인지 알아보고, 그 우주탐험(아폴로계획)에 대해 위키를 찾아본다. 이 돌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물리적 영향도 미치지 못함에도, 이 돌 앞에 선 사람들 중 일부는 이미 달 표면을 여행하고 있다. 헤임달이 아스가르드행 비프로스트를 열듯, 돌은 달 표면으로 향하는 포탈을 연다.

아스가르드로 향하는 비프로스트 

달이 아니라 과거로 가는 방법도 있다. 뉴턴의 시대로 여행하려면 런던을 방문하면 된다. 갈릴레오의 교회를 상대로 한 외로운 싸움의 흔적은 피렌체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북부에 모여 있다. 아름다운 원으로 우주를 그려내려 했던 코페르니쿠스의 시대를 폴란드에서 볼 수 있다. 인류 최고의 맨눈 관측 천문학자 티코와 행성 궤도의 비밀을 최초로 밝혀낸 케플러를 독일, 체코, 오스트리아에서 찾을 수 있다. 각각의 흔적에서 우리는 그 시대로 잠시 다녀올 수 있다. 유럽에 살고 있다면 틈틈이 이 흔적을 돌아볼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사람이 이 흔적을 모두 돌아보기는 매우 어렵다.


과학관에 근무하는 동안 언젠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직접 만들고 사용한 망원경을 전시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어려운 일인 것을 알지만, 언젠가 한 번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놓지 않고 싶었다. 인류가 (거의)최초로 달을 본 망원경이자 인류가 과학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갈릴레오 갈릴레이와 함께하는 순간으로 사람들을 여행 보내는 꿈을 꿨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역사이기 때문에 필요한 여행이다. 


그런데, 이런게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3. 지난 11월 14일, 15일 상하이천문박물관(Shanghai Astronomy Museum)에서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하여, 우리나라 대중천문대의 25년간의 성과를 간단히 소개하고 돌아왔다. 그들은 2021년에 개관한 자신들의 전시관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국제 심포지엄의 숨은 목적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던 것으로, 뭔가 자랑할만한 것이 있을 것이란 내 예상이 적중했다. 큰 전시관이나 새로운 시설이 아닐까 기대했지만, 꽤 놀랄만한 것을 수집해서 전시하고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뉴턴의 '광학' 1쇄본이다. 


상하이 천문박물관에서 보유하고 있는 뉴턴의 <광학> 제1쇄본에 있는 뉴턴이 작도한 그림


비행기 일정상 가이드투어 참여가 다소 늦어 일행을 뒤늦게 쫓아갔더니 막 도착한 참이라 설명을 못 들었는데, 왜 비닐에 쌓여있는지, 혹시 진짜를 수집한 것인지 물어보았다. 진짜다. 옥션에서 사 왔다고 한다. 지금도 옥션을 두리번거리고 있다고 한다. 


뉴턴의 프린키피아 1729년 인쇄본. 초판은 1687년이지만, 영문판 초판이 1728년이니 꽤 빠른 인쇄본이다.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1687년 초판본이 라틴어였다. 영문 초판은 1728년에 출판됐다. 위 사진이 1729년인걸 보니 영문 초판본하고 사실상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이 책은 만유인력의법칙을 세상에 소개한 책이다. 코페르니쿠스에서 시작된 과학혁명의 마침표를 찍은 책이고, 근대 과학의 시작을 연 책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레데우스 눈치우스> 1744년 인쇄본. 초판이 1610년이니 144년 후의 판본이다. 더 이른 판본은 아직 구하지 못한 듯 하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레데우스 눈치우스>는 1610년에 초판본이 발행됐다. 아마 당시에는 상당히 충격적인 책이었을 것이다. 달 표면이 매끈하기는커녕 울퉁불퉁하는 것과 지구가 아닌 목성을 도는 천체가 있다는 것을 스케치로 그려냈다. 사실 태양계의 행성들이 태양을 중심으로 타원궤도 운동을 한다는 것은 케플러가 이미 1년 전인 1609년에 <신천문학>을 출판해서 설명했다. 그러나 케플러의 책은 글자와 숫자가 난무하는 600페이지짜리 책인 반면,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시레데우스 눈치우스>는 보는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그려냈기에, 당시 사회에서 반응이 즉시 올 수밖에 없었다. 상하이천문박물관에서도 목성 위성의 위치 변화를 그려낸 페이지를 펼쳐놓고 있다. 국내에도 번역서가 있다. 제목은 <갈릴레오가 들려주는 별이야기>. 


<시레데우스 눈치우스>에는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목성을 보고 놀란 일화가 담겨져 있다. 당시의 지구중심 우주관에서는 토성 바깥은 움직이지 않는 붙박이별이었다. 어느 날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달이 아니라 목성을 보니, 신기하게도 목성 주변에 일렬로 늘어선 붙박이별들이 있었다. 재미있는 우연이었겠지만 며칠 후 그 붙박이별들은 제자리에 있고 목성은 움직였을 것이다. 그래서 며칠 후 다시 보았는데, 그 붙박이별들이 목성을 따라 이동했을 뿐 아니라, 숫자도 달라져 있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목성과 더이상 붙박이별이 아닌 붙박이 별들을 계속 관찰하며 상대적인 위치를 스케치했고, 목성의 위성(갈릴레오는 목성의 달이라고 적었다)을 발견했다. 위 사진은 바로 목성과 위성의 상대적인 움직임을 그린 페이지를 보여주고 있다.


티코 브라헤의 1588년 책(Second Book About Recent Phenomena in the Celestial World) 1610년 본, 그의 우주세계가 그려진 페이지

티코 브라헤는 케플러법칙의 기반이 되는 정밀한 관측자료를 방대하게 수집한 관측천문학자이다. 케플러의 티코의 관측 정밀도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케플러의 법칙은 세상에 늦게 나와야 했을 것이고, 현대인의 삶도 지금보다는 덜 발전된 기술에 의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는 케플러가 티코의 관측 정밀도에 대한 아마도(필자의 추측으로는) 병적인 집착을 직접 보았기에 가능한 신뢰이지 않았을까? 위 사진은 티코 브라헤의 우주관인, 지구를 달과 태양이 공전하고 그 외 모든 다른 행성은 태양을 공전한다는 것을 나타낸 페이지이다.


티코의 모형은 지금 보기에는 다소 이상한데, 티코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지구가 태양을 돈다면 지구의 움직임으로 발생하는 연주시차가 관측돼야 하지만, 당시 기준 인류 역사상 가장 정밀한 관측자인 티코의 관측 결과 연주시차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티코의 관측 정밀도는 각으로 2분 정도인데, 가장 가까운 별의 연주시차는 1초(1/60분)가 채 안되기에 어차피 관측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우주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티코 입장에서는 저런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구와 태양의 상대적인 기준만 바꾸면 현재 우리가 알고있는 태양계의 모습과 같아진다. 그래서 티코의 모형으로도 태양계 행성이 보이는 관측적인 움직임을 재현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티코의 책은 국내 번역서가 없다. 아마도 티코의 우주모형이 자세히 알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케플러의 <루돌프 표> 1627년 초판본. 

케플러의 책 초판본이라니! <신 천문학> (케플러 제1, 제2법칙을 설명한 책, 1609)이나 <세계의 조화> (케플러 제3법칙을 설명한 책, 1619)이 아닌 것은 다소 아쉽지만, 상하이천문박물관은 아마도 이 책들을 구하기 위해 지금도 옥션을 뒤지고 있을 것이다. 케플러의 책들은 대중서로 번역하기 어렵다. 그림보다는 글자가 많고, 글자는 묘사보다는 숫자를 설명하는 용도이기 때문이다. 



상하이천문박물관 관계자는 책들을 수집하는 이유가 상하이천문박물관이 박물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서적 외 다른 수집품으로는 운석이 있었다. 중국의 기초과학이 강한 이유는 중국의 경제력과 인구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 기술기반 사회의 시작점인 과학의 발견, 우리가 가지지 못한 서양 문화권이 선점한 바로 그 지점을 중국 사람들이 인지할 수 있게끔 하는 중요한 수집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망원경은 경매에서 구할 수 없어도, 동시대 출판된 서적 중 일부 개인소유의 것은 개인의 사후 경매시장에 나오기에 언젠가는 수집 가능하다. 상하이천문과학관은 그들이 구할 수 있는 것 중 최선의 수집을 하고 있었다. 내가 만일 과학관에 계속 있었다면, '우리도 저런거 갖게 해 주세요'라고 말해봤을 것이다.


이 수집품들을 보기 위한 목적 만으로도 상하이 방문 일정에 천문박물관을 추가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 책들을 통해 우리가 300~400년 전, 인류가 과학을 이제 막 깨우쳐갈 무렵으로 여행할 수 있다. 특히 고대의 과학과 현대의 과학이 단절돼 있는 동양에 반드시 필요한 수집이고, 중요한 경험을 마련해 주는 여행이 될 것이다.   

상하이 천문박물관의 수집품 도록: 왼쪽이 서적, 오른쪽이 운석



상하이천문박물관(Shanghai Astronomy Museum)은 상하이의 남동쪽 끝 지역인 디쉬호(Dishui Lake) 인근에 있다. 구글맵에서는 Shanghai Planetarium으로 표시되는데, 과거 이 이름을 사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찾아갈 때 휴대폰 지도가 가리키는 방향이 Dishui 호 인근에 있는지 여부를 잘 확인하고 가야 한다. 푸동공항에서는 가기 편리한데, 상하이 시내 중심지역에서는 다소 멀다. 하루 날 잡고 가야 한다. 주변에 박물관이 한두개 더 있고 호텔도 편리해서, 하루 정도 이 지역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추천한다. 


실제로 현지에서는 중국 대중교통 정보 지원이 되지 않는 구글맵을 쓸 일이 없으나, 브런치에 첨부하기 편리해서 여기서는 구글맵에서 캡쳐한 그림을 첨부한다.

푸동공항에서 상하이천문박물관으로 차량 소요시간(구글맵)


P.S. 추천도서: 아무도 읽지 않은 책, 오언 깅거리치 저, 장석봉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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