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면 안 됩니다"

AI가 대신 읽고 써 줄 시대

1. "길면 안 됩니다."

지난 주 회의 도중 내가 꺼냈던 얘기다. 한 눈에 띄어야 하고, 짧아야 하고, 무엇을 하는 서비스인지 머릿속에 즉시 인식되어야 한다. 길게 쓸 필요가 하나도 없다. 길면 안 읽고 넘어간다.


이 말을 꺼낸 날부터 오늘까지 몰려드는 불안감이 하나 있다.


2. 인류의 역사는 문자와 글의 역사다.

사람은 생후 최소 10~20년의 긴 수련기간동안 문자를 통해 소통하고, 일하며, 그 기록을 남기는 연습을 한다. 인류사회가 문자로 소통하기 때문이다. 법치는 시민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전제조건으로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교육이다. 글자로 기록된 법을 읽고 이해할 수 없을 때에는 법 외에도 사회에 많은 보조수단이 필수였는데, 이를테면 종교같은 것이다.


현대의 기술기반 사회가 성장하게 된 중요한 계기도 결국 문자와 글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술 발전에 밑거름인 과학은 16세기말에서 17세기말에 걸친 과학혁명에서 시작되었다. 왜 하필 그 때 과학혁명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여러가지 접근이 가능하겠지만, 그 중 중요한 것으로 유럽 인쇄술의 발달이 있다. 지식이 문자화되어 전파되는 것이 훨씬 쉬워진 그 때 인류는 과학이라는 수단을 손에 넣었고,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현대뿐만 아니라 과거 인류의 역사도 문자와 글의 역사다. 인류는 선사시대를 알기 어려운 것도 글자로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류가 사회를 형성한 것은 농경의 시작으로 기원전 약 1만년쯤 전이지만, 현재의 우리가 알고 있는 인류는 교과서에서 배운 문명의 시작인 기원전 2천, 3천년전 쯤 부터이다. 글자로 새겨진 역사이기 때문이다.


3. AI가 글을 대신 읽고 써 주는 시대

틱톡, 유튜브 쇼츠 같이 점점 짧은 소통을 원하는 시대에 긴 책을 읽어서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비효율적이 되었다. 이제 PDF를 AI에게 주면 손쉽게 요약해 주고, 책의 요지를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책의 내용을 곱씹어보고, 저자가 왜 이 부분에 이런 표현을 사용했을지 고민해 보는 과정은 생략된다. 요점만 간단히 남는 시대다.


이제 웹에서 AI가 쓴 글을 피할 수 없어졌다. SNS의 AI들은 점점 정교해지며 사람과 구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심지어 과거에는 문장, 단어마다 고민끝에 결정했을 학술논문조차 AI가 쓴 문장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4. 사람 대신 AI가 글을 읽고 쓰는 세상에 대한 우려

인류의 역사와 문명이 문자와 글을 바탕으로 발전해 왔는데 이제 AI가 그 자리를 점점 대체하고 있다. 어느 순간 사람이 긁을 읽고 쓰는 것을 완전히 멈추고, 사람의 개인비서 AI가 글을 대신 읽고 써 준다면, 이후의 문명은 인류의 문명일까 AI의 문명일까? 마치 사람의 것인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기계가 원래 자신이 만든 것이라며 가져가려는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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