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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우림 Aug 16. 2024

겪어보지 않았으면 절대 모를 일

(이 글의 앞부분은 작년 7월 중순에 썼습니다.)


아주 최근 나는 꽤 '큰일'을 치러내고 있다. 

나로서는 정말 큰일이다. 

아직 '치러내고' 있는 중인 탓에 이 글을 쓰면서도 분노, 불면, 만사 짜증을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다.


집 천장에서 물이 샌다. 

한 십 년 즈음 산 집이라면 그럭저럭 넘어갈 수도 있겠으나 

이곳에서 산 게 이제 년, 첫 '자가'이며, 몇 년은 살 생각으로 

도배, 장판, 창틀, 하다못해 타일 하나하나 다 새로 고쳐 들어왔기 때문에, 

결코 그럭저럭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시작은 주방 냉장고 자리 바로 위 천장부터였다.

처음에는 물 얼룩 색도 옅고 크기도 작았는데, 아침저녁 볼 때마다  모양, 크기 등등 

정말 시시각각으로 엉망이 되어가고 있는 꼴을 뜬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지금은 한 팔 너비즈음 되는 구간이 온통 진흙 색 얼룩인데 아주 볼 만하다.

문제는 그 얼룩이 천장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진흙물이 몰딩과 주방 타일을 타고 내려오는 광경을 마주한 어느 저녁 나는,

만화에서처럼 헉, 소리를 먼저 내질렀고 아니야, 아니지? 설마, 하다 이내 좌절감에 고개를 내저었다.


당연히 가만히 있진 않았다.

처음 얼룩을 발견하고 바로 다음 날 관리사무실에 전화해서 윗집 확인을 요청했다. 아주 정중하게.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가도 소식이 없다. 

다시 전화하니 윗집 사람이 없어 확인이 어렵다,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좀 기다리세요." 

아니, 그런 상황이면 먼저 전화를 해주어야 하지 않나?

상황이 이렇다, 저렇다 설명해야 하는 게 맞지.

전화해서 따져 물어보니 그제야 하는 말이 기다려라?

이틀 기다렸는데 또 기다려요? 


그런 사이 물 자국은 점점 번져갔다. 

이를 지켜보는 나는 우리 집 천장만큼이나 마음 한구석이 얼룩지고 녹이 슬고 곰팡이가 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 주 토요일 아침에는 아홉 시 맞춰 관리사무실 문을 매우 박력 있게 밀고 들어가선 

한바탕 씨름을 하고 나오기도 했다. 말은 정중하게, 하지만 눈으로는 매우 심한 욕을 하며.

그럼에도 또 돌아오는 말은 


"오늘 한 번 더 가볼게요. 그런데요. 

우리 입장에선 윗집한테 누수 지점을 찾아봐라, 마라, 강제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윗집에 사는 분은 세입자이고 멀리 사는 소유자와 연락을 해야 한다,

세입자는 집을 비울 때가 잦고, 집 주인되는 분은 전화를 받질 않는다, 

그쪽 집에 물이 새는 건 유감인데, 뭘 더 어떻게 할 수 있나. 

듣다 보면 결국 같은 말의 반복이다. 

아무튼, 기다려라.


그건 알겠는데, 하, 참. 

그럼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나요?

집 천장에 물이 새고 있는데요? 




그날부터 이틀 내내 큰 비가 왔다.

나는 주말마다 아버지, 어머니 댁에 가서 머물다 오기 때문에, 

집 누수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 어머니 댁에 머무는 그 이틀 동안 별별 생각을 다 했다.  

물이 뚝뚝 떨어져선 냉장고며 주변 가구며 다 망가져 있으면 어떡하지? 

그럼 윗집에 쫓아 올라가야 하나? 아니면 정말 내용증명을 해서 민사 소송 시늉이라도? 

그렇게 하다 해코지당하면? 


일요일 저녁, 집에 도착하자마자 천장부터 살펴봤다.

이틀 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은 듯, 달라졌다 해도 아주 조금 얼룩이 번진 수준, 다행이다.

하지만 관리사무실 측에서는 어떤 연락도 없다. 감감무소식.

윗집에 다녀왔음 다녀왔다, 집주인과 전화통화 했다, 연락이 닿지 않아 계속 시도하고 있다,

되든 안 되든, 진척상황을 알려줘야 하지 않나.

더는 참을 수 없다. 직접 나설 수밖에.


나는 나름대로 '예를 갖춰' 장문의 편지를 썼다. 

컴퓨터를 켜고 한글을 열어 언제부터 이런 일이 있어왔고, 그간 어떤 조치를 요청했고,

지금 어떤 점이 염려되며, 따라서 이런 조치를 해주길 바란다,라는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그 아래에는 표를 만들어 사진도 두 장 첨부했다.

마지막 즈음에는 이렇게 썼다.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빠른 연락 바랍니다.'

몇 번 검토 후 컬러 인쇄했다. 그날 저녁 나는 편지 봉투에 넣어 윗집 현관문에 붙여놓고 왔다.

만일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되면 정말 이판사판이다. 




여기에서 나는 한 가지 고백한다.

사실 지난 십 년간 사회복지 현장에서 '상상 초월' 주거 환경을 자주 봐왔던 탓에,

누수는 그렇게 큰일이 아니었다.

이때 '상상 초월'이라 하면, 

예를 들어 집안 정리가 잘 되지 않아 쓸고 닦고 소독하고 분리수거하는 데에 

여러 사람(이때는 비전문가 몇 사람만 있어도 된다. 사회복지사 한두 명, 자원봉사자 한두 분정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수준에서부터,

(정리정돈 차원을 넘어) 바깥에서 가지고 들어온 고철, 고물이 집안을 가득 메워 

한 사람 누울 만큼 공간만 딱 남는 집, 매스컴에서는 '쓰레기집' '수집증'과 같은 말로 표현한다마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면 그렇게 자극적인 제목을 굳이 써야 할 필요가 과연 있을까, 

싶다. 


이런 집은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춥다. 

집에 오 분, 십 분 앉아 있으려 치면, 여름에는 온몸이 땀에 젖고 겨울에는 손끝발끝이 꽝꽝 언다. 

집 안과 밖의 차이가 거의 없다 싶은, 아니, '차라리 밖이 낫다' 싶은 집도 많다.


한 당사자 분은 상가 건물 이층을 주거공간으로 고쳐 살고 있었는데 

보일러는 비용 부담으로 진작에 봉인했고 침대 아래 전기 매트와 '연탄난로'로 

정말 '얼어 죽지 않을'만큼만 난방을 했다.

연탄난로 옆은 까만 새 연탄과 이미 하얗게 탄 헌(?) 연탄이 차곡차곡 쌓여있었으며,   

때문에 거실과 안방, 침구와 식기손발 닿는 곳은 어디에나 까맣고 하얀 연탄 재 천지였다.

연탄이란 걸 마지막으로 본 게 십몇 년은 된 것 같은데, 

이를 땔감으로 쓰는 연탄난로를 당사자 사는 집 한복판에서 다시 마주했단 사실이 

처음에는 영 낯설고 이상했다.


첫 방문 날, 사실 집 현관에서 살짝 고민했다. 

운동화를 벗고 들어가야 하나, 신고 들어가야 하나.

처음에는 '사람 사는 집'인데 싶어, 운동화를 벗고 들었갔다. 양말이야 뭐, 갈아 신으면 되지. 

이를 본 당사자는 다음에는 운동화 신고 들어오라 했다. 

그래서 그다음부턴 그렇게 하긴 했는데, 이게 참, 불편했다. 

참고로 당시 나는 난방비 지원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기에, 

백장의 연탄을 사서 거실과 복도에 새 연탄을 쌓아 놓고 왔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맞나, 싶다. 

집을 옮기거나 주거 환경을 조금 쾌적하게 고치거나, 조금 더 근본적인 도움을 드릴 순 없었을까?


도농복합지역에서 일할 때는 어느 동을 기점으로 '아파트'라는 게 아예 없다. 

조금 더 들어가면 '빌라'도 없다.

 중턱에 있는 간이 주택, 논 한구석에 있는 비닐하우스, 

군사경계지역 넘어 있는 백 년 즈음된 목조주택과 컨테이너 상자, 이곳에도 사람이 산다. 

특히, 군사경계지역을 넘을 때는 매번 몇 가지 절차를 지켜야 했다. 

먼저 초소에 있는 군인을 만나 인사하고 무슨 조서 같은 걸 한참 쓰고, 구두로 소속과 방문 목적, 소요시간 따위를 설명해야 하는데, 어떨 때는 조서 쓰는 시간이 당사자 만나 뵙는 시간보다 더 걸릴 때도 있다.

가끔 복귀가 늦어지는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같은 부서 동료는 

"최 선생님, 들어와요? 월북은 아니지?"라며, 비실비실 웃곤 했다. 

이는 시절 우리만의 유머 코드였다.


그리고 때는 칠팔 년 전,큰 비가 잦던 어느 여름, 

그날 역시 경계 너머 두 어르신을 만나 뵈러 갔었는데, 세상에.

목조주택 지붕이 큰 바람에 날아가선, 무슨 만화의 한 장면처럼 지붕 한가운데가 움푹하게 파여있는 장면과 마주하고 만 것이었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이 씨 어르신을 만난 나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 한참을 같이 발 동동하다, 

이내 정신을 바짝 차렸다. 어떡하지, 다음 날은 공휴일인데. 아니, 오늘 저녁부터 큰비가 온다 했어.

가만히 있을 틈이 없다. 

나는 그 길로 차를 돌려 군사경계지역을 다시 넘어, 관할 구청과 여러 유관 기관에 찾아가서 사정사정했고,

다행히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그날 저녁 바로 지붕을 보수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아휴.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그 바로 옆집 컨테이너는 베트남전쟁 참전 군인이며 고엽제 피해자, 김 씨 어르신 댁이었다.  

김 씨 어르신은 그 작은 상자 안 바닥에 이불이란 이불은 모두 꺼내 꼼꼼히 빈틈없이 깔아 두었는데

이유를 물어보니, 고엽제 후유증으로 의식을 잃고 기절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라 했다.

어르신의 삶은 그 작은 상자 안이 전부였다. 

사람도 싫다, 어디 가는 것도 귀찮다, 그냥 이렇게 살다 말지, 뭐. 

그런 어르신을 만나 뵙는 사회사업가로서 나는 어르신의 삶의 반경이 조금 더 넓어지길, 

꼭꼭 걸어 잠근 마음의 문에 아주 약간의 틈이라도 벌어지길, 

그 틈 사이로 새로운 관계가 스며들길, 그래서 조금 덜 외롭길, 간절히 소망했다.


물론 섣불리 다가가진 않았다.

관계가 먼저라고 생각했다. 천천히, 조금씩 다가가자.

그해 여름 내내 매주 찾아뵙고 얼굴 비추었고, 한 주 동안 드실 반찬을 전달했고,

나름대로 살갑게 다가가려 노력했다. 그해에도, 그다음 해에도.


하지만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나는 결국 어르신 집안으로 단 한 발자국도 들일 수 없었다. 




아무튼, 그간 경험했던 주거 '문제'의 수준이 이렇다 보니, 

그래서 '누수'는 아주 간단한 문제라고 치부했다.

물 새는 곳을 찾아 막고 도배 좀 다시 하고, 그럼 되지.


겪어보지 않았으면 절대 모를 일, 얼룩진 천장 아래 사는 '고통'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남의 집' 천장이 아닌 '나의 집' 천장이 되고 나서야, 피해 '당사자'가 되고 나서야 아주 조금 알게 됐다.

고통 수준이 아니다. '참담'하단 마음마저 든다. 

집에서는 마음 편히 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삼십 년 넘게 살았는데,

물이 새는 천장 탓에 나는, 그간 집을 통해 늘 영위했던 '안전하다' '편안하다' 같은 당연한 감각이 

조각조각 깨지는 듯했다. 


깨진 것은 이런 감각만이 아니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다른 사람 처지에 깊이 이입하는 편이었고 그래서 '공감'에는 나름 자신했다. 

지난 대학 사 년, 현장에서 십 년 동안 말과 글로, 몸으로 배우고 익히고 실천한 바가 적지 않았기에, 

더더욱 자신만만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그간 나름 '주특기'라 생각했던 '공감 능력'에 대해서도 더는 할 말이 없다.

그간 나는 도대체 무엇을 이해하는 '척', 알아듣는 '척', 깊이 마음 쓰는 '척' 해왔던 걸까.

어떡해요, 괜찮아요, 함께 방법을 찾아봐요, 라고 했던 지난 위로, 응원, 지지의 말이 

빈 껍데기 같단 마음마저 든다.




처음 누수를 발견하고부터 지겹도록 들은 말은 "기다려라"였다. 

여기 가서 물어봐도 기다려라, 저기 가서 난리 쳐도 기다려라. 

여기에 덧붙이면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우리 소관이 아니에요." 

피해 당사자만 천불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 말, 너무 익숙하다. 많이 들어 본 말 같다. 

누가 그랬지? 아주 가까운 사람이 한 말 같은데…? 


사회복지 현장에서 나는 너무 쉽게 "기다려라"라고 했다. 물론 완곡하게 표현한다. 

기다려'주세요.' 양해 '부탁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점잖은 말이 더 무섭다. 그 뒤에 실체를 꽁꽁 숨긴 '위계', 

당신은 기다려야 해, 그렇게 해야 옳아, 하는 투, 솔직히 나는 이를 아주 부정하진 못하겠다.

같은 말을 듣는다 할지라도, 지금 나는 '권리' 들먹이며 난리를 치는 입장이고 

현장에서 기다리란 말을 듣는 사람 다수는 그것이 권리일지라도 큰 소리 내지 못함을 알고 있다. 

부끄럽고 염치없지만, 지금이라도 지난날 아무 생각 없이 뱉은 그 말에 사과하고 싶다. 




아주 다행히 엊그제 윗집 주인 되는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 

지금 사는 사람은 세입자, 본인은 타지에 살고 있다 한다. 

누수 사실을 지난 주말에야 알게 됐고 늦게 연락하여 너무 미안하다 했다. 

하…. 이렇게 고마울 수가. 

비록 피해당한 입장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진심으로 사과하고 바로 움직이는 태도가 정말 고마웠다. 

물론 이제 시작이다. 누수 지점을 찾고 윗집 공사, 그리고 우리 집 공사를 완전히 마무리해야 정말 끝이기에 아주 마음 놓기에는 시기상조이다. 

또 경우에 따라 관리 주체와도 싸워야 한다. 이웃 사이 다툼도 빈번하다 하며, 

공용 부분과 전용 부분, 입주자대표회의와 배상책임 등등. 알아야 할 게 너무 많다. 


이런 일을 겪게 되어 매우 언짢은 건 사실이나, 그럼에도 배움이 있다.

앞으로 계속해서 현장에서 마주하게 될, 수도 없이 많은 '상상초월' 주거 환경 앞에 나는, 

비가 들이치고 물이 새고 곰팡이 슬고, 볕과 바람이 들지 않고 벽지, 장판이 찢어지고,

이런 광경과 마주할 때 나는 지난 몇 주간 겪은 고통을 기억하려 한다. 

그곳을 삶터 삼아 살아가는 이와 마주할 때 그분이 겪을 고통과 공포, 

참담하고 슬픈 마음을 조금 더 민감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무조건, 무작정 '기다리세요.' 하기보단 비록 지금 당장 도울 수 있는 게 없다 할지라도 

진심 어린 공감, 그리고 '우리 한번 방법을 찾아봐요.' 하며 바로 움직이는 자세 역시 

더욱 배워야 할 덕목이다.


이 일이 시작되던 무렵부터 아침, 저녁 할 것 없이 계속해서 고통받고 있지만 

그럼에도 큰 배움을 하나 얻었으니 그 걸로서 아주 나쁜 일만은 아닌 듯싶다. 

모쪼록 평화롭게, 가능하면 빠르게 복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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