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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병훈 Jul 30. 2022

프루이트아이고, 허울뿐인 건축

하나 고백을 하자면, 저는 때때로 제 학부가 있는 미국의 미주리(Missouri) 주의 세인트루이스(St. Louis)는 그리 매력적인 도시가 아니라고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북미 야구 리그(MLB)를 좋아하시면 아실 법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과거에 오승환과 김광현이 거쳐갔고, 현재는 유망주 조원빈이 있습니다)의 연고지이고, 버드와이저, 스텔라, 호가든 등의 맥주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맥주계의 재벌 앤하이저부시의 본사가 있는 (이 때문인지 세인트루이스에 수제 맥주 양조장이 꽤나 많습니다) 것을 빼고는 딱히 볼거리가 없는 동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저와 친구들은 학교 일과가 끝나면 시내로 나가기는커녕 보통 캠퍼스에 있거나 홈파티를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방학이나 휴일에는 꼭 가까운 북부의 시카고나 날씨 좋은 서부의 로스앤젤레스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동부의 뉴욕으로 탈출하듯 떠나곤 했습니다. 그래도 세인트루이스는 걸을 수 있는 자연과 공원도 많으며, 야구 경기로 도시가 한층 들썩일 때도 있고, 매력적인 바비큐집과 맥주집이 오순도순 모여있으며 그 특유의 잔잔함과 여유로움으로 사람들을 감싸주곤 했습니다. 저도 그곳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있고요. 하지만 아직은 미국의 주요 대도시라 일컫기엔 사회경제적 기반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그런데 이 도시가 사실 19세기 후반 및 20세기 초반만 해도 당시 가장 큰 도시였던 뉴욕, 시카고, 필라델리아와 더불어 미국의 4대 도시 위상을 가졌었고, 1904년에는 세계박람회(World Fair) 및 하계 올림픽을 동시 주최하여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유치한 미국의 주요 도시였다는 사실을 아십니까(제 학부 운동장이 당시 올림픽 경기장으로 쓰였었고 아직도 입구에 올림픽 마크가 당당히 붙어있습니다)? 19세기 후반에는 특히 제조업 분야와 음악 산업이 발달해서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를 모두 아우르며 활력이 넘치는 도시였습니다. 인구도 미국에서 네 번째로 가장 많은 도시였고요. 그랬던 도시가 왜, 어떻게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발전이 더디게 성장하게 되었는지는 아직도 논란과 연구의 대상입니다. 학계에서는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야기한 사회변화, 산업 구조 변화, 및 도시 재개발 및 도시재생 정책 실패 등의 요소가 더딘 성장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수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이 중에서 도시재생 정책 요인에 집중하고자 하고, 이의 사례를 살피기 위하여 미국 도시 개발사 및 도시재생정책 분야에서 꼭 거론되고, 세인트루이스 쇠퇴의 가장 큰 상징이 된 '프루이트아이고' 프로젝트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프루이트아이고(Pruitt-Igoe)는 미국 연방정부의 보조금을 받아 세인트루이스 시정부가 주도하는 대단위 공공주택단지 개발 프로젝트였습니다. 1949년 미국 연방정부의 주택 정책안이 발표되자 시정부는 시내 북서측에 밀집되어 있는 흑인 저소득층 슬럼지역을 밀어버리고 모더니즘이라는 기치 아래 상징적인 건축물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1951년의 현상설계에서 일본계 미국 건축가인 야마자키 미노루의 안이 당선되었는데요, 이 분은 당시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건축가로 불리는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았었습니다. 르 코르뷔지에는 건축 또한 당시 첨단기계인 자동차를 만들 듯이 현대산업 기술을 이용해야 하며, 건축은 기능에 충실하고 사용하기 편해야 된다는 철학을 주장했었지요 (이 분의 이론에 대한 해석과 비판은 한 책을 써도 부족하고, 또한 이 분의 소위 '반대파'인 제인 제이콥스라는 거장도 있기에 나중에 따로 기회가 있으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선된 야마자키 미노루가 원래 계획한 프루이트아이고는 저층형과 고층형이 혼합되어 있고 지상에는 입주민 커뮤니티 시설과 부대시설, 그리고 녹지면적 또한 많이 포함되어 있었으나, 공사비를 부담하는 연방정부의 개입으로 모두 11층 높이의 중층형으로 건립하는 것으로 계획안이 변경되고 편의시설과 녹지 또한 예산을 이유로 결국 미미하게 계획되었습니다. 결국 1954년에 프루이트아이고는 완공되었으며, 11층 공공아파트 33동에 2,762세대, 12,000여 명의 주민이 이주하기로 계획되었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이 프로젝트가 르 코르뷔지에의 도시철학의 연장선으로 모더니즘의 발현이자 주택단지 설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지요.


슬럼가에 지어진 프루이트아이고 (Source: "The Pruitt-Igoe Myth", 2011)


처음 1954년 입주가 시작되었을 때 열악한 환경의 슬럼에 익숙한 저소득층 입주민들은 새롭고 편리하고 깨끗한 주거시설과 넓은 옥외공간에 크게 만족해했습니다. 하지만 이후 빠르게 몰락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는데요, 당시 1950년대 중반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 및 산업구조가 급격히 변화하면서 도시 교외로의 인구이동이 잦았고, 인근에 경제 및 상업 기반이 없는 프루이트아이고는 거주단지로서의 매력이 떨어졌습니다. 또한 프루이트아이고의 주요 거주자는 극빈층 흑인이었는데요(흑인 비율 98%), 이들에게 있어 삶의 터전이자 놀이터는 집 앞의 거리, 골목, 그 사이사이에 교차되는 공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삶의 방식을 무시하고 사진과 같이 저층 슬럼 단지 옆에 너무나도 반듯하고 정갈한 빌딩 단지로 지었으니, 기존 극빈층의 삶과 커뮤니티와는 단절이 되었지요. 또한 정부는 예산과 복지의 문제로 거주자의 삶을 제한했는데요, 복지 도움을 받고 있는 싱글맘 가구에 성인 남자는 같이 살 수 없었고, 아파트 내에 텔레비전과 전화를 비치하는 것도 금지되었었습니다. 사실상 밥 먹고 자는 것 외엔 아무 의미가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단지의 입주율은 60%를 넘은 적이 없었으며, 1970년에 이르러서는 전체 건물 33개 동 중 27개 동이 빈집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러한 빈 공간들에서는 범죄, 마약거래, 공공기물 파손 등 도시사회의 어두운 병폐들이 퍼지기 시작했는데요, 특히 외부인들이 단지로 침입하여 약탈 등의 범죄를 저질렀지만 외부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 또한 거주민들이 한 행위로 일단락하여 오히려 범죄자 낙인을 찍고 이들을 차별 대우하곤 했습니다. 이런 냉혹한 상황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거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하여 실제로 심각한 범죄를 저지르게 될 수밖에 없게 되는 안타까운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들게 되었지요.


프루이트아이고의 실패 요인은 하나로만 집을 수 없습니다. 세인트루이스가 왜 쇠퇴의 과정을 겪었는지에 대한 주제만큼이나 복잡한 문제이지요. 그래도 저는 이 단락에서 질문하고 싶은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프루이트아이고는 왜 슬럼 구역을 밀어버리고 그곳에 주변 환경과 어울리지도 않고 단절된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고 했는가?


프루이트아이고는 주택 인근에 상업 및 경제 산업 기반 시설을 유치하거나, 또는 그 주변에 주택 단지 개발을 할 계획이 있었는가?


프루이트아이고는 단지에 있는 입주자들을 위한 커뮤니티 시설과 녹지 시설을 예산 문제로 축소하면서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프루이트아이고는 범죄 예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했고, 어떤 점을 방치하였는가?


프루이트아이고를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였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프루이트아이고는 사회경제적 계층 문제인가? 건축 설계의 문제인가? 도시정책의 문제인가?


이에 대한 답은 매우 어렵고, 복잡다단할 것이고, 지금도 알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질문들은 공간기획자라면 장차 있을 공간재생,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운영하면서 스스로 수없이 물어봐야 할 질문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이렇게 실패한 프로젝트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실패하는 요소를 고려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도시재생 프로젝트는 순식간에 도시파괴 프로젝트가 되겠지요.

 

오랫동안의 방치 속에 사실상 폐건물이 된 프루이트아이고는 결국 시정부가 1972년 7월 15일 오후 3시 22분 단지를 발파하면서 완전히 철거되었습니다. 프루이트아이고는 폭파되는 순간만큼은 말 그대로 가치가 없는 공간, 허울뿐인 건축이었습니다.


프루이트아이고 폭파 장면(Source: "The Pruitt Igoe My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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