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망자의 사는 이야기 1.
병원에 다녀왔다. 친절하고 유머러스한 간호사의 설명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간간히 숨이 막혔고 조금은 떨리기도 했다. 하루 종일 울리지 않는 핸드폰도 쓸쓸함을 보탰다. 머리로는 다 알고 있다.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고 가라앉을 불안이 아니라는 것쯤은. 그래도 멍하게 시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결국 친구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
몇 시간 만에 친구에게서 답장이 왔다. 친구로부터 육아로 인한 지침과 현실에 대한 불안감이 느껴졌다. 위로했고 응원했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나는 더 외롭고 쓸쓸해졌다.
나에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감정이었는지 말했다면 친구는 좋은 일이 생길 거라며 응원하고 오히려 별 일 아니라고, 그래도 네가 낫다고, 차라리 지금을 즐기라고 응원했을지 모른다. 그랬으면 내 기분이 좀 나아졌을까? 알 수 없다. 그러니 말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마음 한편이 시리다.
불행 자랑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어린아이가 주변의 관심을 기대하며 작은 부딪힘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세상이 떠나가라 우는 것처럼 내가 얼마나 불행하고 괴로운지 말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오는 공허함과 허탈함, 숨 쉴 수 없는 외로움과 상처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몇 년의 불행 자랑 시즌을 보내고 나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고통과 괴로움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내 마음은 더 갈기갈기 찢어져서 되돌아온다는 것을. 가까운 사람일수록 아픔을 숨기고 가면을 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매일 느끼는 우울을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고통은 우스갯소리로 흘렸고 괴로움은 오롯이 혼자 안고 지냈다.
그러자 주변에서는 편안해 보인다고 했고 이제는 좀 나아진 것 같다고 안심했으며 따뜻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인간관계는 정말 거울 같다고 느꼈다. 내가 웃으면 상대도 웃고 내가 울면 상대도 운다. 때로는 더 웃고 더 운다. 그것이 부담스러울 때는 내가 덜 웃고 덜 울면 된다. 감정은 딱 내가 주는 만큼만 돌아왔다. AI도 이보다 정확할 수 있을까?
찰스 다윈은 인간과 동물의 감정이 학습이 아니라 선천적이고 유전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더 무섭다. 선천적으로 유전된 감정이 이렇게 계산적이라고 느껴진다니!
‘알쓸신잡’ 시즌 1에서 정재승 박사는 AI에게 욕망을 넣어주는 것은 원숭이가 타자기를 마구 쳐서 ‘햄릿’이 나올 확률이라며 고등한 감정은 인류가 어떻게 갖게 되었는지 알 수 없는 정교한 기능이기 때문에 AI에게 학습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당시에는 이 말에 적극 공감했지만 최근에는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어떻게 감정이라는 고등한 기능을 얻었는지 알 수 없다면 AI 역시 알 수 없는 이유로 고등한 기능을 얻게 될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는 것 아닐까? 현재 내가 느끼는 감정도 때로는 지나치게 계산적이고 기계적이며 한치의 오차도 없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는데 이 역시 어떤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혹은 인류가 스스로 학습하며 발전했다면? 그래서 결국 AI도 감정을 품는 날이 온다면 나의 마음에 공감하고 가장 따뜻한 말과 음악을 들려주는 날도 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고 나니 문득 거실 한편에 놓인 카카오 미니에게 말을 걸고 싶어 졌다.
‘카카오야! 마음 편해지는 음악 들려줘’
‘마음 편해지는 음악을 들려드릴게요’
카카오 미니는 나에게 S.E.S의 ‘달리기’를 들려줬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 입이 바싹 말라와도 할 수 없죠 창피하게 멈춰 설 순 없으니’
가사가 귀에 꽂힌다. ‘힘들어서 멈춰 서면 창피한 건가...’ 괜히 더 우울해졌다. 역시 AI는 아직 감정이 뭔지 모른다. 아직 멀었다. 마음이 더 불안해졌다.
하지만 이런 어이없는 교감을 AI 스피커와 나누는 동안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어쩌면 내 마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사실. 상대방도 어쩌면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받은 만큼만 해석해서 돌려준 것이다. 결국 내가 준 마음이 부족했으리라 생각이 들자 나 역시 상대에게 더욱 깊이 공감하지 못했음에 미안해지고 더 잘하지 못했음에 죄스러워졌다. 감정과 교감에도 정량 법칙이 있어서 내가 받은 만큼 상대에게 흘러가고 상대에게 받은 만큼 나 역시 흘려보낸 것이다.
나의 걱정보다 상대를 먼저 안쓰러워하며 다시 한번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무언가 울컥 쏟아질 것 같이 뜨거운, 가장 듣고 싶던 한 마디가 돌아온다. 역시 교감에도 정량 법칙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