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에게 허락된 free 함의 한계

직업인의 일 이야기 1.

by healer

내담자와의 상담 예약 시간이 지났다. 하지만 내담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하루 전 시간과 장소 확인 문자를 보냈음에도 예약 시간 직전까지 온다 간다 연락이 없었다. 오기로 한 시간이 지나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는다. 약간의 짜증을 담아 내담자의 전화번호를 꾹꾹 누르며 문자를 보냈다.

‘상담 시간인데 안 오셔서 전화드렸어요. 코로나 확산 방지 차원에서 전화 상담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연락 부탁드립니다^^’

역시나 답이 없다. 머리가 아프다. 가뜩이나 코로나 이후 강의나 상담이 줄었는데 겨우 잡은 일자리는 상담 인원에 따라 페이를 받기 때문에 내담자가 오지 않으면 나는 돈과 시간을 모두 버려야 한다. 한 번은 6명이 예약을 했는데 당일 아침 3명이 취소를 했고(그중에 2명은 연락도 없었다), 하필이면 결석자들이 한 시간씩 텀을 두고 빠져서 7시간을 투자했음에도 3명에 해당하는 페이만 받은 적도 있다.

물론 이 일이라도 할 수 있어 감사하지만 이런 상황이 오면 내 머릿속은 금세 먹구름으로 가득 찬다. 불안과 걱정의 비를 피하려고 생각이 바쁘게 움직인다. ‘이번 달 대출이자랑 카드값은 어쩌지, 밥을 한동안 더 가볍게 먹어야겠네, 역시 투잡을 해야 하나! 마이너스 통장 연장이 언제 까지더라...’

프리랜서로 근무하면서 ‘시간은 돈’이라는 진리를 온몸으로 느낀다. 소속을 두고 일할 때는 내담자가 오지 않아도 크게 부담이 없었다. 그 시간에 내담자를 위한 자료나 유사 사례를 찾으며 다음 상담을 준비했고 그래도 여유가 있으면 커피를 마시거나 주전부리를 흡입하며 에너지를 충전했다. 때론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행정업무나 상담일지를 정리할 수 있어서 빠른 퇴근이 가능했다. 하지만 프리랜서 상담사로 일하다 보니 내담자가 오지 않으면 나는 일을 했음에도 일을 하지 않은 것이고 상담을 위해 준비한 시간, 내담자 서류 및 상담 일지 정리 등은 근무로 인정받지 못했다. 내담자가 오지 않으면 내가 한 일은 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처음에는 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하고 이 일을 소개해준 대표님에게 전화를 걸어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계약조건이 처음 들었던 것과 다르다는 점(중간에 위탁 업체에서 그나마의 돈 중에 몇 %를 떼어가는 것도 몰랐다), 이 일로 인해 날려버릴 수많은 기회비용에 대해 숨 쉴틈 없이 쏟아냈다. 하지만 대표님의 반응에 분노는 싸그리 사라지고 무력감만 남았다.

‘그런 것 까지 다 생각해서 예산을 짠 것이고 위탁 업체는 당연히 중간에서 운영비를 가져가야 이윤이 남지, 무엇보다 지금 그거라도 해야지 코로나 때문에 일자리도 없는데!’

모두 맞는 말이다. 계약 조건을 제대로 확인 안 한 것은 온전히 내 탓이고 사업 운영기관은 당연히 운영비를 가져가야 회사가 유지된다. 무엇보다 나는 지금 이 일이 아니면 돈을 10원도 벌 수 없다. 예정됐던 강의나 대면 상담은 모두 취소됐고 확진자 수가 늘어날 때마다 기다림의 시간도 늘어간다. 그러니 그나마 정기적으로 나갈 수 있는 일에 감사하고 10시간 일하고 5시간 일 한 만큼 돈을 벌더라도 감수해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프리랜서, 비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한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현실임을 받아들여야 했다.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누군가에게 의존하거나 조직에 희생당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의 강점을 무기로 삶을 개척하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실제로 프리랜서(freelance)란 말은 ‘어떤 영주에게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창기병(槍騎兵)’이란 뜻으로 일정한 보수를 받고 계약한 고용주를 위해 싸우는 중세 서양의 용병단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자신의 무기인 창을 들고 계약기간 동안 열심히 싸운 뒤 더 좋은 계약 조건이 있다면 옮겨갈 수 있는 것이다. 프리랜서를 바라보는 내 눈은 나름 정확했다. 현시대에 무기는 개인의 ‘능력’이고 그 무기가 있어야 프리랜서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구태여 사전을 찾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무기’ 이외에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왜 먼저 떠난 선배들이 프리랜서 시장을 전쟁터, 지옥에 비유했는지 공감했고 내 ‘무기’가 시장에서 절대반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코로나’라는 재난상황을 만나고 보니 선택의 자유마저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코노미스트는 ‘10년 후 세계 인구의 절반이 프리랜서로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긱 경제(gig economy : 산업현장에서 필요에 따라 사람을 구해 임시로 계약을 맺고 일을 맡기는 경제 방식,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형태의 임시직이 급증하고 있음) 성장과 더불어 세계적으로 프리랜서 경제도 성장하고 있다. 특히 페이오니아(payoneer)에서 자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전 세계 150개국 프리랜서 7천 여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20 글로벌 프리랜서 마켓’ 보고서에 따르면 프리랜서의 약 70%가 35세 미만, 21%가 25세 미만으로 젊은 세대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런 프리랜서 근로자를 보호해줄 사회적, 법적 안정장치가 미비하고 시장의 룰도 명확하지 않다. 능력과 콘텐츠 만으로 승부를 보자니 급변하는 시장과 대형 기업, 경쟁자의 견제까지 대응해야 하는 외부환경도 많다.

무엇보다 프리랜서 삶에 대한 만족도는 소득 수준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이 삶의 양면성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프리랜서는 일을 하면 할수록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에 여가 시간이 늘어날수록 근로소득이 줄 수밖에 없다. 금전적 욕구를 줄이고 시간적 여유를 선택해도 자유롭기 어렵다.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지속적 성장이 중요하므로 일 하지 않을 때 자기 계발에 투자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단 도전해 봐!'라는 말이 가장 무섭다. 때론 일단 부딪혀 보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그것은 나의 생계나 목숨을 담보로 걸지 않아도 될 때이다. 나 역시 나와 내 가족의 안위를 책임져야 하는 일이라면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배웠다.

혹시 프리랜서를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상황을 충분히 숙지하고 시장에 뛰어들기를 당부한다. 어떤 재난이 닥쳐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이 있는지, 나의 노동력을 온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정책이나 규제는 어떤 것이 있는지, 불안정한 금전 상황과 불규칙한 시간을 계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시장에 뛰어들어도 늦지 않을 것이다. 프리랜서는 free 하게 보이지만 진정으로 free 하기 참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