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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여자들 Feb 08. 2021

그녀와의 거리

글 쓰는 여자_옹이

그녀를 만난 지 19년이 되어간다. 가족이란 단어를 싫어하는 나는 그녀를 가족같이 생각한다. 허물없이 모든 것들을 나누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곳. 그녀가 있어 지금의 삶이 편안하고 외롭지 않다.


한 달 전쯤 처음으로 수술을 할 만큼 손가락을 다쳤다. 당황한 나는 생각나는 사람이 그녀뿐이었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 또한 당황했는지 가게를 접고 나의 집에 들러 필요한 옷가지와 물품들을 챙겨 바로 가겠다며 나를 안정시켰다. 나를 병원까지 데려다준 동아리 사람들은 나를 혼자 둘 수 없다며, 남편은 언제 오냐며? 연락은 했냐며? 가족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 거라며 가질 않고 내 옆에서 기다렸다. 그런 그들을 괜찮다며 보내려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손 다친 것보다 더 속상했다. 올 가족도, 올 남편도 없는데 그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그 때문에 내 사생활에 관심을 갖고 불쌍히 바라볼 그들의 모습도 보고 싶지 않았다. 응급수술이 끝나고 나와보니 그녀가 와 있었다. 다행히 그녀는 자기가 돌본다며 그들을 보냈다고 했다. 아! 울컥 눈물이 났다. 너무도 놀란 가슴, 다치지 않을 거라 자만했던 내 어리석음, 손가락이 잘 낫지 않아 재수술을 하면 어쩌지? 신경을 다친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 보호자를 찾는 간호사와 보호자의 사인이 필요한 서류들 속에서 어느 누구도 부를 수 없었던 막막함. 그러한 마음들을 들키고 싶지 않아 괜찮아야 했던 내가 그녀를 보자마자 펑펑 울기 시작했다.

“왜 울어? 안 울어도 돼”라며 그녀 또한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몰래몰래 눈물을 훔치며 말하고 있었다.

“내가 너무 가엽다! 부를 사람이 너밖에 없더라!

“그게 뭐 어때서? 괜찮아. 내가 있잖아. 니 몸만 신경 써”

닦아도 닦아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그냥 두었다. 그렇게 한참을 울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한, 믿었던 나의 가족이었다. 너무도 고마웠다. 졸업 꽃다발 예약으로 근 한 달을 밤늦게까지 일해야 했던 그녀는 피곤함과 긴장감으로 눈밑 다크가 볼까지 내려와 있었다. 챙겨야 할 가족이 있는 그녀에게 어서 가라며 늦은 밤 그녀를 보냈다.


이후 그녀는 2주 동안 병원에 한 번도 오지 않았다. 안부전화 2통뿐. 내심 그녀에게 가족의 역할을 기대했었나 보다. 주위 사람들에게 무슨 일 있냐며 물었지만 그녀는 평소와 같게 가게와 집안일에 바쁘다고 했다. 퇴원 날조차도 오지 않은 그녀에게 이젠 서운해지고 화까지 났다.

뻔히 병실에 혼자 있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뻔히 두 손을 못써서 머리 감겨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뻔히 기다릴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뻔히 병실 음식이 물려 힘들어할 것을 알면서도

아중리에서 수병원까지 30분 거리. 나에 대한 맘이 없음을 확인하고도 남을 거리였다.

그녀가 일로 바쁘고 힘들어할 때면 늘 곁에 있어줬는데

하물며 그날 나의 눈물을 보고서도 오지 않은 그녀가 시간이 지날수록 원망스러웠다,  

이러한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아 몸 핑계를 대며 꽃집에 가지 않고 집에만 있었다. 그런 서운함을 눈치 빠른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내 맘이 누그러들 때까지 그녀도 연락하지 않았다.  


이런 원망이 한번 누그러지는 계기가 있었다. 퇴원 후 아들과의 싸움이었다. 내가 가족이라 생각하는 또 다른 한 사람. 퇴원 후에도 손을 쓰지 못하는 나는 아이에게 번번이 부탁을 해야 했다. 청소기 돌려줘~ 설거지해줘~ 빨래 널어줘~ 등. 금요일 오후에 집에 들러 월요일 오전에 기숙사로 돌아가야 하는 아이는 3일 내내 짜증을 냈다.

“내가?” “왜?” “싫어” 등등. 그 말들이 어찌나 가슴에 꽂히던지.

결국 그동안 서운했던 내 감정들이 폭발하고 말았다.


엄마가 처음으로 수술을 하고 아픈데 너는 게임이 그렇게 좋냐?
내 손가락은 안 보이냐?
매일 눈을 떠 손이 나았는지 더 심해졌는지 걱정하는 내 모습은 안 보여?
나도 하고 싶은 게 있었어.
하지만 다쳐서 모든 게 틀어져 집구석에 척박 혀 있는 나는 좋은 줄 알아?
네가 다쳤는데 내가 너처럼 무관심하면 좋겠어?
이게 뭐가 그리 어렵다고 생색이야? 내가 남이야? 


그렇게 소리 지르다 문득 그녀가 생각났다. 하물며 아들도 이런데 그녀에게 원망이라니 가당키나 할까? 서운한 마음은 어쩔 수 없지만 그녀가 남일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잊었구나 싶었다. 내가 이 둘에게 너무 의지하고 기대하고 있었구나 싶어 정신이 번뜩 들었다. 독립적인 삶을 꿈꾸며 그렇게 살고 있다 자신했는데 거리두기가 필요했다. 아이에게도, 그녀에게도. 정 떼기가 아니었다. 다만 인간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랑하는 이 둘을 서운함에 잃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며칠 전 바람 쐬러 진안에 갔다가 지인이 추천한 카페에 들렀다.

그 카페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한 구절이 가슴팍에 훅 치고 들어왔다.

아프지 마.
아프더라도 10분만 세게 아프고 말아.
내가 그 아픔을 남에게 전가하려 든다면 그 사람도 아플 거거든
그가 조금도 아프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자기 아픔을 다 쏟아놓지는 마
애초 앓던 그 사람 아픔은 숨이 막혀 곱절이 돼버리거든. 

- 이병률산문집 '끌림' 중에서

문득 퇴원하기 전 늦은 밤에 걸려온 그녀와의 통화 내용이 생각났다.

“아~ 네가 없으니 힘들어도 술 한잔 할 사람이 없네!"

그때는 ‘조금만 기둘려. 술 한잔 하자~ “라고 말했는데... 

내 아픔이 너무 커서 그녀가 아플 거라 생각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멋대로 그녀를 가족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가족이 내게 했던 그 강요를 그녀에게 하고 있었다.

외롭고 두렵고 무서웠다. 누군가가 필요했다. 도움도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가 삶을 살아내느라 나를 돌보지 않은 것에 대한 탓을 하고 원망한다는 게 너무도 어리석게 느껴졌다. 소중한 사람을 그렇게 잃고 싶지 않았다.

그날 카페에서 나와 바로 그녀의 가게로 향했다. 가게 입구로 들어서니 그녀가 나를 보고 “오랜만이네. 몸은 어때?”라며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나 또한 “괜찮지~”라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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