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 읽은 소설들 ('25년 12월)

by 우주만화가

중고서점에서 제가 팔았던 책을 또 구입해서 읽는 저를 보며 생각했습니다.


'아, 어딘가에 기록을 좀 해두긴 해야겠구나.'


작년 12월에 작성한 글인데, 지금에서야 업로드를 하네요.

밀린 후기들을 빠르게 포스팅한 후, 2월부터는 본격적으로 한 권 한 권 독후감을 써보려고 합니다.



이번 달에는 회사에서 주요 업무에서 쫓겨나는 바람에 시간이 많았습니다.

고과를 잃고 진급은 어두워졌지만, 덕분에 책 읽을 시간이 많이 생겼습니다 만세! 만세!


10권의 소설을 읽었고,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에이모 토올스의 [테이블 포 투]입니다. 가장 재밌게 읽은 장르소설은 쯔진천의 [동트기 힘든 긴 밤]이고요.


1. 타임 셸터 /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 문학동네

2. 지구 끝 날의 요리사 / 요나스 요나손 / 열린책들

3.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 마사키 도시카 / 모로

4. 테이블 포 투 / 에이모 토울스 / 현대문학

5. 아이가 없는 집 / 알렉스 안도릴 / 필름

6. 외계인 자서전 / 마리-헐린 버티노 / 은행나무

7. 피프티 피플 / 정세랑 / 창비

8. 동트기 힘든 긴 밤 / 쯔진천 / 한즈미디어

9.고독한 용의자 / 찬호께이 / 위즈덤하우스

10.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 마치다 소노코 / 모모


1. 타임 셸터 /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 /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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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문학동네 책이자, 불가리아의 국민작가 게오르기 고스포디노프의 소설입니다.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했습니다. 주인공은 게오르긴이라는 미스터리한 인물과 함께 치매 환자들을 위해 과거 (1950년대, 1990년대, 혹은 2차 대전의 세계)의 공간을 모사한 치료실(타임 셸터)을 꾸밉니다. 인지 기능을 상실한 것 것 같던 환자들이 이 치료실 안에서는 정상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런 류의 치료가 유럽 전역에서 인기를 끌게 되면서, 서서히 과거가 현실을 잠식해 가기 시작합니다.

책은 1부와 2부로 나누어집니다. 1부에서는 타임 셸터를 방문한 환자들의 에피소드가 여러 개 소개됩니다. 2부에서는 국민 투표를 통해 현재의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기로 결의한 유럽 국가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불가리아를 중심으로요.

저에게 2부는 너무 어려웠고, 1부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특히 치매로 모든 기억을 잃은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그를 감시했던 비밀경찰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억을 찾는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시자와 감시 대상이었던 두 노인은 이제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세상에서 테이블을 마주 보고 앉아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봅니다.

문장이 미려합니다. 지금도 몇몇 문장들이 떠오릅니다. 그럴 때마다 팔에 소름이 돋습니다. 하지만 쉬운 책은 아닙니다. 저는 후하게 봐서 한 40% 정도 이해한 것 같습니다.


2. 지구 끝 날의 요리사 / 요나스 요나손 /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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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쓴 요나스 요나손의 신작 소설입니다. 스타일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과 대동소이합니다. 그러니까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재미없게 보신 분은 굳이 이 책을 볼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 책을 재밌게 보셨다면… 이 책은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의 열화판이니 굳이 안 보셔도 될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선량하고 요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만, 그 선량함 덕분에 바보로 취급받는 남자입니다. 그의 못된 형은 동생의 전재산을 빼앗고 캠핑카 하나와 함께 그를 집에서 쫓아냅니다. 자신이 쫓겨난지도 모르는 주인공은, 세계 종말이 10일 정도 남았다고 믿는 한 물리학자, 그리고 버튜버 할머니와 함께 세계여행을 떠납니다. 소설에는 푸틴이 나오고, 오바마가 나오고, 반기문이 나오고, 도날드 트럼프도 나옵니다.

이 작가는 세상에서 만담을 제일 잘 쓰는 작가 중 한 명입니다. 여전히 주인공(바보)과 다른 인물들(정상인인척 하는 바보들)의 대화는 재미있고, 코미디의 타율도 높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차라리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한 번 더 보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3. 그날, 너는 무엇을 했는가 / 마사키 도시카 / 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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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의 작품이 엄청나게 많이 번역되고 있습니다. 나오기만 하면 매출 상위권에 포진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부터, 팬덤이 단단하게 뿌리를 내린 요네자와 호노부와 시라이 도모유키까지. 그만큼 독자들의 취향도 까다로워지고 있습니다. 예전과 달리 화려한 수식어를 휘감은 띠지와 함께 출간된다고 전부 목록에 올라가는 것은 아닙니다.

마사키 도시카의 작품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더 찾아 읽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작품만의 매력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트릭이 참신하지 않으니 본격파 미스터리는 아니고, 그렇다고 사회적인 메시지가 들어있는 것도 아니니 사회파 소설도 아닙니다. 그냥 평범한 미스터리입니다. 추천하지 않습니다.


4. 테이블 포 투 / 에이모 토울스 / 현대문학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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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모 토울스는 지금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입니다. 세 편의 장편소설은 전부 7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임에도 대히트를 기록했고, 대표작인 [모스크바의 신사]는 오바마 대통령의 찬사를 받으며 파라마운트에서 드라마 시리즈로 제작되어 방영될 예정입니다. (주인공은 그 시절의 배우 이완 맥그리거이고요!)

에이모 토올스의 장점이라고 하면 역시 치밀한 사전조사에 기반한 사실적이면서도 흡입력 있는 배경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펼쳐지는 서사는 아주 영화적이지요. 무엇보다도 문장이 고급스럽습니다. 문장이 고급스럽다는 평을 듣는 작가들을 보면 글이 난해한 경우가 많은데요, 에이모 토울스는 전혀 아닙니다. 고급스러우면서도 쉽고 친절하지요. 누군가가 ‘파인다이닝’ 같은 소설이 읽고 싶다고 하면, 저는 무조건 에이모 토올스를 추천할 것입니다.

이번 책 [테이블 포 투]에는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6편의 단편 소설과, LA를 배경으로 하는 1 편의 중편 소설이 들어 있습니다. 7편의 이야기 전부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야기는 흥미롭고, 인물은 사랑스러우며, 엔딩은 전부 하나같이 큰 울림을 줍니다. 아직도 첫 단편 [줄서기]의 엔딩에서 느꼈던 감동이 선명하답니다.

저는 대부분의 책을 읽고 바로 팝니다. 그래서 집에 책이 열다섯 권 정도밖에 없는데요, 이 책이 당당히 열여섯 번째 소지품이 되었답니다. 추천합니다.


5. 아이가 없는 집 / 알렉스 안도릴 / 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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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고전 추리극 풍의 소설들이 영상화가 많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나이브스 아웃] 시리즈도 그렇고, 케네스 브레너 주연의 아가사 크리스티 작품들도 그렇지요. [아이가 없는 집]도 넷플릭스에서 영화화가 된다고 하네요. 이 작품도 고전 추리극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스웨덴의 빽빽한 산림 깊숙한 곳에 굴지의 임업 재벌 가문의 상속자들이 살고 있습니다. 회사의 대주주인 페르 귄터는, 자신의 핸드폰에 교살 시체 사진이 찍혀있는 것을 발견하고, 유명 사립탐정 율리아 스타르크에게 사건 해결을 의뢰하게 됩니다.

전통적인 ‘Who done it?’ 스타일의 추리 소설입니다. 동시에 독자들이 북유럽 추리 소설에 기대하는 바를 착실히 충족시켜 줍니다. 뒤틀린 재벌 가문. 비밀을 숨기고 있는 상속자들. 질투. 복수. 추운 겨울밤과 모닥불 앞에서의 추리 쇼. 사건의 전말은 추리 소설 마니아라면 쉽게 추측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한편 주인공 탐정 ‘율리아 스타르크’는 꽤 매력적입니다. 그녀는 미모의 젊은 여성이지만, 얼굴에 긴 흉터가 있으며 한쪽 다리를 접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다른 사람과 피부가 닿는 것을 극도로 혐오합니다. 그녀가 만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전남편인데요, 그는 경찰입니다. 율리아 스타르크는 사건 해결을 위해 전남편을 임시 조수로 고용하여 함께 사건이 일어난 깊은 숲 속으로 떠납니다. 그녀는 사건 해결과 함께 그들의 관계가 복원되기를 기대합니다.

무난한 미스터리이고, 타임 킬링용으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6. 외계인 자서전 / 마리-헐린 버티노 /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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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미국 작가가 쓴 현대 한국 소설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2020년대 우리나라 소설을 비하하는 말로 ‘문창과 소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젊은 작가들 특유의 작풍을 의미하는데요, 하이퍼 리얼리즘이나 오토 픽션 계열의 서사, 사소한 사건도 깊게 받아들이는 감수성, 담담하지만 글밥이 꽤 되는 감정 묘사 등이 그 특징입니다. 마리-헐린 버티노의 [외계인 자서전]도 이런 특징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쪽으로요.

소설은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한 소녀의 인생을 일인칭 시점으로 쭉 따라갑니다.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소녀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가난과, 싱글맘 엄마의 고단함, 작지만 평생 기억에 남을 상실의 경험들을 차근차근 겪어나가며 성인으로 성장합니다.

책의 제목이 [외계인 자서전]인 이유는 주인공 소녀가 본인을 외계인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소녀는 자신을 저 멀리 다른 우주에 있는 존재들로부터 지구를 관찰하기 위해 파견된 존재로 여깁니다. 그래서 팩스로 먼 곳에 있는 동료들에게 지구에 대한 정보를 보내기도 하고, 전 우주적인 외로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서사가 재미있다기보다는, 소녀와 젊은 여성의 관점에서 포착하는 일상의 순간들이 인상적입니다. 이동진 작가가 ‘뛰어난 감수성과 문장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평가하셨네요.


7. 피프티 피플 / 정세랑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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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는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면서 작가로 데뷔를 했습니다. 10년 전에 출판인들이 만든 팟캐스트 [뫼비우스의 띠지]에 정세랑 작가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요, 입담이 너무 좋고 특유의 말투가 재미있어서 아직까지도 기억이 나네요. 그때는 유명하지는 않았었는데, 지금은 수많은 팬들을 거느린 중견작가가 되었습니다. (오타쿠들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군요.)

[피프티 피플]은 말 그대로 50명의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각 인물을 주인공으로 적게는 다섯 페이지, 많게는 10 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이야기들이 펼쳐집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수도권 신도시의 종합 병원이고, 50명의 인물들은 서로 조금씩 삶의 궤적이 겹쳐집니다. 소설의 마지막 챕터에 가면 이 50명의 인물들이 한 공간에서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요, 요게 또 나름대로 보는 쾌감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성별, 나이, 직업, 배경을 가진 50명의 이야기를 이렇게 뚝딱 만들어내다니, 역시 소설가란 인간들은 참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추천합니다.

P.S. 모든 인물들의 이야기에 춤추는 장면이 적어도 한 번씩은 등장합니다. 이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네요.


8. 동트기 힘든 긴 밤 / 쯔진천 / 한즈미디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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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추리 소설입니다.

시체를 트렁크에 담아 운반하려던 남자가 지하철역에서 체포됩니다. 남자는 취조 과정에서 자신이 살인을 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런데 재판이 시작되자마자 남자는 본인의 범죄를 부인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공신력 있는 알리바이까지 제시합니다. 결국 재조사가 진행되고, 그 과정에서 수사관들은 10년 넘게 어둠 속에 묻혀 있던 비밀과 마주하게 됩니다.

재미있습니다. 현대 추리 소설의 외피를 쓴 중국 고전 같은 느낌입니다. 현대 중국이 배경인데도 이상하게 삼국지나 수호지 같은 호방함이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이 옛날 중국 소설에 나오는 ‘호걸’이나 ‘영웅’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본 추리 소설이나 영미권 추리 소설에 싫증이 나신 분들께 추천합니다.


9.고독한 용의자 / 찬호께이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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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호께이는 이제 놓아주어야 하는 것일까요?

[13.67]은 정말 최고였고, [망내인]은 별로였습니다. [고독한 용의자]는 [망내인] 쪽에 가깝습니다.

20년 동안 은둔형 외톨이로 살던 중년 남자가 자살을 합니다. 그리고 그 찬장에서 토막 난 채 보존액에 담겨 보관되어 있는 남녀의 시신이 발견됩니다. 토막 난 시체는 누구일까요? 그리고 20년 동안 방 밖으로 나가지 않았던 남자가 어떻게 살인을 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미스터리는 여기서부터 시작합니다.

설정은 참 흥미로운데요, 사건이 전개되는 방식은 지루합니다. 무엇보다도, 경찰이 너무 무능하게 나옵니다. 너무 바보같이 나와서 몰입을 해칠 정도입니다. 찬호께이 정도 되는 작가가 왜 이렇게 썼는지 궁금할 정도입니다.

비추천입니다.


10.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 마치다 소노코 /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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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 마을에 있는 편의점을 배경으로 한 잔잔한 소설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와 일본에 유행하는 소설 장르 중에 ‘안다무’라는 장르가 있다는데요, ‘안온, 다정, 무해’의 줄임말입니다. ‘안다무’ 해야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 책이 딱 ‘안다무’ 장르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보면 딱 무슨 느낌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 남녀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페로몬을 내뿜는 미남 편의점 점장

- ‘무엇이든 맨’으로 활동하며 마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카리스마 남자

- 편의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인기 만화를 몰래 연재 중인 주부

- 엄마가 만화를 연재하는 것이 불만인 평범한 고등학교 남학생 (사실 인기가 많은데 본인만 모름)

- 우연히 만난 마을 꼬마의 운동회에 함께 나가기 위해 매일 2인3각 달리기 연습을 하는 할아버지

이런 인물들이 마을의 이웃들과 알콩 달콩 사는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는 소설입니다. 말 그대로 무해한 소설입니다. 일본에서는 매우 인기가 많아서 2편, 3편도 나왔다고 하네요. 남자-남자 퀴어 코드도 꽤 들어 있는데요, 아마 이런 설정도 인기를 끄는 데 한몫했을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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