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우리 교육 어디서 멈추었나?
다음글은 교육언론 창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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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로서 고1학년 아이를 키우는 학부모로서 한국사회 교육에 대한 회의감이 든다. 종종 아내와도 교육문제로 갈등하기도 하는데 결국 현실과 이상에 대한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얼마 전 많은 사람들을 안타깝게 만든 서이초등학교 교사 자살한 사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우리 학교가 전쟁터가 되어 누구나 상처받는 구조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자살 사건 비율이 높다고 하니 한국사회 교육 시스템이 얼마나 곪아 있나 실감하게 된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학생인권조례 때문 교권이 실추되어 그렇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이런 주장은 사태의 본질을 벗어난 이야기이고, 대표적 학생과 교사 갈라치기라고 본다.
오히려 원인은 근대화 이전 조선시대 관점과 근대화 시대 전체주의 관점을 벗어나지 못함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선생과 학생들의 불행은 시대가 바뀌었지만 과거의식에 사로잡힌 교육 구조에 따른 비극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남기고자 한다. 그래서 우리는 시대에 대한 구분을 하기 위해 전근대와 근대, 현재로 나누어 시대적 이해를 해보고자 한다.
전 근대는 조선시대 혹은 서구 봉건주의 시대를 말한다. 왕권 중심 신분질서를 인정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계급적 질서가 좌우하는 시대가 봉건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 언어 속에서 직책에 대한 존칭어의 존재는 여전히 우리 내면 속에 봉건주의 혹은 왕권시대 잔재가 남아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는 봉건주의, 신분제 타파의 시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명목상 신분질서는 사라졌다. 하지만 근대의 특징은 식민지 개척에 의한 억압과 착취 구조를 통해 동력을 얻는다.
보통 식민지 시스템과 같은 착취구조를 만들기 위해 나누고 분리하는 구조가 근대에 형성되었으며 근대교육의 특징은 이를 목적으로 만든 차별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1968년 서구사회를 뒤덮은 68 혁명 이후 현재 유럽사회는 근대화로 만들어진 차별 구조를 넘어서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한 차별 없는 사회, 기회균등 사회를 만들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파리 1,2,3 대학과 같은 대학평준화 및 학비 없는 대학등을 통해 누구나 교육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사회 구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어떤가? 그런 변화를 차곡차곡 경험하고 넘어서기에는 아득하기만 하다.
우리 사회는 조선이 패망하고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면서 본질적 가치흐름을 제도 속에 담지 못했다. 비록 경제가 발전하고 과학기술 발전 등 보이는 사회변화는 급속하게 진행되지만 시대전환에 적응 못하도록 맞지 않는 옷을 입은 한국사회는 많은 내적 갈등이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 기득권은 자신들의 견고한 성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 근대화 시대 식민지 제도에서 이어온 교육제도의 폐해를 알고도 유지하려고 하고 있고 한국사회 교육 문제는 심각하다고 인정하지만 바꾸기 어렵다고 방치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어떤 이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누군가는 중세 혹은 과거 속에 산다.
이러한 원인은 시대가 급속히 변화되면서 여전히 많은 이들은 역사적 흐름을 놓친 채 관성에 사로잡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한국의 보수적인 교육계는 현재가 아닌 과거에 있는지 모른다. 특히, 조선시대를 지나 일본제국주의 교육잔재 아래 머물러 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전 근대 시대인 조선시대 스승과 제자 관계는 사제간으로 매우 특별한 관계였다.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고 하던 시절이 있다. 그러나 현재 교육에서 그런 관점을 가지고 있다면 근대화조차 안된 과거 관념교육을 통해 수많은 아이들을 과거 속에서 가두어 시대 부적응을 유도하는 교육을 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한다.
과거 사회는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 : 임금, 스승, 아버지는 한 몸과 같다)라는 일종의 사회 속 계급에 복종 이데올로기 강조 시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근대에 맞는 관념이 아닌 과거의 관념인 것이다.
근대화란 왕과 신하, 스승 등 일종의 전통적 계급 체계를 무너트리고 모두가 평등한 관계 속에서 존중을 기반으로 수평적 소통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민주주의 원리라고 할 수 있고 오늘날 서구 문명을 만든 근원적 힘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왕정 몰락 후 공화정이 만들어진 근본원리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좌익, 우익 개념도 생겼고 여러당에 대한 개념이 나왔고 노동자와 사용자 개념도 나타났다. 적어도 근대화란 구조의 틀 안에서 상호 간 견제구조를 완성하는 데 있다. 그러나 우리는 교사는 스승은 존경받을 대상으로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교권을 위해 학생인권조례를 폐기해야 한다는 헛소리를 한다. 근대화가 안된 사회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를 공적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한국사회 현실이 놀라운 일이다.
본질은 적어도 우리 교육시스템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 존중받는 구조에서 학교는 배움을 추구하며 공동체를 배우는 집단이어야 한다. 비록 학부모가 아무리 사회적 지위가 높다고 해도 이를 막지 못할 정도로 교사 집단 혹은 교육기관이 목소리 내지 못하는 상황이 문제라 할 수 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이 학부모의 갑질이나 괴롭힘이었던 것으로 예상되지만, 교육부 5급 사무관은 교사에게 내 아이는 왕의 DNA가 있으니 잘 다루라는 편지로 압박을 했던 사건에서 보듯 우리는 특권의식이 자리 잡고 있는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특권의식이 인정받는 시대가 전근대적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교사가 학부모에게 잘못된 괴롭힘을 당한다면, 일차적으로 교사 노동조합에서 , 그리고 학교당국에서 교사를 보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 그들은 스승으로서 존경받을 사람이어서 노동조합을 만들면 안 된다고 한다. 그러나 사학재단은 교사를 압박할 수 있지만, 교사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
따라서 최소한 근대화된 관점으로 교육을 다시 정의한다면 교사는 노동자로서 인식을 하고 견제구조를 통해 교육자로서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런 교육자라야 아이들에게 스스로 노동자로서 자율적 의지로 노동을 하고 혁신을 하고 때로는 노사 협상을 하며 공동체에 기여하는 합리적 민주시민으로 키울 수 있다.
서이초등학교 교사가 자살로 삶을 마감할 정도로 한국사회 교육은 치열하게 부모가 아이를 놓고 가진 기득권을 유지하도록 만들려는 전쟁터라고 봐야 한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교육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 교사 간 긴장도가 높은 갈등 많은 나라임을 증명하고 있다.
긴장도가 높은 이유는 일자리와 학벌이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학벌과 실력이 한국사회에서는 동일개념처럼 인식하고 있지만 더 문제는 실질적인 임금 역시 학력에 비례하여 높아진다. 그것은 한국사회가 여전히 관료적 방식으로 고학력을 우대하거나, 고학력, 특정학교가 많이 포진되어 있는 기업 및 정부기관의 선후배 관계로 인한 인맥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이다. 즉 한국사회에는 엄연히 학력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그런 학맥관계를 목적으로 명성 있는 대학에 입학하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소질과 상관없이 학교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즉 학교를 어디 나왔느냐에 따라 한국사회에서는 사회에서 인정해 주는 방식이 달라진다. 결국 학맥이 실력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현실에서 보여준다.
한국사회는 학맥이라는 새로운 계급 구조에 편승을 목적으로 줄을 세우는 구조는 또 다른 근대사회 계급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오늘날 부모들은 아이들은 초중고부터 인생을 바꾸기 위해 경주를 한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경주를 위한 룰을 만들고 점수로 차이를 만드는 일조차 나누고 다스리려는 구조이고 좀 더 확대하면 학생들에 대해 계급화시키는 것이다. 학교 역시도 점수로 아이들을 계급화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근대화 시대 특징으로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겪으면서 이런 계급화가 일상처럼 유지되고 있다.
한국사회는 1968년 유럽사회를 강타한 68 혁명의 물결을 경험하지 못했다.
유럽 사회는 근대화시대에서 나타나는 획일적인 전체주의 특성을 벗어나고자 했다. 한국사회는 전근대 시대를 벗지 못한 상태에서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교육의 폐습으로 인해 한국사회는 서구사회 교육 변화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는 현재 조선시대 관념을 유지한 채 일제강점기 전체주의 제도를 받아들인 단계에 머물러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 특권의식, 억압과 착취 구조가 교육 속에 남아 있다. 아직도 한국사회 교육은 서열화 구조를 만들어 오르지 못할 나무를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우리 사회도 68 혁명 이후 탈근대의 가치 속 다양성과 평등에 대한 철학을 교육현장에서 실현해야 한다.
한국사회에서는 어떤 면에서는 학벌 권위에 대해 인정하지 않고 당신은 무엇으로 사회에 공헌했는지 무엇인지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학위와 실력은 다르고, 상호 존중 가치를 배우는 것, 누구나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사회와 가치를 생활 속에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 교육이 서열을 나누고 계급을 차단하는 벽이 아닌 모두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사다리가 되고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교육은 시민들에게 생애 모든 주기에 걸쳐 기회를 열어주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평생교육의 가치는 매우 중요하다.
한국사회 교육 구조가 문제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리고 유럽사회에 해법이 있다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다. 이제는 이를 극복하는 실천이 중요하다. 그것은 가치에 대한 전환이고 문명을 발전시키는 일이다. 우리 사회는 우리의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매우 체계적인 통찰로서 반성하고 극복해야 한다. 그래야만 안타까운 비극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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