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月동
작성자_제이드
목동=일이 바쁜 어른들을 대신 혹은 보조해 방목한 가축들을 관리하는 아이
목동=동명 그대로 숲과 논이 있던 지역
목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신도림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목동은 독서실 알바로만 드나들었던 곳이었다. 아파트가 많고 학원가들이 밀집되어 있으며 학구열이 높은 곳으로 이야기만 듣던 곳을 지하철 두 번 갈아타고 겨우 15분 만에 목동역에 도착해 어반구스 크루들과 목1동부터 목5동까지 걷기로 한다.
안양천의 상습적인 범람으로 목동은 거주환경으로 적합하지 않았다. 1960년대~1970년대 철거민들의 이주로 판자촌과 둑방으로 늘어서있었다. 빈민운동가 전 의원 제정구 말에 따르면 후암, 대방, 이촌 등지에서 철거민들이 쓰레기차에 실려져 이곳 목동으로 왔다고 한다. 갈대밭이었던 곳을 땅을 고르게 만들어 거주지로써의 모양새로 갖추게 되었고 이후 아현 일대의 철거민들도 이주를 오게 된다.
목동의 가슴 아픈 역사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수도권 100만 호 건설 목표를 내세우면서 토지 공영개발방식으로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 조성을 시작한다. 이는 서민들을 위한 대량 공급 주택단지인 줄 알았으나 올림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중산층과 부유층을 위한 아파트로 조성계획이 변경되면서 기존 주민들은 모임을 만들어 저항한다. 이들은 양화대교까지 점거해 경찰과 대치하고 크고 작은 시위로 2년간 저항을 이어가지만 공권력으로 실패하고 만다. 시청 앞에서까지 유혈 농성이 이어지고 서울대 등 일부 대학에서 대자보까지 만들어 목동 철거민 대책에 목소리를 내어도 힘없는 서민들은 투기꾼과 정부의 무심함 정책으로 현재의 목동 신시가지 아파트가 1990년 기준으로 1조 원을 챙겼다고 한다.
서울의 구도심이라는 지역들을 답사하다보면 대부분 아니. 거의 논과 밭이였고 피난민과 철거민들로 인해 거주지의 면모를 갖추어 나간다. 지금의 부유하다는 지역은 언제부터 어떻게 현존하고 현존했는지 우리는 뒤돌아 정면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삶의 방식이 다양하다고 말하지만 나와 당신이 머물고 있는 거주지 형상은 쳇바퀴 마냥 비슷한 사건들의 연속으로 탄생되고 사라진다.
공간은 생존의 조건이자 부와 권력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장소는 고유한 정체성과 정서적 유대감, 친밀함이 축적된 애착의 대상이 됩니다. 엄마품, 놀이터 담장, 학교에서 나의 자리, 작은 나무 밑 그늘진 곳, 집, 동네, 고향, 별다른 특징이 없던 그 공간들은 우리가 의미를 부여하고 그곳에서 감정의 교류를 일으킴에 따라 마침내 하나의 장소로 탈바꿈하는 것이죠. 결국 장소는 우리 삶의 <평온한 중심지>가 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삶을 이어나갑니다.
-공간과 장소- 본문 중에서
어디든 마음 한 구석 둘만한 곳을 찾아 헤매고 저항했던 과거 우리의 삶이 오늘날 어떻게 이어져 나가고 있는지 깊은 고민을 해보게 된다. 나는 어디에 머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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