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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Jul 23. 2023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성북동_이정옥

오랜 시간을 순명하여 살아 나온 것

시류를 거슬러 정직하게 낡아진 것

낡아짐으로 꾸준히 새로워지는 것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시인 박노혜     



마음의 고향이 이곳이 될 것 같다. 예상치 못한 머무름이 자연스럽게 늘어진다. 여행객으로 온 이곳에 이제는 폭신한 이부자리가 방 한편에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람이 떠난 서늘한 빈집에 매력을 느꼈다. 뻔하지 않은 미로 같은 집 구조와 먼지만 유영하고 있는 찰나의 빛을 바라보면서 멋대로 상상해 본다. 인테리어 디자이너답게 머릿속에 도면을 그리고 재료는 뭘로 할까, 벽 색상은 무슨 색으로 조합해볼까, 조명은 온라인 장바구니에서 하나씩 꺼내본다. 집안이 천천히 노란빛으로 물들어지면, 간간하게 재즈음악이 들린다. 문이 열리며 하나둘씩 사람들이 술 한 병씩 들고 들어온다. 온기로 따뜻해지는 우리집이 된다.      


어린 시절 나의 식구들은 각자의 방이 없었다. 방은 하나 혹은 둘이었고 아버지는 혼자 사용하시고 나와 오빠 그리고 엄마 이렇게 셋이 한방에 생활했다. 담배를 펴신 아버지 방 벽지에는 늘 쾌쾌한 냄새가 났다. 그래서 엄마는 편하게 자고 싶다며 늘 우리와 잤다. 성인이 되고 오빠와 나는 독립을 했다가 다시 본가로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내 공간만 있으면 뭐든 성공할 것처럼 공간이 없어서 일이 안 풀리는 거라며 핑계를 댔다. 핑계는 맞았다. 현재 임대한 성북동 공간이 있으며, 최근 임대만료한 문래동에도 공간이 있었다. 공간이 두 군데나 있으면서 상상한 성공은 개뿔이었다.      

2012년 한옥 공부를 하면서 성북동을 알게 되었다. 한양도성 밖에 위치한 성북동에 남아있는 한옥을 답사하면서 굉장한 부촌으로 대저택을 많이 봤다. 당시 자차 없으면 못 가는 부촌으로 답사를 갔었고 성북동은 잘 사는 동네구나. 하고 이번 생애는 여기서 살 일은 없겠구나 싶었다.      

2015년 서울 구도심을 돌아다니면서 빈집들을 더러 발견하게 되었다. 쓰러질듯한 철문에 삐죽하게 나온 초록식물과 누런 종이들이 우편함 입으로 토를 하면 백 프로 빈집이었다. 빈집을 갖고 싶었다. 대문을 열고 싶었다. 궁금했고 내 공간도 갖고 싶고, 그렇게 2018년 성북동에 빈집 임대 공고가 온라인상에 떴다. 사진을 보니 할 일이 태산 같았고 로드뷰에서는 보이질 않는다. “뭐야 여기“ 페이지를 넘기고 다른 빈집을 찾아보았다. 4개월 후... 마땅한 집은 나오진 않고 불현듯, 할 일 많은 듯한 성북동 그 집은 잘 있나 생각하던 찰나,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그 집이 또다시 재임대 공고로 떴다. ”뭐지 여기? 가볼까? “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고 약속을 잡았지만 집주인이 갑자기 못 오는 바람에 친구와 둘이 찾아갔다. 네이버지도가 알려주는 대로 따라갔고, 오르고, 오르고, 오른 끝에 계단을 보고 놀랬다. 이왕 온 김에 봐야겠으니 전투적으로 씩씩 거리며 계단을 오르고, 오르다 보니 쓸려 내린 파란대문에 차가운 공기만 가득했던 이곳이 지금, 나의 애정과 지인들의 수고스러운 노력이 듬뿍 담긴 "성북동 파란대문집" 온기 가득한 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사람일은 정말 모르는 것이다.     

이곳 성북동에는 부촌과 마주한 꽤 낙후된 집이 더러 있다. 재개발지역으로 언젠가 새 건물이 지어질 것이니, 돈 들여 고치지도 못하고 집주인은 떠나고 그대로 방치가 된다. 사람이 떠난 집은 서서히 안쓰럽게 숨을 쉰다. 길 잃은 생명체를 보는 것 같다. 문제는 빈집이 있으면 노숙자와 비행청소년들의 흡연실로 치안에 노출되고 뭔지 모를 악취로 주민들의 불편이 생긴다. 한 밤중 사람이 드문 골목은 위험하기도 하다. 좋지 않은 경험을 해봐서인지 낮임에도 혼자서 빈집이 몰린 지역은 피하게 된다.     


왜 집을 방치할까.

빈집세를 부과해야 되지 않을까.

집은 뭘까.     


빈집이 생겨난 이유와 그곳의 지역 스토리보다도 집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무색하게도 600년 수도인 서울은 점점 박스건물로 레고처럼 딱딱하고 차갑게 껴맞춰진다. 우거진 숲이 된 빈집을 보니 자연이 돌아왔다. 꼭 건물을 지을 필요가 있을까, 점조직 공원으로 만들면 살기 좋은 예쁜 동네가 되지 않을까. 


살고 싶다. 지금의 성북동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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