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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acehost Jul 30. 2023

길의 시작.

성북동_이관석

1. 이영도 작가의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의 "엘프가 숲을 걸으면 그는 나무가 된다. 인간이 숲을 걸으면 오솔길이 생긴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길 위에서, 길 아래서, 길을 따라 사람의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믿음은 어릴 때 그 구절에 끌린 탓이리라.


2.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새롭게 배우기 시작했을 때, 서울의 가파른 골목을 거닐곤 했다. 잘 짜여진 강남대로에서 만날 수 없는, 젊음이 가득한 신촌 골목에서 찾을 수 없는 다른 온기가 있을 것이란 착각. 그 착각이 아니었으면 옥수동을 그렇게 걸었을 리 없었겠지.

3. 그 온기라는 착각에서 잠시 거리를 두었을 때, 비로서 보이는 작은 숨결이 있다. 사람이 걸어서 만든 이야기들. 말하는 이들이 사라지고 들려주는 이 하나 없을 때도 길에는 사람의 이야기가 녹아있다. 길 위에 있을 때야 비로서 느낄 수 있는 그 이야기들.


4. 북정마을이 어느새 젊은 이들의 힙플레이스가 되었다고 한다. 고된 오르막의 성곽길은 데이트 코스라고 한다. 박제된 온기를 남기려는 뒤떨어진 사진가가 되느냐, 길의 이야기를 오롯이 담는 기록자가 되느냐, 그런 고민의 시작.

5. 그 때나 지금이나 그저 길은 그 자리에 있다. 더 큰 욕망이 덮치기 전까지. 그 때까지 뚜벅뚜벅 이야기를 기록한다. 온기가 남은 이야기부터 욕망의 뒷편에 선 은밀한 뒷담화까지. 짧은 글귀에서부터 소소한 사진기록까지. 지금 여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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