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릉골_변유경
재개발지역 탐방도 이제 4번째, 처음에 낯설게만 느껴지던 여정도 이제는 익숙해졌나 보다. 그래서 그런지 정릉동 탐방은 이전보다 어렵지 않게 느껴졌다. 다른 지역보다 지대가 높지 않았던 탓일지도 모른다. 같은 산 부근에 있어도 정릉동은 성북동만큼 가파르지 않았다. 낮은 언덕을 오르고 내리다 흐르는 정릉천에서 물놀이하는 개구쟁이 아이들을 보며 “좋을 때다~”라는 늙은 멘트가 불쑥 나왔다. 더군다나 천 가에 세워진 높은 돌담가에 있는 집들은 이국적인 분위기마저 풍겼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 있을 때 비슷한 돌담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서울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이야, 서울도 잘 모르면서 해외로 나가 새로운 풍경을 찾는 나,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정릉은 재미있는 역사가 많은 곳이었다. 무엇보다 지역을 사랑하고 과거를 간직하고 전달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북한산보국문역 근처 천변풍경이라는 카페에는 주인장이 정릉동의 역사를 정리해 놓은 자료집도 있었다. 천변풍경은 오늘날 정릉동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인 것 같았다. 과거의 향취가 오늘까지 이어져 오는, 그러면서도 멋스러운. 정릉동에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이 거주했었나 보다. 특히 박경리 작가가 살며 “토지”를 집필한 곳이 정릉3동에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 집을 찾으려 골목을 뒤집어 봤지만 팻말이 없어져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지금은 북한산국립공원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지만 50, 60년대에는 유흥문화를 이끌었다는 청수장 건물까지.
정릉3동에는 빈집이 꽤 있었고 어떤 벽에는 “정릉골 축 재개발 사업시행인가”라는 팻말이 있었는데 모두가 떠나간 이 동네에 재개발을 축하를 할 만한 사람이 남아있는지 모르겠는... 그래도 아직 어느 집에선가 닭이 울고, 낯선 사람이 온다며 짖는 개들이 있었다. 아직 동네를 지키는 사람들이 간혹 우리를 지나쳤다. “어르신들은 이곳을 떠나기 싫어하시겠다…”라며 우리는 그들의 공간에 얽혀있을 사람과 추억에 대해 공감했다.
서울은 어느 도시보다 땅의 사용이 집약적인 곳이다. 그래서 장소에 얽힌 사연과 역사도 집약적이고 다채로운 것 같다. 독일에 살 때는 이 정도의 장소와 사연의 밀집도를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재개발이라 하면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아쉬워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이 마구 섞여있다. 낙후된 곳을 정비하는 일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런 일이 차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고려도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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