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그래서 컨셉이 뭐야?
하나의 프로젝트를 설명할 때, 어떤 프로젝트에 대해 궁금할 때, 진행 중인 프로젝트의 상황을 체크할 때, 가장 처음 물어보는 말이자 가장 자주 물어보는 말이다.
프로젝트를 압축하고 상징할 수 있는 '하나의 단어 혹은 문장'.
프로젝트 초기 기획자에 의해 탄생된 이 컨셉은 전시관이 개관할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들의 작업물이 하나의 목표로 엮일 수 있도록 그물 역할을 한다. 심지어 가끔은 개관을 위한 각종 홍보자료나 개관 이후 전시관 홈페이지, 관람 안내 리플릿, 관람객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계속해서 살아남는다.
그렇기에 기획자는 컨셉을 내놓기까지 꽤 골치 아픈 시간을 보내게 되는데, 문제는 누구도 정답을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스스로의 확신을 담은 하나의 단어(또는 주제어)를 만들고 '이것이 정답일 수밖에 없는 논리'를 쌓아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 그렇기에 좋은 컨셉, 부족한 컨셉은 있어도 올바른 컨셉, 잘못된 컨셉은 없다.
이 마법의 단어를 만들 때면 세상 모든 단어들이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린이 공간을 고민할 때는 늘 지나쳐보던 조카들의 그림책 글자들이 커 보이고, 자연사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는 우연히 길에서 만난 환경보호 활동가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잘 들리기도 한다. 이런 시간들을 거치면서 일상생활 속 자주 사용하는 구어, 지금은 사라진 옛 말, 전문용어, 의성어나 의태어, 외래어들은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귀에서 손으로 걸러지게 되고 마침내 하나의 '컨셉어'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심사숙고해서 만든 컨셉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정답일 수밖에 없는 설명이 부족하다면 디자인이나 연출에 찰떡같이 붙지 못하고 프로젝트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의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운 채로 실제 내용과는 점점 멀어져 그저 하나의 단어로만 겉돌게 된다.
극단적이지만 한글 전시관을 만드는데 외래어를 컨셉으로 설정한다거나 어린이 체험관을 만드는데 어려운 학술 용어를 쓰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득할만한 논리가 뒷받침된다면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바다를 전시하는데 'ONE'이라는 컨셉어를 만들었다면 누구나 단박에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안에 내재된 의미를 함께 전달해줘야 한다. 왜 ONE 인가?라고 했을 때, '바다는 지구상의 생명들 모두가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며 인간과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렇기에 지구 생명의 연결이라는 의미에서 바다의 중요성을 ONE으로 설정하였다.'라는 설명이 붙어줬을 때 'ONE'은 컨셉으로서 힘을 갖는다.
의미를 더욱 강력하게 전달하기 위해 때로 익숙한 단어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단어를 임의로 만들기도 한다.
의병 박물관을 진행했을 때는 가장 먼저 '불꽃'이라는 단어를 핵심 키워드를 뽑아냈다. 그런데 의병을 상징하기에 그것만으론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어떤 불꽃인지 그리하여 관람객들에게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 싶은지 또 다른 키워드를 붙여 그 성격을 좀 더 명확하게 해 주고 싶었다.
의병은 훈련을 받은 직업 군인이 아니라 농사짓고 장사하던 일반 민중들이다. 하지만 나라가 위험에 빠졌을 때 누구보다 빠르고 용감하게 일어나 목숨을 걸고 싸운 사람들이다. 이들의 의로운 마음을 불꽃이라 상징화시켰다면 이들의 민중성을 표현할 수 있는 또 다른 키워드가 필요했고 '백의민족'이라는 의미의 '백의(白衣)'를 생각해 냈다. 그리하여 '백의불꽃'이라는 컨셉어를 설정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고 활활 타오른 일반 민중들', 또 한편으로는 '백(百)의 민중들=수많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더욱 강하게 담을 수 있었다.
이처럼 프로젝트의 성격과 콘텐츠에 대한 해석을 토대로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기획적 의도(메시지)가 담겨야 컨셉이 된다.
그리고 이 하나의 메시지를 관람자들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한 구조 짜기. 즉 공간을 기반으로 관람 경험의 순서와 강도를 조절하는 작업이 '스토리'이자 '연출'인 것이다.